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 최영미 산문집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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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이 쓴 산문집을 좋아한다.

나에게 그 매력을 처음 알게 해 준 책은 함민복 시인의 <미안한 마음>이었다.

시인의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글을 보고 있노라니 산문시를 읽는 기분도 들었고,

글을 통해 느껴지는 시인의 따듯한 마음이 내 마음에도 온기를 가득 퍼뜨려주었더랬다.

그 여운과 감동이 참 오래도록 남아, 이후 시인이 쓴 산문집을 종종 찾아 읽곤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최영미 시인이다.

최영미 '시인'의 '산문집'이라는 이유로,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내 마음대로 이 책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었다.

물론 따뜻하고,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글들이 가득한 책일 것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예상 혹은 기대 혹은 바람과 다른 글들을 맞닥뜨린 데서 오는 당혹감에 처음에는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마냥 편안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이건 책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내가 '시인'과 '산문집'이라는 두 단어만 가지고 내 멋대로 책을 짐작하고 판단하는 실수를 범했던 것일 뿐.

이 책은 2000년에 발간 되었다가 절판 된 책을 개정판으로 펴 낸 것인데, 2000년에 발간된 책은 '사회평론'으로 분류되어 있는 걸 봤다.

산문집보다는 사회평론이라는 분류가 더욱 잘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이 책의 2부는 2000년에 출간되었던 책에 실렸던 부분이고, 1부는 개정판에 새로 실린 부분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여러 신문 지면 등에 발표했던 것들이다.(글의 출처를 보면 이 책에 실린 글들의 느낌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갈지도.)

특별히 어떤 주제가 있다기보다는, 이런저런 주제로 쓴 글들이 함께 모여 있는데, 그 점이 이 책의 제목과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의 일기가 그런 것이니까.

어제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내일은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우리의 일기장이니까.

1993년의 최영미 시인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1999년의 최영미 시인은 어떤 것들에 끌리고 있었는지, 2006년의 최영미 시인은(그리고 우리 모두는) 어떤 시간들을 지나왔는지, 이 '일기장'이 우리 앞에 펼쳐보인다.

그리고 우연히 그녀의 일기를 엿보게 된 나는, 일기장의 글들을 통해 한 송이 장미 같은 최영미 시인의 이미지를 그려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장미,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하여 온몸 가득 가시를 달고 자신을 보호하는 장미.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전혀 알지도 못 하는 한 시인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아름답고 강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마음은 여리고 상처도 많이 받는, 그리고 그런 모습을 감추기 위해 가시를 세우는 한 인간의 모습에,

나는 처음에는 불편하다가, 그 안에서 점점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면서 끝내는 공감하고 만, 그리고 그녀를 향한 안쓰러움인 듯 가장하여 사실은 내 자신을 위로하고 싶은 그런 기분을 느꼈다.

 

내가 처음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달랐지만, 그와는 또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는 책이었다.

그러고보니 올해 최영미 시인의 책을 많이 만난 편이다. 그녀는 이 단어를 끄집어내는 걸 원치 않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서른'이어서일까? 한때 '서른'이라는 단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던 그녀의 글들이 자꾸 나를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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