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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저 그랬다.
한 소년이 학교에서 계속해서 퇴학 당하고 집에 알리지도 못 하고 방황하고 돌아다니는 이야기 자체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랬는데 어쩌다 보니 이 책을 또 읽게 되었다.
사실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텐데, 그게 무엇인지. 다시 읽으면 내 머리에도 전구가 파팟 켜질까 조금쯤은 기대하며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처음에 이 책을 읽고나서야 이 책이 심리묘사가 대단히 뛰어난 책이라는 걸 알았는데,
다시 읽다보니 그 점이 눈에 들어왔다.
방황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 자체에는 여전히 그다지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소년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듯한 심리묘사에는 큰 매력을 느꼈다.
내가 내 마음을 실시간으로 일기장에 기록한다 해도 이렇게 세밀하게 다 적어내지는 못 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바로 문자로 기록되어 나오는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럼 그렇게 기록되어 나온 글을 읽으면 이 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까?
갑자기 나만의 '심리 소설'을 한 권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쓰는 여섯 줄 짜리 일기 정도로 나의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기록하고 있다는 착각일 뿐이다.
내가 죽기 전에 이 책의 문장과 같은 글로 채워진 일기를 한 페이지라도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 특히 이 병원에 있는 정신과 전문의가, 이번 9월부터 학교에 가게 되면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인지를 연신 물어대고 있다. 정말 이보다 더 어리석은 질문이 있을까? 실제로 해보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하게 될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야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것이다.(278)
「저, 선생님. 제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입니다. 저는 괜찮을 거예요. 이건 한순간일 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여러 시기들을 거치지 않습니까?」
「모르겠군. 정말 모르겠어」
난 사람들이 그렇게 대답할 때가 가장 싫다. 「분명합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살아갑니다. 저도 그런 겁니다. 선생님. 제발 더 이상은 제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난 선생의 어깨에 손을 올려 놓으며 말했다. 「아시겠지요?」(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