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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신야, 여행의 순간들
후지와라 신야 글 사진,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후지와라 신야의 <아메리카 기행>을 무척 인상 깊게 읽었었다.
여행서이지만, 단순히 여행 정보나, 여행지에서의 단상, 아름다운 풍광을 실은 것이 아니라,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돋보이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그런 책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만나게 된 후지와라 신야의 책.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지금까지 써온 여행기와는 여러모로 다르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유일하게 읽은 저자의 책, <아메리카 기행>과는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쩐지 궁금해졌다.
바로, 여행지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
순전히 '한국'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보게된 <여행의 순간들>.
제목 그대로 이 책에는 후지와라 신야가 여행을 막 시작한 무렵부터 여행의 순간순간들에 벌어졌던, 겪었던 일들을, 적고 있다.
이 글들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두 종류의 잡지에 실렸던 글들이라고 하는데,
십 년도 지난 때의 글들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욱 오래된 사진과, 시간의 묘사가, 조금쯤은 적응이 안 되기도 했다.
지금껏 내가 봐온 여행서라는 건, 다 책이 나오기 전 가까운 몇 해 동안의 풍경과 일들을 보여주고 있기에, 시간에 따른 묘한 거리감 같은 것은 느낄 수 없었는데, 이 책에서 마주하게 되는 노랑저고리 다홍치마의 한국 여인들 모습이 찍힌 사진 등은, 낯설고 인위적인(일부러 과거로 돌려 놓은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예쁘고 친절하고 달콤한, 그런 여행서는 아니지만,
그리고, 이제 겨우 두 권째를 읽었을 뿐이지만,
이게 바로 후지와라 신야의 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인가, 싶은 점들이 분명히 있었기에, 앞서 말한 거리감을 충분히 덮고도 남는다.
후지와라 신야 같은, 정말 체질부터 철저히 여행가일 것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코 겪지 못했을, 느끼지 못했을,
그러므로 나는 평생 어디 가서 맛보지 못할 신기한 체험들.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여행가는 많지 않다. 적어도 지금껏 내가 읽어온 중에는 없었다.
오랜 세월 여행을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의 일상에서 수도 없이 발에 채였던 돌멩이"라는 '여행의 원석'은 언급한 적이 없었다. 나의 호주머니에는 크고 작은 형태의 여러 가지 원석들이 닦여지지 않은 채 가득 채워져 있다. 내가 이번 여행기에서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 미처 꺼내지 못한 원석들을 닦거나 형태를 정돈하지 않고 독자 앞에 그냥 내던지는 것이었다. _ 저자 후기 중에서
아름답게 꾸미거나 애써 감추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여행의 순간들'이 담긴 이 책.
역시, 후지와라 신야의 책이라면 다른 말 필요 없이 챙겨 읽어야겠군, 이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