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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적인 삶 - 2009 제9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언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올해 읽은 책 중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고 읽은 책이 두 권 읽는데,
그 중 하나는 교정지로 읽었던 문학평론집이었고(일이 아니었으면 도저히 끝까지 다 읽어내지 못 했을 거다)
다른 하나는 바로 이 시집이다(일이 아니었는데도 궁금해서 끝까지 다 읽었다, 이 시인만 어려운가 전부 다 어려운가. 결론은 전부 다).
시집 뒤에 실린 김언 인터뷰 '길을 잃는 즐거움'이란 글에 평론가 신형철의 이런 말이 인용되어 있었다.
"하루에 세 편 이상 읽을 경우 과열된 독자 머리가 폭발할 위험이 있"다고.
이 말은 비단 김언의 시 뿐 아니라, 이 시집에 실린 모든 시에 다 해당되는 듯 했다.
그래서 하룻밤에 이 시집을 다 읽은 후 내 머리에는 쥐가 1023마리 쯤 뛰어다니는 기분이었다.
이 머리에 난 쥐를 잡아줄 고양이를 풀어야 했지만, 도저히 뭘해야 할지 몰라 그냥 멍하니 누워 있다가 대만 드라마를 틀어 놓고 잠을 청했었다. 다행히 고양이의 효과가 좋아 금세 잠 속으로 빠져 들 수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시를 읽지 않았기에 나는 시도 이렇게 수상작품집이 있는 줄 몰랐다.
작년에서야 이런 책이 있다는 걸 알고 상을 받는 시는 어떤 시들일까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 만나본 시 문학상 수상작품집이었는데,
아아, 정말이지 내게는 너무너무 어려웠다.
상을 받는 시, 라는 게 다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2009년만 이런 것인지가 궁금해서 아마 나는 또 이 수상작품집을 찾아 읽어볼 거 같다. 그래도 정녕 다 어렵다면, 앞으로 시집은 상 받았다고 하면 보지 않을지도.
이 책을 통틀어, 무슨 말을 하는지 마음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싶은 시는
아이티 지진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진흙 쿠키 이야기를 담은 김신용의 '진흙 쿠키'를 포함하여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시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내 감수성의 문제인 것인지, 아니면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정말 어려운 것인지,
여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시들 앞에서 나는 슬펐다.
슬플 때 나를 위로하는 건 내 몸이 먼저다
미열이 그 식구이다
섭씨 39도의 편두통은 지금 염료를 섞고 있다
내 발열은 치자꽃대궁 같은 것
치자꽃 노란색 열매는 종일 위염을 생각하고 있다
햇빛의 양철 지붕에 세운 내 미열 학교에서
아픈 위도 명치에서 질문한다
붉은색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쓰라린 위를 향한 몸의 집착은
슬픔의 입성을 꿰차는 것이다
식구 없는 슬픔도 참조하도록!
자꾸 속삭이는 적나라한 열꽃.
자꾸 넘치는 치자꽃물의 강우량에 물드는 쪽으로
미열은 운동한다
어깨도 등도 치자꽃 가득핀
슬픔역의 악보여(송재학, '슬픔의 식구'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