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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
김용택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려면, 얼마만큼 아이들을 사랑해야 할까?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해야 그 아이들이 뛰노는 땅마저 사랑스럽고 성스럽게 느껴져 입을 맞출 수 있을까?
김용택 시인이라면, 과연 그럴테지, 하고 절로 수긍이 가며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는 김용택 시인의 글을 많이 접해보지도 않았고, 시인에 대해 잘 알지도 못 하지만, '김용택' 하면 그런 이미지가 그려진다.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여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도 엎드려 입 맞출 수 있는 사람일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시인이 교사로 재직하던 기간 중 몇 년 동안 여기저기 적어두었던 생각들을 모은 것이라 한다.
아이들과, 특히 2학년 아이들과 보낸 신비로운 시간이 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인은 아이들을 '신비롭다'고 표현했다. 특히 시인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2학년 아이들을.
운동장 구석에서 고개를 땅에 붙일 듯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개미였다. 신비롭지 않은가?
딸랑 둘 뿐인 2학년 학생 둘이 어디선가 정신없이 노느라 수업 시간에 들어오는 것도 잊어버렸다.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들. 신비롭지 않은가?
아이들이 선생님 앞으로 우루루 몰려와 재잘재잘 조잘조잘 열과 성을 다해 무언가를 일러바친다. 저렇게 열심히 이를 수 있다니. 신비롭지 않은가?
한 아이가 유리창을 깼다. 왜 그랬냐고 하니, 머리로 받으면 유리가 깨지는지 안 깨지는지 궁금해서 머리로 받았다고 한다. 신비롭지 않은가?
"신비롭지 않아요?"
시인의 질문에 객석이 조용하자, 시인이 다들 감정이 메말라서 뭐가 신비한 건지 모르고 산다고 했다. 이런 것이 바로 신비한 거라고.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매 순간 순간이 신비로움의 연속이라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시인의 시선이, 시인의 마음이, 시인의 생각이 더 신비로웠다.
나라면 '아이들은 별걸 가지고 다 난리법석이구나'라며 시큰둥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들이 시인에게는 다 신비롭고 신기하다고 했다.
김용택 시인은 과연 남들과 다른 감성을 지닌 사람이로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게 바로 신비한 거라는 시인의 가르침이 내 안 깊숙이 들어왔는지,
갑자기 세상이 달라보였다.
알고 보니 이 세상은, 특히 이제 18개월 된 조카를 둘러싼 일상은 온통 신비로운 일 투성이였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제대로 서지도 못 해 연신 넘어지며 뒤통수를 콰당콰당 해 울음 그칠 날이 없던 조카가 이제는 뛰어다니다니, 피리 소리에 왕왕 짖어대며 날뛰는 강아지를 보고 그렇게 재미있어 하며 꺄르르르 넘어가다니, 밖으로 나가고 싶으면 유모차 앞으로 이모를 끌고갈 줄도 알다니,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음악만 나오면 그렇게 흥겹게 몸을 흔들어댈 줄 알다니…… 새삼 조카의 행동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 옹알이 한 마디 한 마디가 무척이나 신비롭게 여겨졌다. 나도 조카가 뛰노는 땅에 기꺼이 엎드려 입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책이다.
읽고 나면 세상이 새삼스러워 보이는 책. 읽고 나면 세상이 신비로워 보이는 책. 읽고 나면 세상 모든 아이들이 예뻐 보이는 책.
내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해 준 이 책에, 김용택 시인에 고마운 마음이 마구마구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