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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2008년에 밝혀보지 못한 촛불이, 이 책을 통해 내 안에 환하게 밝혀졌다.
김선우 시인의 시집을 한 권 읽었다. 시인을 한 번 만났다. 그리고 이번에 소설책을 만나보게 되었다.
소설가가 쓴 시를 읽어 본 적은 있지만, 그 반대로 시인이 쓴 소설은 이번에 처음 읽어본 거 같다.
워낙 그녀의 글이 좋다는 이야기를 자자하게 들었던지라 무척 기대한 만남이었는데,
처음에는 칙릿인가? 싶은 분위기가, 특히 대화체에서, 느껴져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촛불 집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소설이 주는 느낌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 소설은 촛불 집회에 대한 소설이자, 촛불 집회의 한 기록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캐나다 오지 마을에 사는 다소 신비한 영적인 분위기를 가진 열다섯 살 소녀 지오가 그녀 영혼의 '반쪽'을 찾기 위해 찾아온 나라 한국에서 만나게 된 촛불 집회의 모습이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아마 소설에 묘사된 촛불 집회 모습은 상당 부분 기록사진과 같은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해본다.
2008년, 전국에 촛불이 환하고도 뜨겁게 밝혀지던 그 시간들 동안, 나는 한 번도 촛불을 켜 본 적이 없다.
티브이도 잘 켜지 않는 나인지라 어쩌다 티브이 뉴스를 보게 되면 그 화면을 통해 촛불들의 모습을 간간이 봤을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 묘사된 촛불 집회의 모습이 사실과 얼마만큼 일치하는지 다른지 나는 알 수 없겠으나, 내 느낌은 그랬다. 이 소설은 기록사진의 역할도 할 거라고. 이 소설에 묘사된 상당부분이 시인의 직접 경험에서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한 번도 광장에 나가지 않았고, 온라인으로도 동참하지 않았고, 뉴스도 챙겨 보지 않은 나에게,
이 소설은 처음으로 나에게 촛불 집회의 면면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다.
작은 손팻말에 개성 있는 문구를 적어 들고 다니는 사람들, 자유 발언대에서 속 시원하게 속엣말을 질러내는 사람들, '촛불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내어놓는 사람들, 학생들을 보며 너희에게 이런 시간을 보내게 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어른들, 한 손엔 촛불을 한 손엔 연인의 손을 잡고 다니는 촛불 연인들, 그리고 촛불을 든 이들이 내뱉는 촌철살인의 한 마디 한 마디.
이 소설이 아니었으면 나는 영영 모르고 지나갔을, 이 소설이 아니었으면 각자의 경험으로 각자 '마음의 역사'에 기억되었을,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될 그 시간들이 그 장면들이 이 책을 통해 내 가슴속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지치지 않게 싸우는 법을 터득해 가고 있었다. 이렇게 말할 만했다. 축제가 된 싸움은 이전의 우리 역사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 즐거운 싸움에 누구는 섞이고, 누구는 구경하고, 누구는 욕하고, 어디서는 애가 태어나고, 누군가는 소집을 당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거나 이별을 하는 연인들도 있을 것이었다.(242)
촛불이 타오른 그 시간을, 각자가 어떻게 보냈든, 우리는 같은 시간을 지나왔다. 누군가는 촛불을 들었고, (나와 같은) 누군가는 방관했고, 누군가는 욕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역사에 남을 이런 시간을 우리가 지나왔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내 안에 촛불처럼 밝혀졌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때 나도 함께 나가 촛불을 들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이 책 덕분에 뒤늦게나마 그 시간들을 '공유'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그때 함께 촛불을 밝혔던 사람이라면, 경험을 통해 '마음의 역사'에 이를 기억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이 놓쳐서는 안 될 소설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나처럼, 그때를 놓친 사람도, 이 소설만은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
다행이다, 이 소설이 그 시간을 기록해주어서. 늦게라도 내 마음속에 촛불을 켤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