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나에게 쉼표 - 정영 여행산문
정영 지음 / 달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블로그에 쉼표를 찍은 적이 있다.

갑자기 마음이 너무 지치고 일상이 벅찼는데 문득 이 책 제목이 떠올랐다.

때.로.는.나.에.게.쉼.표.

그리하여, '아, 나에겐 쉼표가 필요해!'라고 외치며 (기껏) 쉼표를 찍은 곳이 블로그였다.

마음 같아서야 비행기 타고 어디론가 훌훌 날아가버리고 싶었지만, 하다못해 무작정 기차라도 타고 아무 곳이나 가서 바람을 쐬고 싶었지만, 그때 내 앞에는 산더미 같은 일이 버티고 있었으므로 블로그에 화풀이를 하고는, 몇 주가 지나 이 책을 읽어보는 것으로 내 삶의 쉼표를 대신했다.

 

비록 내 인생에 찍는 쉼표는 아니지만 저자 정영의 커다란 쉼표를 따라다니다보면 내 마음에도 좀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이 책을 읽고 나니 내 머릿속에는 쉼표 대신 새로운 문단(삶) 들여쓰기, 혹은 타인의 삶에 대한 인용 부호 같은 느낌이 더욱 강하게 남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찍은 것은 쉼표였지만, 그것은 쉼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이었고, 또 다른 인연과의 만남이었으며, 또 다른 나의 탄생이기도 했다.

아, 이 지루한 삶에 쉼표를 하나 찍는 순간, 그 앞에 펼쳐지는 이 상큼하고도 아름다우며 가슴 벅찬 날들이라니!

 

그녀의 발걸음에서는 시작과 끝을 알리는 제한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녀가 불쑥불쑥 찍은 쉼표들은 지도에 표시해보자면 일관성을 가지고 선을 이을 수도 없다. 어제는 이스탄불, 오늘은 태국, 내일은 대한민국의 어느 섬마을, 모레는 라오스……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그 처음과 끝을 정해 놓는 여행이라는 게 문득 재미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저 그녀가 이끄는대로 그녀가 찍은 쉼표의 흔적을 따라다니며 조금씩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찾아갔던 이 '여행'이 즐거웠다.

 

이 여행산문을 통해 저자 정영의 삶의 조각들을 엿보며, 그녀는 어찌 이렇게 '영화 같은' 장면들과 많이 맞닥뜨렸단 말인가, 전생에 무슨 복이 많아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단 말인가, 도대체 그녀의 삶에 벌어지는 이런 일들이 내게는 왜 일어나지 않는단 말인가, 하는 생각들을 하며 저자가 어딘가 특별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함께 했다.

하지만 그녀와 나의 삶이 그렇게 다른 것은 사실 쉼표 하나 차이였다. 말 그대로 쉼.표.하.나.차.이.

일상에 쉼표를 찍은 자, 새로운 삶과 만날지니!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 또 다짐 해봤다. 가까운 시일 내에 꼭 일상에 쉼표를 찍고 새로운 삶과 만나기 위해 떠나리라!

표지만큼이나 마음이 파아랗고 시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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