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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정도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지난 삼 년 동안 나는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허파에 시퍼렇게 피멍이 들도록 속울음을 참으며 겨우 살았다.(23)
사랑하는 아들이 짧은 유서만을 남긴채 훌쩍 떠나버린 후, 아버지는 삼 년 동안 불행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을 거다. 얼마나 속울음을 울면 '허파에 시퍼렇게 피멍이' 든다는 표현을 떠올릴 수 있을까. 아마, 허파뿐 아니라 아버지의 속은 온통 시커멓게 타버렸을 거다. 그리고 삼 년의 세월을 견뎌낸 후, 아버지는 옆구리에 생긴 절벽을 넘기로 한다. 마음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몸으로만 넘을 수 있는 절벽이었다. 아버지는 고비 사막에서 생의 고비를 넘고자 했고, 소설로 그 모든 걸 녹여내었다. 이는 소설 속 이야기이기도 하고, 정도상 작가 본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신기루는 거기에 있었고 다만 닿을 수 없었다. 살아오면서 내가 손을 내밀어 잡으려던 모든 것이 신기루였을까. 그토록 간절하게 잡으려 했으나 잡을 수 없었던 신기루들. 잠시 내 곁에 머물던 오아시스 같은 행복들, 혹은 내가 머물렀던 행복을 생각하니 울컥 치미는 것이 있었다.(27)
인터넷에 연재할 때도 챙겨보았던 소설이었다. 소설이 연재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작가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소설이 소설로만 보일 수 없었다. 그런 경험은 가끔은 독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약이 되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후자였다. '약'이 되었다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이후 소설 속 아버지의 마음이 무척이나 사실적이고 더욱더 애절하게 다가와 소설의 한 문장도 허투로 보아넘겨지지 않고 소설 속의 어느 한 감정도 공허하게 흘려보낼 수 없었다. 온전히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연재글을 만나던 어느 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꿈 속에 아주 커다란, 하지만 야트막한 봉분을 가진 무덤이 하나 있었다. 그 무덤은 온통 까만천으로 뒤덮여 있었고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무덤 위에 있었다. 여자는 터지는 울음을 참지도 못한 채 작은 소반에 차려진 밥을 힘겹게 꾸역꾸역 입에 넣고 있었고, 남자는 그 옆에 서서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며 "이제는 보내줘야해"라고 말을 했다. 남자는, 그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정도상 작가의 얼굴이었다. 내가 작가와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작가의 글을 읽어본 적도 없는데 감히 주제넘게 이런 꿈이라니, 싶은 마음에 어이 없기도 했지만, 꿈의 느낌이 너무 강해서 연재글을 읽던 당시에도, 이렇게 책으로 다시 읽게 된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생의 한 고비를 간신히 넘으면 또 만나게 되는 고비, 어쩌면 나는 그 고비를 건너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 길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고비의 한복판에서 나는 물었다.(49)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아들을 잃은 슬픔이 아니라, 아기 낙타의 탄생, 유목민 아기의 탄생, 춤추는 별의 탄생이라는 세 번의 탄생을 통해 '온갖 상처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삶은 지속된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독자는 소설속의 '온갖 상처'만을 너무 들여다 보려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위의 꿈을 꾸고, 아직까지 떠올리고 있는 것도 그 흔적이 아닐까). 너무 깊은 아픔에 빠져들어버렸다. 그래도 지속되는 삶이라는 게 있다는 걸 잊고 말이다. 이제야 드는 생각은, 이 책은 작가 마음속의 슬픔을 만천하게 알리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읽는 이에게 어떤 동정이나 슬픔의 마음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쓴 글도 아니다. 삶이란 고비를 넘는 것과 같다는 것, 고비를 넘고 또 고비를 하나 넘고 또 다른 고비를 하나 넘으며 그렇게 끝도 없는 고비를 넘으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말해주고자 했던 게 아닐까. 어쩌면 우리의 삶은 항상 '고비의 한복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작가의 말마따나 '숨이 막혀 곧 죽을 것 같다가도 그 순간이 지나면 또 살아지는 것이 아니던가', 삶이라는 건.
춤추는 별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내면에 혼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혼돈이 별로 탄생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와 고통의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65)
작가는 그 안의 많은 상처와 고통의 시간으로 단련한 혼돈을 『낙타』라는 별로, 춤추는 별 하나로 탄생시켰다. 그 혼돈이 얼마나 깊고 어두웠을지 짐작이 가기에, 아니 감히 짐작도 할 수 없기에 이 춤추는 별의 탄생 앞에 더욱더 경건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읽고 쉽게 느끼고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때론 울음을 삼키느라 힘겹기도 했지만, 먼 옛날 흉노족의 화가가 한 점 한 점 정성스레 쪼아 그린 암각화처럼 작가가 한 자 한 자 그의 내공을 다해 그려낸 문장들 앞에 때론 숨이 막히고 때론 감동하고 때론 삶을 배웠다. 수많은 문장들에 밑줄을 긋느라 자주 손을 멈추었다.
세상의 모든 양은 한번 죽으면 다시 살아 초원을 밟지 못하나니. 어제의 말에서 내려 두 발로 오늘의 대지를 밟아라!(156)
죽어버린 아들을 사막 모래속에 묻고도 어미는 역시 새끼를 잃은 낙타의 등에 올라타 떠나야만 하는 것이 삶이다. 그렇게 어제의 말에서 내려 두 발로 오늘을 걸어가야만 하는 것이 삶이다. 내 삶의 고비를 낙타의 걸음으로 넘는 방법을 조금쯤은 배운 것 같다. 더 이상 혼돈에만 머무르지 않고 춤추는 별을 탄생시킬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 같다. 규와 아버지의 여행을 투명 낙타처럼 따라 걸을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규의 인사처럼, 저도 여행 즐거웠습니다.
_ 마음으로 절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절벽을 넘을 수 있는 것은 몸이었다.(14)
_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말한다. 타인 혹은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받았다고.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상처를 준 것은 언제나 '나'였다. 내가 준 상처 때문에 나는 언제나 아팠다.(49)
_ 추억이란 과거의 어느 순간을 왜곡하고 미화하여 편집된, 새로운 기억이었다. 나는 자주 추억에 속았다.(66)
_ 언어가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아득한 순간들이 많았다.(92)
_ "나는 그냥이라는 말이 참 좋더라. 특별한 이유는 아니면서 그것만큼 확실한 이유도 세상에 없는 거 같아."(164)
_ 인간이란 참으로 복잡해서,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쓸쓸해지기도 하는 존재였다.(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