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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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도>, <세한도>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난 키워드 한국문화이다.

제목으로는 가장 흥미진진해서 제일 먼저 읽어보고 싶었는데, 막상 읽어본 소감은, 읽은 순서대로 재미있다는 느낌.

(구운몽도 > 세한도 > 정조의 비밀편지)

 

정조의 비밀편지란 정조가 대신 심환지에게 보낸 350여 통의 어찰을 이른다.

(어찰 : 임금이 쓴 편지, 어필 : 임금이 직접 쓴 글씨, 어제 : 임금이 직접 지은 글, 어제어필: 임금이 직접 지어 친필로 쓴 글)

평소에 문장 쓰기를 즐기긴 했던 정조이지만 심환지 한 사람에게 비밀리에 보낸 편지가 그렇게 많으며, 또한 정조가 없애 버리라고 했음에도 무슨 연유인지 그 편지들이 잘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어 이렇게 공개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언제였던가,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에게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소설가에게 편지를 쓰려니 무척 긴장된다며, 몇 마디 주절거린(줄 알았는데, 나중에 답메일에 함께 따라온 내가 보낸 메일을 보니 쓸데없는 글까지 덧붙여가며 무지 길게 쓴, 그래서 다시 생각 할 때마다 무지 민망한) 메일을 보냈는데, 그 소설가의 말이, 코미디언들이 집에 가서 코미디 하지 않듯, 소설가들도 이런 글은 편하게 쓰니 염려 말라고 했었다.

정조의 비밀편지를 보면 문득 그때의 그 이메일을 떠올린 것은, 한 나라의 왕도 사사로이 쓰는 편지에서는 '아니, 임금이 이런 표현을?' 싶은 표현까지 써가며 무척 편안하게 글을 쓴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소설가가 사적인 편지는 편하게 쓰듯이, 임금도 비밀편지에서는 근엄과 격식을 잠시 벗어 놓고 친근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모습에 인간미가 물씬 느껴졌다.

특히 요즘 우리가 쓰는 'ㅋㅋ'에 해당할 것 같은 '껄껄(呵呵)' 같은 표현을 즐겨 쓰던 임금이라니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물론 정조가 쓴 비밀편지가 모두 다 사사로운 안부 편지인 것은 아니고, 조정을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도 겉으로 내보인 것과 다른 속내를 편지에 적어 심환지에게 전하거나 편지를 통해 그가 이러저러하게 행동 해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만약에 당시에 공개되었다면 상당히 곤란한 내용도 많았을 거라 생각된다. 그러니 정조가 꼭 없애라고 했을테지. 다행히도(?) 심환지가 정조의 명을 어기고 이 비밀편지들을 없애지 않은 덕에 정조의 인간적이고 솔직한 면모를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어주었다.(물론 그 외에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겠지만.)

 

문장 쓰기를 즐겨한 왕.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이 담긴 편지를 즐겨 쓴 왕.

만약 정조가 왕이 아니었다면, 분명 한 시대를 풍미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을 것 같다.

정조가 남긴 글들이 엮어진 책이 있다면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소식이 갑자기 끊겼는데 경은 그동안 자고 있었는가? 술에 취해 있었는가?

아니면 어디로 갔었기에 나를 까맣게 잊어버렸는가? 혹시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아 그런 것인가?

나는 소식이 없어 아쉬웠다.

이렇게 사람을 보내 모과를 보내니 아름다운 옥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겠는가?

                                                                   -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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