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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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유진 오닐이 자신의 사후 25년 동안은 절대로 발표하지 말라고 한 작품이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작가 자신에게 큰 상처를 준 가족사를 낱낱이 밝힌,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글이기 때문이다.

이 희곡 속의 이야기가 실제 작가 가족의 모습이었다면, 사후 25년 간 발표하지 말라고 한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 같다.

 

한때는 성공한 연극배우였지만 지나치게 돈에 집착하다 가족들에게 신뢰를 잃게 되는 아버지, 마약 중독으로 몇 년 동안 병원 생활을 하다 나와서도 여전히 약물을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 술과 여자나 즐기며 방탕하게 사는 큰 아들, 폐병에 걸려 요양을 가야 하는 병약한 둘째 아들, (여기에 갓난 아기 때 큰 아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아들이 두 아들 사이에 하나 더 있었다) 이 네 가족의 이야기가 정말 아슬아슬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가정은 여기저기 금이 가고 깨지고 망가져 조그만 충격에도 금세라도 무너져내릴 듯 보인다. 그걸 가족들도 알기에 서로 조심하려 노력하며 눈치를 보고 태평한 모습을 가장하지만, 가장은 가장일 뿐, 취중진담이라고 술 기운을 빌려 진담을 쏟아내기도 하고 은연중에 속에 품었던 마음을 끄집어 내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이런 가족의 모습이었으니, 게다가 감추려야 감출 수 없이 자전적 글임이 탄로(?)나므로, 아무리 자신의 많은 부분을 대중 앞에 드러내는 작가라 하더라도 쉽게 세상에 내놓기 어려웠을 듯 하다.

 

남의 불편한 가족사를 들여다보는 마음인들 뭐 편할 수 있었겠나.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아 여러 날을 붙들고 있은 끝에 겨우 마지막 장까지 읽긴 읽었으나, 딱히 기억에 남는 것도 없고, 그다지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밑줄 그은 문장도 많지 않고.

책의 내용보다는 다른 것에 더 관심이 가고 호기심이 일었는데, 그건 유진 오닐이 호텔방에서 태어나 기숙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호텔을 전전하며 살았다는 거다. '호텔'이라면 보통 여행 가서나 한번씩 묵게 되는 그런 장소인데, 요즘 읽는 책들에서는 이처럼 호텔에서 생활하는 등장 인물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바로 얼마 전에 읽은 <오늘을 잡아라>에서도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버지, 엉터리 박사 등이 모두 호텔에서 생활하고 있다.) 당시 미국에서 호텔이라는 장소는 지금처럼 타지에 나가면 묵게 되는 그런 장소가 아니었던 걸까? 오늘날의 고시원 같은 개념인가?(그러니까 고시 공부를 위해 고시생들이 묵는 의미에서의 고시원이 아니라, 싼 가격에 묵을 수 있는 숙박업소로 이용되는 고시원 말이다.)

아무튼, 호텔에서 사는 미국인,의 모습이 무척 궁금하게 여겨진 책이었다.

언제 한번 이에 대해서 검색해봐야겠다.

 

 

_ 그래, 그만두자! 다 그만두고 다 피해 버려! 야망이라곤 없는 인간에겐 편리한 인생 철학이지. 고작 하는 짓이라곤……(25)

 

_ 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72)

 

_ 꼭 필요한 건데. 그게 있었을 때는 전혀 외롭지도 않고 두려움도 없었어. 영영 잃어버렸음 안 돼. 그런 생각만 해도 난 죽어버릴 거야. 그렇다면 아무 희망이 없는 거니까.(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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