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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동산을 떠나며
이병천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나도 가끔 꿈꾼다.
어디에도 없을, 하지만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지상 낙원을.
콘크리트 건물과 매연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묻은 때를 깨끗이 씻겨줄 수 있을 것 같은 자연 속 공동체 생활.
즐기며 일을 하고, 모두가 선한 이웃이고, 범죄의 두려움이 없으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없거나 적은 삶.
살아보지 않은 낙원을 더 세세히 그려보는 일은 어렵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남부러울 것 없는 낙원 생활이 될 것 같다.
낙원을 그리던 한 사내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 있다 해서 읽어보고 싶었다.
책 속에 그려진 낙원은 어떤 모습이며, 그 낙원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내가 상상한대로 평온하기 그지 없는 '낙원'이었다면 소설이 될리도 없었겠지. 사건이 있는 거다, 사건이!)
제목 때문에 혹시 종교색이 있는 책인가 하여 잠시 망설였지만,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작가에 대한 호기심도 강하게 일고 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제목에 상징적으로 '에덴 동산'이 쓰였다 뿐, 특정 종교와 크게 연관되는 내용은 아니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낙원'은 모악산 서쪽 자락에 위치한 '다솜터공동체마을'이다.
삼백 호 가까운 흙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다솜대학'이라는 대안학교에서 교육을 하며, 자체 은행에서 고유 화폐를 발행해 경제 활동을 하고, 공동체의 사업을 꾸려서 구성원들이 풍족하게 생활하고 있는, 다솜 마을.
아내와 헤어져 복잡한 심사를 가눌 길 없던 구문보에게 다솜 마을 '초대장'이 날아오고, 그가 다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생활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낙원은 처음에는 말 그대로 낙원인가 하였다.
먹을 것 입을 것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대학 교수직도 맡게 되었으며, 게다가 이웃에는 아름다운 여인 오초혜가 있었으니까.
오초혜의 존재는, 낙원을 지상 최대의 낙원이게도 하고, 또한 그 낙원을 고통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지옥이게도 했다.
다솜 마을의 생활이 한 여인으로 인해 낙원이자 지옥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솜 마을의 이상한 규칙 때문이었다.
그것은, 공동체 구성원 간에는 결코 가정을 이룰 수 없다는 것.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가족이므로 혼인 관계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기서부터, 내가 꿈꾸던 낙원과 이 소설 속에 그려지는 낙원의 모습이 크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삶이 진정한 삶이 되려면, 인간이 단 한 순간이나마 낙원을 누리게 된다면, 그 가운데에는 반드시 '사랑'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앞에서 이러니저러니 그려본 낙원 풍경 속에는 반드시 사랑으로 하나되는 남녀, 그로 인해 꾸려지는 화목한 가정이 빠질 수 없는 것인데,
이 책 속의 낙원은, 어딘가 이상하다.
그러니, 제목도 '에덴 동산을 떠나며'다. 주인공은 결국 낙원인지 지옥인지 모를 그곳을 떠나게 되니까.
결국 내가 바라던 낙원을 찾지는 못했지만(찾았다 한들, 소설 속으로 걸어들어갈 것도 아니고!),
내 마음속 낙원과 조금이나마 교집합을 이루는 '낙원'의 모습, 순식간에 삶을 뒤흔들어버린 사랑의 격류, 밑줄을 긋고도 한참을 시선 머무르게 하는 별빛 같은 문장들. 이런 매력들이 단숨에 이 책을 읽어내게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사랑이 없으면, 결국 낙원은 완성되지 못 하리라는 걸.
_ 낙원이란, 젖과 꿀이 흐르고 사시사철 꽃 피고 새가 노래하는 곳이 아니라, 거기 사는 사람들 모두 마음으로부터 젖과 꿀을 생산하고 또 꽃을 심는 곳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75)
_ "아까 그 산기슭에서 춤췄던 일은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 "나중에 또 출 수 있을 거야." / "싫어요. 반복은 오히려 첫 기억을 목 조르는 법이에요." (133~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