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식 씨의 타격 폼
박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아, 책날개의 작가 프로필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이 같은 건 모르겠고, 기분엔 이천년 대에 태어난 것 같음. 태어난 곳 부산, 다시 태어난 곳 서울, 런던, 전주. 기분엔 안드로메다에서 태어난 것 같음.

서울예대 문창과에 들어가서 아주 간신히 졸업했음. 음식 배달, 트럭 운전, 택시 운전을 하다가 면허정지 취미에 빠져 그만둠.

정신 차리고 삼겹살집 차렸다가 냅다 말아먹었음. 절망으로 찌그러져 있었지만 2006년 신춘문예에서 운이 좋았음. 인생 모르겠음.

존경하는 선생님들과 문학 동지들과 아직도 소설을 읽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애정이 있음.

쉽게 부끄러워짐."



 

북콘서트 무대에서 봤던 (엉뚱하고 유쾌하고 조금쯤 수줍은) 작가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

어쩐지 내가 생각한 이미지와도 잘 들어맞는 것 같은 작가 소개!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그대로 끌고가는 아홉 편의 단편들.

 

솔직히 말하자면, 자꾸만 나를 야구공에 태워 저어기 어디 핼리혜성쯤으로 보내버리는 글들을 읽는 게 쉽지는 않았다.

글자 읽을 수 있고, 단어 읽을 수 있고, 문장 읽을 수 있고, 하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는 이야기들이 자꾸만 내 정신을 흐려놓았다.

물론, 모든 이야기가 그랬다는 건 아니고,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랬다는 건 아니고, 간간이, 그런 부분이 있었다고...

(왠지, 변명 같다...? 이해 못 했어도 괜찮아. 나는 '핼리혜성에 탔고, 이원식 씨의 타격 폼을 가진 이원식' 씨를 모르니까.)

 

이 책은 이런 책이다! 라고 한 마디로 말하기는 참 어렵다. (물론, 이 책뿐 아니라 무슨 책이든, 내겐 그렇지만...)

그러니까, 이 책은,

결코 '니미뽕' 하지 않으며, '꾱꾱꾱 꽃병'보다는 '꿔어어 꽃병'에 가까운 책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미안하다.

 

어쨌든, 그런데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꿔어어 꽃병처럼 상콤한 기분을 계속 즐길 수 있었다.

책 전체에 기분 좋은 에너지가 감도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글은 「가지고 있는 시(詩) 다 내놔」였다.

'파라다이스 시네마'를 입력한 내비게이션이 '나'를 데려다 놓은 곳은 도무지 '어떻게 된 시추에이션'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동네.

강도가 칼을 들이밀며 "가지고 있는 시 다 내놔!"라고 위협(?)하고, 모든 금전 거래가 진행될 상황에는 돈이 아닌 '시'를 지불해야 한다.

은행에 예금하는 것 역시 돈이 아니고 시이다.

시를 모르면, 그 자리에서 강도에게 칼 맞고, 밥 한 끼 못 먹어 굶어죽을 동네.

지금의 내가 찾아간다면 그 동네 최극빈층이 될 테지만, 그.래.도. 이 세상 어딘가에 그런 마을 하나쯤 있다면...하고 꿈꿔보게 되는 그런 글이었다.

어디에도 발표된 적 없는 글로 이 책에만 실려 있다.

그러므로,

이 아름다운 글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수밖에.

 

내 곁의 당신들, 얼른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그러면 그대들이 슬픔에 빠졌을 때, 나는 이렇게 위로를 건넬 텐데.

"어서 이원식 씨의 타격 폼을 떠올려봐!"

이게 무슨 위로냐고 기분이 더 우울해진다면,

   미안하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터무니없이 사랑한다."

 

 

_ 나는, 나도 모르게 나 혼자만, 쓸쓸한 블루스를 부르기 시작했다. 세상이 나만 빼고 아름다워서였다. (22)

 

_ 어떤 점에서든 괜찮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자괴감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96)

 

_ 이해, 라는 것은 무조건 쌍방이다. 일방적인 이해는 폭력이나 돈이나 사랑을 동반하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다.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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