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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에 서쪽을 빛내다 ㅣ 창비시선 317
장석남 지음 / 창비 / 2010년 8월
평점 :
지난 가을, 장석남 시인의 새 시집 출간 기념으로 낭독회가 열렸었다.
시인의 음성으로 직접 듣는 시,가 탐이나 낭독회에 가고 싶었으나, 시인의 시집을 제대로 읽어본 게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 책장에 꽂혀 있던 시인의 시집을 한 권 빼들었는데, 그 밤이 하얗게 새버리는 거였다.
바로 온라인 서점에 접속해 신간과 구간을 모두 구입해 여러날 동안 시인의 시와 진한 연애를 했다.
뺨을 서쪽에 빛내기도 하고, 왼쪽 가슴 아래께에 통증을 느끼기도 하고, 젖은 눈을 들어 먼 허공을 보기도 하고, 어디로 가는지 모를 미소를 머금어보기도 하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은 밤을 보내보기도 하며 지새운 많은 밤들...(아직 새떼들과 함께 망명하지는 못했다.)
나의 가슴이 요정도로만 떨려서는 아무것도 흔들 수 없지만 저렇게 멀리 있는, 저녁빛 받는 연(蓮)잎이라든가 어둠에 박혀오는 별이라든가 하는 건 떨게 할 수 있으니 내려가는 물소리를 붙잡고서 같이 집이나 한 채 짓자고 앉아 있는 밤입니다 떨림 속에 집이 한 채 앉으면 시라고 해야 할지 사원이라 해야 할지 꽃이라 해야 할지 아님 당신이라 해야 할지 여전히 앉아 있을 뿐입니다
나의 가슴이 이렇게 떨리지만 떨게 할 수 있는 것은 멀고 멀군요 이 떨림이 멈추기 전에 그 속에 집을 한 채 앉히는 일이 내 평생의 일인 줄 누가 알까요. _ '오막살이 집 한 채' 전문
시인의 시를 읽으며 마음속에 오막살이 집 한 채 짓고 시구들과 함께 가슴을 떨었다. 실은, 이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떨게 만들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지만. 역시 멀고 먼 곳에. 그 떨림이 멈추기 전에 그 속에 집을 한 채 앉히는 일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시들을 읽으며 자꾸자꾸 떠올리던, 계속계속 삼천포로 빠졌던, 그 얼굴은 아직도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네.
지난 가을의 추억을 무심히 떠올리기에는, 왠지 딴청 피우고 싶은 밤이다. 시나 읽어야지!
하루를 탕진하고
별을 본다
후후 불면 숯불처럼 살아나거라
피리를 불랴? 살아나거라
한 두엇 천년이나 지났을까? 손톱 한번 깎고 나니
어느덧 숨 끝에 까무룩이 돋아나와 손등에 앉는
하늘의 문자들
北쪽 하늘 별 옮겨앉듯 들들들 읽어나가는데
하는 수 없이 껴안을 전율도 있어
또 한번 사랑을 탕진한다
숯처럼 앉아
별을 본다
피리를 불랴?
숨은 하늘 _ '北쪽 하늘 별 옮겨앉듯' 전문
이제 모든 청춘은 지나갔습니다 덥고 비린 사랑놀이도 풀숲처럼 말라 주저앉았습니다 세상을 굽어보고자 한 꿈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안 것도 겨우 엊그제 저물녘, 엄지만한 새가 담장에 앉았다 몸을 피해 가시나무 가지 사이로 총총히 숨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난 뒤였습니다.
세상을 저승처럼 둘러보던 새 이마와 가슴을 꽃같이 환히 밝히고서 몇줄의 시를 적고 외워보다가 부끄러워 다시 어둠속으로 숨는 어느 저녁이 올 것입니다. _ '11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