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 - 천 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 키워드 한국문화 1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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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한국문화'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재발견하는 작업이다. 한국문화의 정수를 찾아 그 의미와 가치를 정리하는 일이다. 한 장의 그림 또는 하나의 역사적 장면을 키워드로 삼아,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한국을 찾자는 것이다. …… 우리의 것이니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같은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주어 자연스레 책을 펼쳐볼 수 있게 했다. …… 한국문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나, 어렴풋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선입관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또 좀더 깊이 알고자 하지만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키워드 한국문화'는 좋은 안내자가 될 것이다. _ '키워드 한국문화를 펴내며' 중에서.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를 알게 된 건, <구운몽도>에 독자모니터로 참여하면서였다.

책이라곤 거의 소설밖에 읽지 않고, 옛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지레 어렵다고 생각하며 거의 손에 잡아본 적이 없어서 교정지를 보는 마음이 좀 무거웠었다.

하지만 나는 밤을 새가며 교정지 읽는 데 푹 빠져 있었다. 내 우려와는 달리 무척 재미있고, 어렵지도 않았다.

'한국문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좋은 안내자가 될 것'이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나보다.

그렇게 알게 된 '키워드 한국문화'는 요즘 내 책 읽기의 새로운 키워드가 되었다.

 

현재 출간 된 다섯 권 중에서 가장 먼저 만나본 책은 <세한도>이다.

하도 많이 밝혀서 새삼스럽지도 않은데(그래도 내 입으로 말할 때마다 부끄럽긴 부끄럽지만) 아는 거 쥐뿔 없이 '무식이 통통 튀는' 나인지라, 제목을 보고도 나는 추사 김정희를 떠올리지도 못했다.

그러니 이 책이 겨냥하는 독자층 중 '한국문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은 소감을 말할 수 있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 '이런 책'이 어렵지 않을까 했던 우려와는 달리 소설책 읽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참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같은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주'는 덕분이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시절에 그린 한 장의 그림이다.

'붓을 쓱쓱 문질러 대충 그린 것 같은 나무 몇 그루와 이상하게 생긴 집만 덩그렇게 자리하고 있'는 '황량한 느낌'의 그림.

이 그림이 탄생하기까지 추사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모종의 일과 그의 제주도 유배 생활, 그리고 우선 이상적과의 감동적인 우정 등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던 건, 추사 김정희에게 보여준 우선 이상적의 우정이었다.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이 겨울을 지나 봄을 건너고 있는데도 아무런 소식도 없군요. 마치 고목나무 집에서 세상일을 전혀 모르고 단절된 채 지내고 있는 듯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두렵거나 정신이 몽롱해져 미쳐버릴 것 같은 이런저런 업보는 없지만, 옛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은 풀어버릴 수가 없어 때로는 산을 옆구리에 끼고 바다를 뛰어넘고 싶습니다.(81)

 

친구들이 그리워 산을 옆구리에 끼고 바다를 뛰어넘고 싶다는 추사에게 우선은 소나무와 잣나무 같은 친구였다.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처럼, 추사의 인생에 겨울이 드리워서야 우선이 추사에게 보여준 우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청나라에서 구해온 귀한 서적을 권세나 이권을 생각하지 않고 유배 중인 추사에게 보내주는 그 마음씀씀이는 추사 뿐 아니라 나도 감동시켰다. '물처럼 담박하고 난초처럼 향기로웠'던 그 우정.

나는 누구에게 추사의 우선 같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까...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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