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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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내 안에서 느껴졌던 감정들이, 어쩌면 이 삶을 사는 동안 내가 느낄 감정들과 비슷한 순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막연한 기대에 들떴다가, 이내 시큰둥해졌다. 그냥 그렇고 그런 삶일 뿐이잖아. 특별할 것도 없고 유별날 것도 없는, 그야 말로, 일.상.

500쪽 가까운 이 책을, 반 정도까지 넘기도록, 나는 이렇다 할 재미를 느끼지 못 하고, 그렇다고 손에서 책을 놓지도 못 하고,

그냥 그렇게 페이지를 넘기고만 있었다.

 

그러다 반쯤 넘어가면서, 갑자기 마음속에 뭐라 딱히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 샘솟았다. 갑자기 가슴이 벅찼다.

평범한 일상, 이야말로, 우리 삶의 커다란 행복임을, 소소(小小)하지만 소소(笑笑)한 그 삶을 살고 있음이 감사함을, 문득 깨달았다.

올리브 키터리지와 그 주변인들에게서 벌어지는 이 일상 이야기들이, 내 안에 새로운 감정으로 들어와 자리잡았다.

그네들 삶에서 생겨나는 크고 작은 기쁨과 슬픔과 감동과 놀라움과 당황과 위로와 아픔과 따스함은, 곧 내 것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올리브 키터리지와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이지만, 나와 내 가족, 나와 내 주변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내 안의 벅찬 감동이 저녁 하늘 노을빛으로 바뀌며, 나를 잔잔하고 은은하게 물들여주었다.

우리 삶의 페이지는 한 순간에 다 펼쳐보고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기에, 저 멀리 인생의 황혼에서도 새롭게 열리기를 기다리는 페이지가 나를 맞아줄 것이라 생각하면, 그 시간을 향해 나아가는 내 인생이 결코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철 없이 까불고 삶이 대단한 것인 듯 기대하다가 실망하고, 그래서 별 기대없이 그날이 그날인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소소한 삶의 행복을 깨닫게 되고, 이윽고 저물 녘에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힘을 얻는 일.

그 자체가, 감동적이고 경이로운 삶이라는 것을, 올리브 키터리지가 내게 일깨워주었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고 나면, 삶의 순간순간이, 예쁜 선물 포장 리본을 묶고 내게 다가온다.

이 안에 뭐가 들어 있을까, 두근두근 떨리는 손길로 리본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소중한 시간들. 바로, 일.상.

 

지금, 창밖에서는 따사롭고 환한 햇살이 리본을 묶고 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햇살, 반갑고 고맙다.

모든 선물은, 다 반갑고 고마우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_ 올리브는 감은 눈 사이로 창 너머로 비스듬히 들어오는 붉은 빛을 본다. 햇살이 종아리와 발목을 따스하게 덮는 게 느껴지고, 손바닥 밑으로 햇살이 드레스의 부드러운 표면을 따사로이 감싸는 게 느껴진다. 참으로 잘 나온 드레스를. 커다란 가죽 핸드백에 챙겨 넣은 블루베리 케이크 한 조각을 생각하니(곧 집에 가서 마음 편히 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좋다. 이 불편한 거들을 벗어던지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좋다. (115)

 

_ 누가 뭐래도 삶은 선물이라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수많은 순간이 그저 찰나가 아니라 선물임을 아는 것이라고. 게다가 사람들이 연중 이맘때를 이렇게 열심히 기념하는 것은 또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사람들의 삶이 어떻든(그들이 지금 지나치는 이 집들 가운데에는 근심스러운 고민도 있으리란 걸 제인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삶이란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축하할 일임을 알기에 그들은 이맘때를 축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28)

 

 _ 올리브는 앞으로 몸을 숙여 창밖을 내다보았다. 다정하고 연한 구름, 새파란 하늘, 풋풋한 연둣빛 들판, 광활한 바다, 높은 곳에서 보니 모든 것이 경이롭고 경탄스러울 뿐이었다. 희망이 무엇인지 기억났다. 이것이 희망이었다. 저 아래 배들이 반짝이는 물을 가르듯이, 그녀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곳을 향해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듯이, 삶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내면의 일렁임이었다. 올리브는 아들의 인생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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