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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작년에 앞 부분을 조금 읽다가 덮어둔 <1984>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조지 오웰의 다른 책 <동물농장>을 펼쳐들었다.
이 책도 완독하지 못 하면 어쩌나, 그래도 이번에는 고전 100권 읽기를 위해 반드시 완독하고 말리라 다짐을 하고 책을 펼쳤는데,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도, 그 동안 어렵고 지루할 거란 생각에 이 책을 피해왔던 게 민망하게도, 책은 빠르게, 재미있게 술술 읽혔다.
잠깐 맛이나 볼까 하고 펴든 책을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리고 나서, 내가 그 동안 무슨 근거로 이 책을 어렵고 지루한 책일 거라 여겼나 생각해봤다.
답은 금방 나왔다. '고전'이라는 타이틀 때문이었을 거다.
아마 중학생 시절에 만난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 완독하지 못 하고 좌절을 맛보게 한 몇 권의 책 때문에 나도 무조건 '고전은 어렵다'라는 아주 짙은 색안경을 끼게 되었던 모양이다. 이후, 웬만해서는 '고전'이라 이름 붙은 책은 잘 읽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고전 읽기를 하면서 그 색안경을 조금씩 벗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겠구나. 목표 100권 중 이제 겨우 일곱 권 읽었을 뿐이니까). 어렵고 지루한 책을 고전이라 부르는 게 아니라, 다만 그 문학적 가치에 의해 붙은 이름이겠지. 어렵든 쉽든, 지루하든 재미있든 상관 없이 말이다. 어렵고 지루한 책이 싫다면 조금쯤은 쉽고 재미있는 책을 골라 읽으며 고전에 대한 선입견도 깨고 고전과 가까워지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이 책도 그러기에 좋은 책이다.
한 농장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동물들에 의한 반란. 의식이 깨인 동물을 중심으로 이기적인 인간을 몰아내고 동물들이 농장의 주인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해가는 내용이, 동물들의 시각으로 쓰여 있다. 우선 사람이 아닌 동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점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비록 한 동물 농장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그곳의 모든 일상이 어떤 사회 체제, 어떤 나라, 어떤 지도자를 떠올리게 하여 마치 글의 주인공이 돼지나 암탉이 아니라 이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느껴져 무척 생생했다.(작가가 실제로 '스탈린 시대의 소비에트'를 과녁으로 쓴 글이니 말이다.) 웃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그래서 웃으면서도 뭔가 찜찜하고 (누구에게인진 모르겠지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회에 다양한 구성원이 존재하는 것처럼 동물 농장에도 그와 다를바 없는 구성원들이 등장한다. 나는 그 중에 어떤 동물에 속할까, 생각해보았다. 우두머리 돼지는 절대 아닐 거고, 철저히 세뇌 되어 열심히 구호를 외치는 양떼도 아닐 거고, 나라도 조금 더 열심히! 라고 외치는 복서도 아닐 거고, 그렇다고 일신의 편안을 위해 물질에 정신을 파는 몰리는 되고 싶지 않고(아니라고는 못 하고?), 독재자 돼지를 지키는 충실한 개떼도 아닐 거고, 이렇게 저렇게 따지다 보니, 내가 얼마나 이 사회에 있으나마나한 존재인가가 느껴져 비참했다. 세상에 있는 세 부류 인간, 꼭 필요한 사람,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 있으나마나한 사람 중에 제일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있으나마나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어렸을 때 이 얘기 듣고 반발했었지.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보다야 있으나마나한 사람이 낫지 않겠느냐고. 그런데 커서 생각해보니, 그런 사람만 있으면 사회가 발전이 없겠더라) 문득 나의 보잘 것 없음을, 떠올리게 되었다나. 뭐 책이야 작가의 손을 떠난 이상, 독자들 읽기 나름이니까, 나는 이 책에서 엉뚱하게도, 조금 더 존재감 있는 사회 구성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두 주먹을 불끈(까지는 아니고).
고전은 어렵고 지루해, 라는 편견을 깨주는 책을 연달아 두 권 읽었더니, 이제 두려움이 조금 가신다.
앞으로 만나게 될 책들에 대해서도 기대가 크다. 이제는 조금 어렵고 지루한 책 만나도 바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 같다. 고전 읽기가 점점 즐거워진다.
(다음 책들 리뷰 쓸 때도 이 소리가 나와야 할텐데.)
아, 이 책에서는 조지 오웰의 에세이 두 편도 만나볼 수 있는데, 그 중 '나는 왜 쓰는가'에서 한 부분 옮기며 마무리.
_ 책을 쓴다는 것은 마치 길고 고통스런 투병 과정처럼 끔찍하고 피곤한 작업이다. 저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마귀에 씌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피곤한 작업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마귀는 어린 아기가 시선을 끌기 위해 소리를 내지를 때의 그 본능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읽을 만한 책도 쓸 수 없다는 것 또한 진실이다. 좋은 산문은 창유리와도 같다.(143~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