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극장에서 만나요 창비시선 293
김근 지음 / 창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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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제목이 참 예뻤다.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시집을 펼쳐 읽으며,

머리가 아팠다.

 

내게는 거의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 어렵고 힘든 시집이었다.

 

하지만, 단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이 시집으로 고통 받은 내 마음을 충분히 어루만지고 달래주었다.

바로, 표제시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이제 우리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구름떼처럼은 아니지만 제 얼굴을 지우고 싶은 사람들 하나둘 숨어드는 곳 햇빛 따위는 잊어버려도 좋아요 날카롭게 돋아나서 눈을 찔러버리는 것들은 잊고 구름으로 된 의자에 앉아 남모르게 우리는 제 몫의 구름을 조금식 교환하기만 하면 되지요 「구름목장의 결투」나 「황야의 구름」 같은 오래된 영화의 총소리를 굳이 들을 필요는 없어요 구름극장에는 처음부터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네모난 영사막은 뭉게뭉게 피어올라 금세 다른 모양으로 몸을 바꾸지요 그럴 때 사람들이 조금씩 흘려놓은 구름 냄새에 취해 잠시 생각에 잠겨보는 건 어때요 오직 이곳에서만 그대와 나인 우리 아직 어둠속으로 흩어져버리기 전인 우리 서로 나눠가진 구름의 입자들만 땀구멍이나 주름 사이에 스멀거리기만 할 우리 아무것도 아닐 그대 혹은 나 지금은 너무 많은 우리 사람들이 쏟아놓은 구름 위를 통통통 튀어다녀보아요 가볍게 천사는 되지 못해도 얼굴이 뭉개진 천사처럼 하얗고 가볍게 이따금 의자를 딸깍거리며 구름처럼 증발해버리는 사람이 있어도 그런 건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지요 구름극장이 아니어도 우리도 모두 그처럼 가볍게 증발해버릴 운명들이니까요 햇빛 따위는 잊어버려도 좋아요 구름에 관한 동시상영 영화들은 그리 길지 않아요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저녁이면 둥실 떠올라 세상에는 아주 없는 것 같은 구름극장 말이에요('구름극장에서 만나요' 전문)

 

내 머릿속으로 '구름에 관한 동시상영 영화'가 지나가며, 나는 한적한 지하철 안에서 조그맣게 소리내어 이 시를 읽어 보았다.

입에서 구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정말 어딘가에 이런 구름극장이 있다면 나도 함께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시인의 음성으로 이 시를 듣고 싶었다.

(이 날, 시인의 시 낭송에 반해버렸다. 시 낭송하는 음성이 어찌나 멋지던지!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꼬옥 이 시를 시인의 음성으로 들어보고 싶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구름 사진들을 꺼내어 구름 감상을 하며, 이 시를 읽고 또 읽었다.

참 행복한 밤이었다.

 

비록 시집 전체를 읽는 시간들은 조금 힘겨웠으나.

(전체적으로 먼저 읽은 김민정 시인의 시집과 느낌이 참 비슷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름극장을 꿈꾸며, 품에 꼬오옥 안아주게 되는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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