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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포스터 ㅣ 작가정신 청소년문학 1
케이 기본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 어느 나라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만 18세(성인)가 되면 자신의 이름을 직접 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마음에 들면 쭈욱 쓰면 되는 거고, 그러지 않으면 성인으로서 스스로의 이름을 지을 수 있다는 것.(그런데 그런 나라가 실제로 있는지는 아직 확인 못 했다. 사실, 내 기억으로는 말이다...미국이었다. 흠.)
그 얘기를 듣고 우리나라도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시 내가 성인이 되면 그런 법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부러움과 희망을 가져본 적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초등학교 시절 들은 그 이야기가 종종 생각나며, 나도 내 이름의 주인된 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하여 내 맘대로 이름을 좀 바꿔볼 수 없을까, 생각하곤 했다.
이름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버린 건(그렇다, 지금은 내 이름 석자를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했다) 불과 몇 년 전이었다.
나는 이제서야 내 이름을 좋아하게 되었는가?
딱히 그런 건 아니었는데, 이름을 바꾼다는 그 행위와 내 운명을 연관지어 생각하게 되었던 게 그 원인이었던 듯 하다.
그러니까 이름을 바꾸면 운명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정말로 이름을 바꿔 운명이 바뀐다면, 그래서 좀 더 나은 운명으로 간다면 무척이나 복된 일이겠으나, 혹시 돌팔이 작명가라도 만나 내 인생 개털되는 이름이라도 만나게 되면 어쩐단 말인가. 로또 한 장에 운을 걸어보는 담도 없는데, 내 이름에 운명을 걸어보는 모험을 할 수 있는 내가 절대로 아니었다.
그래, 이 이름도 지금까지 내게 그리 힘든 삶은 가져다 주지 않았다. 이렇다 할 사고 한 번 난 적 없고, 크게 아픈 적도 없고, 중국어로 '마마후후(그저그런)'한 삶 정도는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이름인가 보다, 그저 부르기 예쁘지 않아서 그렇지.
난 그렇게 새 이름을 향한 갈망과 작별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이름을 바꾸고 싶어하던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주인공 이름 때문이었다.
사실 주인공의 이름에 대해서 책에 비중있게 나오는 건 아닌데, 나는 '엘렌 포스터' 그 중에서 '포스터'라는 성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깊게 와 닿았다. 원래 자신의 성은 아니지만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성 '포스터'. 엘렌은 원래 자신의 성(이 무엇이었더라?)을 버리고 포스터라는 성을 선택하고 포스터 가를 찾아가 그 집의 구성원이 된다.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스스로의 운명을 찾아나서 일구어낸 것이다. 엘렌이 '엘렌 포스터'가 되기까지는 그녀 앞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말로 감히 엘렌 포스터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다 그러려니 덮어버리기는 좀 미안할 정도다.
아침 잠 하나 극복하지 못하는 나에게, 엘렌의, 이름을 바꾸는 그 행동력은 무척이나 큰 울림을 안겨주었다.
문득 <만약에 말이지>라는 책이 생각난다.
그 책의 주인공도 이름을 바꾼다. 어느날 우연히 일어난 사건 때문에, just in case, 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이름을 저스틴 케이스로 바꾸고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한 사내 아이의 이야기가 나오는 책이다.
문득 이 두 책의, 이름까지 바꿔가며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소년소녀 이야기가 내 가슴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다시, 작명소 찾을 생각에 심장이 간질간질해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