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ㅣ 창비시선 204
장석남 지음 / 창비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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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꽃이요 꽃밭이지

꽃밭이 크군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꽃이고 향기지

멀면 멀수록

너와 나 사이가

큰 꽃이요

큰 향기지

 

_ '距離' 부분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을 읽은 그날 밤 구입한 두 권의 시집 중 한 권이다.

다른 한 권은 신작 시집 『뺨에 서쪽을 빛내다』였고, 이 시집은 역시 제목이 마음에 들어 골랐더랬다.

'왼쪽 가슴 아래깨에 온 통증'이라는 제목 때문이었을까?

시집을 읽는 내내, 내 왼쪽 가슴 아래께에 느껴지는 통증을 살며시 움켜쥐며, 시 한 편 한 편을 그대로 그곳으로 밀어넣었다.

당장 한 권을 더 구입해 지인에게 선물했더니, 그 자리에서 펼쳐보고는 너무 좋다며, 대화도 잊은 채 시집만 읽고 있어서, 흐.뭇.했.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_ '배를 매며' 부분

 

그냥, 밧줄이 내 앞으로 던져졌을 뿐이고, 그래서 나는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맸을 뿐이고, 뭐 그런 거지, 사랑은...?

'사랑은 저절로 마른 가슴에 밀물 드는 것' '번짐, / 번져야 사랑이지'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 아무 소리 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이런 시구들에 심장이 촉촉이 젖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시를 읽겠다는 것인지, 사랑을 읽겠다는 것인지 모를 태도와 마음으로 이 시집에게 달려들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시집 제목을 떠올릴 때마다, 왼쪽 가슴 아래께에 살큼살큼 통증도 느껴가며...

 

마침 이 시를 읽을 때의 내 정서가 그러해서이지, 결코, 시집 전체가 사랑사랑 노래한다는 건 아니다.

(뭐, 그러면 또 어때. 사랑으로 가득찬 시집, 좋잖아...?)

'水墨 정원' 시리즈 열 편, 특히 기억에 남는다. 거의 모든 시에 밑줄을 그을 정도였다.

그 시들은 어떤 시라고 해야 할까... 그저, 삶, 이라는 한 글자 떠오르는데.

 

어찌되었든, 이천십년 단 하나뿐인 가을의 시작은, 나는 온통 장석남 시인의 시와 함께였다는 것.

그리하여 그 어떤 가을보다도 더욱 기억에 남을 것만 같은 가을을 열었다는 것. (시로 연 가을이라니!)

언젠가 이천십년 가을을 돌아보게 된다면, 거기에는 장석남 시인의 시들이 곳곳에 누벼져있을 거라는 것.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으로 나는 행복하였네라.

 


바다에 나가는 수많은 길들 중에 내가 택한 길은 작은 냇물을 따라가는 길이었네

내가 닿는 바다는 노인처럼 모로 누운 해안선의 한모퉁이였네

나를 내려놓고 길은 바닷속으로 잠겨들어가버리곤 했네

그러면 나는 두리번거리다가 그만 어둠이 되곤 했네

어둠을 이고 서 있는 소나무가 되어버리곤 했네

 

누군가 왜 그런 길을 택했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네

발을 다치지 않으려고 그렇게 했다고 대답했지만 그것이 대답이 될 수는 없다네

누군가 더 묻지 않은 것 참 다행이네

 

_ '水墨 정원 5 ㅡ물의 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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