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형 남자친구
노희준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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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에 읽을 책으로 우선 세 권의 목록을 뽑아두었었다.

바로 젊은 작가 밴드 '말도 안 돼'의 『X형 남자친구』(노희준), 『스캔들』(하재영), 『이원식 씨의 타격 폼』(박상).

그중 가장 먼저 펼쳐든 것은, 가장 많이 궁금했던 노희준 작가의 책이었다.

'말도 안 돼'의 보컬을 맡고 있으며, 말쑥하고 지적인 분위기로 북콘서트 대화 무대에서 유난히 돋보였던 노희준 작가.

(그런 그에게 나의 '안구가 철판을 만난 자석알처럼 와락, 쏠렸다'는 건, 비밀!!^^;)

그는 어떤 소설을 썼을까...?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책을 펴들고,

조금 놀랐다.

 

어쩌면 작가를 먼저 보고 책을 읽은 게 잘 되었다(?)는 생각도 했고,

그날 잠깐의 만남으로 내 안에 그려진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이 책에서 받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

이 책을 읽고 보니, 작가의 다른 글들은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져 다른 책들도 읽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뭐 그랬다.

 

내 멋대로 짐작해본 것과 달리,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조금 거칠고(문장이 매끄럽지 않다는 의미에서 거칠다는 게 아니라, 뭐랄까, 터프하고?),

이 사회의 뒷골목 어디쯤을 배회하는 기분이 들게도 했으며, 툭툭 터져나오는 욕설들에 움찔움찔 하게 만들기도 했다.

 

세상에 혼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도, 만나지 않아도,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작은 상품 하나를 사도 그 물건이 나에게 오기까지 존재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셈입니다. ('작가의 말' 중)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런 '관계' 또는 그런 '사이' 속에서 나온 글들이라 한다.

작가의 친구들, 지인들,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작가의 말까지 읽고 보니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고 싶어졌다.

글들에서, 내가 미처 느끼지 못 했던 어떤 '애정' 같은 게 느껴질 것 같았다. 작가가 '사이'라고 말한 그런 관계에서 오는 특별한 애정?

어쩌면 내가 이 책에 무턱대고 느끼는 그런 애정 같은 것.

 

책을 읽을 때는 '속어와 욕설이 가득한 구어체'에 적응이 잘 안 되어 주인공들과의 교감이 힘들었지만,

책을 덮고 나니, 등장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의외로 금방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내 곁을 맴맴 돈다.

'후천성 존재결핍증'을 앓는 이들, 통달한 건달 '달건이' 아저씨, 형사 아빠를 수시로 칼질(-_-;)하는 전직 간호사 엄마, 삼 년이나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할 수 있는 혈기왕성한 '스토커', 영화감독이 꿈인 몰카 전문가, 몸매 가지고 장난 치다 빅 바스트에게 밀린(?) 그녀 등...

내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들어볼래? 라고 은근히 속삭이며 떠나지 않는 그들 때문에, 나는 아직도 이 책을 머리맡에 두고 있다.

새로 주문한 작가의 다른 책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게 될 것 같다.

 

그가 쓴 소설을 읽어 본 '사이', 작가에게 '세 번째' 독자쯤 되었으면 싶은 '사이', 나에게 '세 번째' 작가쯤 될 수 있을 것 같은 '사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의 글을 만나게 된 걸 고맙게 여기고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싶은 마음이 드는 '사이'.

작가와 내가 그런 '사이'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거칠었던 소설들과 달리 무척 감성적인) '작가의 말'을 가슴에 꼭꼭 눌러 담으며...

 

 

_ 그래, 세월이 지나면 순간만 남더라. 가장 기뻤거나, 슬펐거나, 혹은 끔찍했던 단 몇 초가 나머지 놈들을 재치고 홀로 살아남는 것이다. (62)

 

_ 너무나 우연적인 일들은 운명처럼 여겨지지. 때로는 나를 가르치기 위한 신의 장난처럼 여겨지기도 해. (162)

 

_ 암시하되, 확신을 주지 말 것.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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