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0
송성욱 풀어 옮김,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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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을 읽고 그 재미에 푹 빠져 춘향전도 찾아 읽었다.

춘향전 역시 '열녀춘향수절가(완판본)'과 '춘향전(경판본)'이 함께 실려 있다.

'열녀춘향수절가'가 '춘향전'에 비해 내용이 길고 묘사가 세세하다는 차이가 있는 외에도, 둘에서 묘사되는 춘향의 성격이 약간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열녀춘향수절가'에서는 제목 그대로 춘향을 열녀로 묘사하고 있는 데 반해, '춘향전'에서의 춘향은 어딘가 '요부'의 기질이 엿보이는 듯 했다.(내가 잘못 읽었는지도 모르겠지만. )

 

이 책은 읽히는 속도가 상당히 느렸는데, 내가 비록 판소리는 잘 모르나 속으로 판소리처럼 읽혀서 그랬다.

문장에 운율의 맛이 참 뛰어나다.

 

열여섯 청춘 남녀(청소년 남녀가 아니고?)의 사랑 이야기가 어찌 이리 야할꼬!

(향단과 방자) 둘이 다 건너갔구나. 춘향과 도련님 마주 앉아 놓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겠느냐.(55)

그 일이 어찌 되었겠는지는 상상하시던지, 책을 읽으시던지.

둘이 서로 희롱하는 중에 주고 받는 '사랑가'는 또 어찌나 아름답고 간질간질하던지.

사랑에 빠진 남녀 청춘들에게 필독서로 춘향전을 권해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랑가'뿐 아니라 중간중간 등장하는 노랫말이 마음에 쏙쏙 와 박히는 것들이 많았다. 사랑이면 사랑, 그리움이면 그리움, 아픔이면 아픔, 다 노래가 되어 흐른다.

 

이 책을 읽은 게 1주일 전이던가 2주일 전이던가. 그때는 춘향과 이 도령의 사랑 얘기 익히 알고 있는 그대로인데 뭐 새로운 게 있는가 싶어 그냥 예사로 읽어 넘겼는데, 요즘은 자꾸 사랑에 빠진 이 도령이 책방에 앉아 책은 못 읽고 몸을 배배 꼬던 장면이 생각난다.

책을 펼치니 공자 왈 춘향, 맹자 왈 춘향, 하늘 춘향 땅 춘향, 온통 춘향 춘향 춘향이라 '애고애고 보고지고' 탄식을 하기에 이르르는데,

나는 요즘 책에 누가 자꾸 나타나기에...

이게 다 봄 탓이렸다. 곱게 단장하고 그네를 뛰러 가야 하나.

춘향전을 조금 늦게 지금쯤 만났으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살짝 해봤다.

 

 

_ 기쁨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괴로움이 다하면 즐거움이 올까 기다림도 적지 않고 그리움도 오래로다. 일촌간장 굽이굽이 맺힌 한을 님 아니면 누가 풀꼬. 하늘은 굽어 살피시어 빨리 보게 하옵소서. 다하지 못한 사랑 다시 만나 백발이 다 닳도록 이별 없이 살고지고.(92)

 

_ "어제는 저 날이 뒷덜미를 치는지 그리 빨리 가더니, 오늘은 뒤를 결박하였는지 어찌 그리 더디 가는고? 날이 심술도 불량하다."(198)

 

_ 반나마 늙었으니 다시 젊어지진 못하여도 이후나 늙지 말고 항상 지금처럼 되고지고 백발이 스스로 짐작하여 늦게 늙게 하여라.(231)

 

_ "이 글을 못 읽겠도다. 글자가 다 뒤집혀 보이는구나. 하늘 천(天)이 큰 대(大) 되고 『사략』이 노략이 되고, 『시전』이 선전 되고 『서전』이 딴전 되고, 『통감』이 곶감 되고 『논어』가 붕어 되고, 『맹자』가 탱자 되고, 『주역』이 누역이 되어, 보이는 것이 다 춘향이라. 보고지고. 칠 년 큰 가뭄에 빗발같이 보고지고. 구 년 홍수에 햇빛같이 보고지고. 달 없는 동쪽 하늘에 불 켠 듯이 보고지고. 통인, 방자, 군조, 사령, 별감, 좌수, 약정, 풍헌, 급창이 다 춘향으로 보이는 듯 온 집안이 다 춘향이라. 이를 어찌 하잔말고. 보고지고, 잠깐 보고지고."(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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