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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평점 :
표지 그림이 무척 섬뜩하다. 평소의 나라면 이 책 절대 읽지 않았을텐데(표지 무서운 책 싫어한다) 뭐에 홀렸는지 이 책을 머리맡에 떡하니 두고 며칠 밤에 걸쳐 읽었다.(책은 계속 뒤집어서 표지가 보이지 않게 하거나 다른 책을 위에 올려두었다. 지금도 엎어 놨음.)
책 내용도 표지 그림과 참 잘 어울린다. 소름끼치고, 끔찍하고, 잔인하고, 무섭다.
비행을 일삼는 한 소년이 주인공이다. 패거리와 어울려다니며 길 가는 노인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한적한 곳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집에 침입해 소설가인 남자 주인은 늘씬하게 두들겨 패고 여자 주인은 남편이 보는 앞에서 윤간한다(이는 작가가 실제로 당한 일이라고 한다).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녀들을 집으로 끌어들여 약물에 취하게 한 뒤 강간하고, 한 노파의 집에 몰래 침입해 물건을 훔치다 노파를 잔인하게 구타해 숨지게 한다. 주인공은 비록 청소년이지만 이미 전과도 있고 죄질이 심각한지라 교도소에 수감된다. 교도소에 갇혀서도 감방 동기를 사정없이 패 숨지게 한다.
이런 일련의 폭행 사건이 이야기의 반 정도를 차지한다. 평소에 무서운 거, 잔인한 거, 끔찍한 거 안 보는데 어쩌다 내가...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말투가 무척 매력적이어서 중간에 읽기를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요 조그만 화자가 살짝 건방지고, 살짝 재치있게 내뱉는 말투가 참 재미있었다. 아마 그 덕에 이 책을 끝까지 읽은 것 같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주인공이 국가에서 새로 마련해 시도하는 '갱생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내용인데, 그 갱생 프로그램이란 것도 참 잔인하다. 주인공에게 매일 어떤 약을 투입한 뒤 영화관으로 데리고 가 잔인한 폭력 일색인 영상을 보여준다. 눈을 감을 수 없게 집게로 눈꺼풀을 집어 놓은 탓에 보고 싶지 않아도 끝까지 볼 수밖에 없다. 2주간 이런 훈련을 거치고 나서 주인공은 범죄에 심각한 공포를 느끼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앞으로 다시는 범죄를 저지를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의미인 것이다. 이 갱생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소설 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있고,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것이 논의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범죄자를 도덕적으로 교화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폭력에 공포심을 일으키게 만듦으로써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못 하게 만들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범죄자 안의 범죄심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책 속 주인공도 수시로 마음속에 분노가 일면서 다시금 범죄를 향한 마음이 꿈틀거리지만 눈앞에 잔인한 폭력 영상이 펼쳐지고 피가 상상되면 그만 속이 울렁거리며 심한 공포감에 휩싸이게 되어 범죄를 저지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게 진정한 '갱생'이고 '교화'일까?
소설에서는 비록 '실패작'임이 드러났지만, 사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갱생 프로그램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긴 했다. 잔인한 방법이긴 하지만, 워낙 세상이 무서우니... 성범죄자 처벌에 관한 기사에서 이 책을 언급하며 어떤 사례를 들어 놓은 걸 봤는데, 성범죄자가 다시는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의지로 스스로를 거세했지만 결국은 또 다시 성범죄를 무더기로 저지르고 잡혔다더라(성범죄자는 거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던 내게는 참으로 실망스러운(?) 뉴스였다).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뭔가 본질적인 교화나 교도가 아닌 이런 방법은 먹히지 않는 모양이다.
어쨌든, 표지만큼이나 무서운 책이었다. 주인공의 말투에 후한 점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