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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 제목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 말이, 원래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이 책을 만나면서 알았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50대에 마약 혐의로 법정에 서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만 들었다면 그 말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을 텐데, 그 앞에 붙은 단서가 멋있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유,랍시고 실제로는 방종,을 일삼는 사람들이 한 번쯤 눈 여겨 봐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를 누린 사람, 인생을 충분히 즐겼으므로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
프랑수아즈 사강.
그리고 이 책은 그녀의 열정과 사랑이 담겨 있는 책이다.
그녀가 사랑한 사람, 그녀가 사랑한 책, 그녀가 사랑한 행위, 그녀가 사랑한 장소 등을 만나며
그녀가 이 삶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또 얼마나 뜨거운 열정으로 이 삶을 살았는지를 느낄 수 있는, 가슴 벅찬 느낌의 책이었다.
아직 그녀의 소설을 한 권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나는 자신의 삶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열정만으로도 이미 이 작가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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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를 타느라 두 다리와 팔, 등허리가 피곤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천천히 숨을 쉬었다. 태양이 내 머리칼과 피부를 말리는 것이 느껴졌다. 파랗고 눈부신, 그리고 놀랄 정도로 맑게 비어 있는 하늘 아래 아무도 없이 혼자 있으니, 내가 내 몸의 주인임을, 내 스키의 주인임을, 내 삶의 주인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세상의 주인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 존재, 그들의 정신, 그들의 모순, 그들의 온기, 그들의 마음, 그들의 신경, 그들의 고통, 그들의 욕망, 그들의 결점, 그들의 의지, 그들의 열정, 그 모든 것이 좀 더 먼 곳에서, 좀 더 낮은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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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기 몸을 사랑하고 아끼라는 말을 가르침처럼 들어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에 반감이 들기는 커녕 오히려 나도 그런 권리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참 이상하다.
어쩌면 옮긴이의 말처럼 글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글의 힘이라는 것은 실로 대단하다. 도박과 스피드에 대한 사강의 글을 읽노라면,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는 참으로 위험한 취미임에도 불구하고(실제로 사강은 1957년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사고를 당하여 심각한 중상을 입기도 했다), 그녀가 설파하는 그것들의 매력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니 말이다."
자, 이렇게 작가에게 홀딱 반해버렸으니, 이제는 이 작가의 소설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그녀의 소설들도, 그녀만큼이나 열정적일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