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과 다른 사람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4
세스 노터봄 지음, 지명숙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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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필립과 알렉산더 삼촌과의 만남이 담긴 1장은 정말이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무척 아름다운 부분이다.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아름다운 부분' 하면 바로 이 필립과 알렉산더 삼촌과의 만남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린 필립의 눈에 이상하게만 보이는 칠순 노인인 알렉산더 삼촌, 아아 내게도 이런 삼촌이 있었다면!

네가 필립이냐? 빈손으로 왔어? 우리 축하 파티를 할까? 네가 즐겨하는 게 뭐냐?

저녁 늦게 아니면 한밤중에 버스 타고 다니는 거, 물가에 가 앉아 있는 거, 비 맞고 쏘다니는 거, 누군가와 뽀뽀하는 거 좋아한다는 필립을 위해 알렉산더 삼촌이 마련한 축하 파티는,

버스를 타고 먼저 루넌으로 갔다가 다시 로스드레흐트로 되돌아오자꾸나. 거기서 호숫가에 가 앉아 있다가 뭘 좀 마시든지 하고, 그런 다음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자, 이다.

그렇게 들른 호숫가에서 칠순의 삼촌이 운다. 우는 게 아니라고 말하지만, 삼촌은 울고 있다.

왜 결혼 하지 않았느냐는 필립의 질문에 삼촌은 이렇게 대답한다.

"난 나 스스로하고 결혼한 셈이지. 원래 그대로의 나 자신이 아니라, 나로 변신해 버린 추억하고 말이야.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니?"

필립도 나도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삼촌의 그 말은 왠지 굉장히 멋있게 들렸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도 축하파티는 끝나지 않았다. 삼촌은 필립을 다해 열정적으로 피아노 연주를 해준다. 아아, 알렉산더 삼촌! 내게도 이런 삼촌이 있었다면! (나는 정말이지, 칠순의 알렉산더 삼촌에게 반해버렸다!)

그리고 알렉산더 삼촌과 그의 꼬마 친구 폴 스웨일로의 이야기...

 

책 전체 분량의 1/5도 안 되는 이 장면에 완전히 반해버려 나는 이 책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졌다.

 

책의 나머지 부분은 필립이 중국인 소녀를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제목 그대로, 필립과 다른 사람들.

사실 훨씬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이 이야기들은 내게 그렇게 큰 감흥을 안겨주지 못 했다. 그 누구와의 만남도 알렉산더 삼촌과의 만남만큼 와 닿지 않았다. 그 분위기를 잔뜩 기대하고 읽어나간지라 조금쯤 아쉬운 마음이 든 게 사실이다.

 

다음에는 알렉산더 삼촌만 좋아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에도 좀 더 관심을 기울여줘야지.

아아, 이 아름다운 앞부분을 얼른 다시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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