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민음사 세계시인선 38
E.디킨슨 지음, 강은교 옮김 / 민음사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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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에밀리 디킨슨은 우리가 서로 모르고 지내는 사이에도 우리 사이에서 부유하고 있었나보았다. 서로 모른 채로 성장했어도 우리는 모르는 시간 속에서 이런 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도 했던 모양이었다. 단이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고 나에게 주고 또 어디선가 윤미루 언니는 고양이에게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우리는 그렇게 존재했던 모양이었다.

 

신경숙 작가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그 뒤에 내 이야기를 조금 덧붙여본다면,

'그리고 어딘가에서는 나처럼 어.나.벨.을 읽고 에밀리 디킨슨을 만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에 나오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이 너무 애틋해서, 고양이 에밀리가 무척 사랑스러워서,

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꼭 읽어봐야겠다 생각했고, 소설의 마지막 장을 두 번 덮고 난 후, 이 시집을 구입해 읽었다.

낯선 시인의 처음 읽어보는 시집이었지만, 어쩐지 내가 읽은 소설책의 일부인 것 같은 친근하고도 정다운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_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소설에서 만났던 시를 시집에서 만났다. 이 짧은 시 한 편에서 소설이 읽힐 것만 같다. 굳이 이 시를 만났던 소설이 아니라도, 그냥 다른 긴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서 실뭉치 굴러가듯 술술 풀리며 들려오는 기분이랄까.

 

아무리 내가 사랑한 소설에서 애틋함이 뚝뚝 듣는 듯한 느낌으로 등장한 시집이어서 남다른 정이 가긴 하지만,

시를 많이 읽지 않는 데다, 그나마 읽는 시들도 모두 우리 시인들의 시집이다보니 외국 시인의 시집은 낯선 느낌을 떨쳐낼 수 없기도 했다.

정서적인 낯섦, 많은 문장들이 -네, -지 등으로 끝나는 데 대한 낯섦, 원본으로 읽는 시는 어떤 맛일까 자꾸 궁금증이 샘솟는 낯섦(바로 옆에 영문이 실려 있지만, 영어에는 까막눈이라! 흑)...

이런저런 낯섦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신경숙 작가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서로 다른 공간에서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존재로 서로 엮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청춘을 사로잡아버리는 수많은 시구들.

 

조금 엉뚱하게도, 시집을 덮으며,

에밀리 디킨슨 스스로 울타리 안에 가둬버린 은둔의 삶, 그녀의 생에 단 한 번 찾아왔다던 짧지만 불꽃 같았던 사랑 등 그녀의 삶이 문득 궁금해진다.

 


희망이란 날개 달린 것.

영혼의 횃대 위를 날아다니지,

말없이 노래 부르며

결코 멈추는 법 없이.

 

바람 속에서도 달콤하디달콤하게 들려오는 것.

허나 폭풍은 쓰라리게 마련.

작은 새들을 어쩔 줄 모르게 하지.

그렇게도 따뜻한 것들을.

 

차디찬 땅에서도 난 그 소리를 들었지.

낯선 바다에서도.

하지만, 궁지에 빠져도

희망은 나를 조금도 보채지 않네.

_ '희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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