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70
김민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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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시인은 시동인 '불편'의 멤버이다.

마침 연달아 읽은 시집 <구름극장에서 만나요>의 김근 시인도 역시 '불편'의 멤버이다.

시집을 읽다보니 절로 시동인 이름이 떠올랐다.

 

불편하다해서, 불쾌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쉽게 읽히지 않고, 내 마음에 착착 감기지 않아 어느 정도 읽기에 불편했다는 것 뿐이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불편이었다. 불편 안에도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조금쯤 느낄 수 있었다.

 

이 시집의 가장 큰 매력은, 이런 게 언어 유희!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제목들이었다.

일테면 이런 제목들.

 

화두냐 화투냐 / 고비라는 이름의 고비 / 陰毛라는 이름의 陰謀 / 결국, 에는 愛 / 아내라는 이름의 아, 네 / 오빠라는 이름의 오바 / 젖이라는 이름의 좆 / 페니스라는 이름의 페이스 / 남편이라는 이름의 남의 편 / 강박은 광박처럼 /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

 

(적다 보니 재밌어서 거의 다 적었다.)

이런 제목들이 무척 재미있어서, 시 내용보다 제목에 더 시선을 주며 읽게 된 시집이었다.

사실, 기억에 남는 제목은 많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시는 없다.

다만, 피가 낭자했고(여성의 생리혈), 젖이라던가 좆이라던가 하는 단어들도 여러 차례 등장한 느낌이고, 뭔가 성적인 느낌을 풍기는 구절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게 인상적이면서도, 그닥 편하지는 않았다.

 

그녀를 처음, 읽은 탓일까.

뭐, 어찌되었든, 처음 본 시인의 시집은 불편했어도, 처음 본 시인의 미모는 굉장했다는 기억을 가슴에 품은 채, 그녀를 처음 느껴본 소감 끝.

 


어느 날 벤자민 고무나무 한 그루

나에게서 나에게로 배달시켰다

고르고 보니

키가 딱 아홉 살 소년만 했다

흔들리고 싶을 때마다

흔들기 위해서였다

흔들고 난 뒤에는

안 흔들렸다 손 흔들기 위해서였다

이게 이심인가 전심인가

몇 날 며칠을 기다리는 동안

마른 이파리들 저 알아서

저 먼저서 툭, 툭, 떨어져 내렸다

뒷짐 지고 산책이나 다녀올 일이었다('숲에서 일어난 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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