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시 - 시인 최영미, 세계의 명시를 말하다
최영미 / 해냄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서른, 잔치는 끝났다>, <도착하지 않은 삶>의 시인 최영미가 사랑하는 세계 명시를 엮은 책이다.

사실 최영미 시인의 시집과는 크게 교감하지 못했지만, 한 시인을 키운 시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최영미 시인의 '청춘의 문장들' 같은 시집이겠지.

 

평소에 시를 많이 보지도 않지만, 본다해도 거의 우리나라 시집밖에 보질 않아서 외국 시는 정말 오랜만에 접해봤다.

게다가 연대가 기원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라니!

이 시집이 아니었으면 만나기 힘들었을 것 같은 오래된 시들과의 만남이 무척이나 뜻깊게 느껴졌다.

이름부터 낯선 (하지만 무척 유명한 게 틀림없어 보이는) 시인들부터 이름은 들어봤지만 아직 시는 접해보지 못한 시인들, 시 몇 편쯤은 만나본 적 있는 시인들까지, 이 책은 내게 새로운 시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저자의 말에서 만난 '여러 삶을 살 수는 없지만 여러 시를 읽을 수는 있다.'라는 문장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시집이었다.

나는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의 한 평범한 여성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지만,

최영미 시인이 소개해 준 시들 덕분에 기원전 이집트의 삶도, 13세기 이탈리아의 삶도, 17세기 영국의 삶도, 바로 얼마 전에 지나간 일본의 삶도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향유해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시를 최영미 시인이 직접 번역했다 한다.

원문으로 그 시들을 줄줄 외우며 그 아름다운 리듬감에 전율을 느꼈을 시인을 생각하니,

번역된 글자로밖에 시를 볼 수 없는 나의 '까막눈' 신세가 그 어느때보다 아쉽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가 원문도 함께 실려 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욕심도 조금 들었다.

뭐 나에게는 무용지물일지라도 다른 독자들에게는 분명히 시 읽기의 또다른 맛을 제공해줄테니까.)

하지만 역시 시인의 번역이라 그런지, 번역된 문장으로만 봐도 무척 아름다운 시들이 많았다.

 

짧게 곁들여 놓은 최영미 시인의 '해설'을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이 알게 되었는데,

에밀리 디킨슨이 죽을 때까지 독신이었다던가, ('내 인생의 책' 중 한 권인) <테스>의 저자 토마스 하디가 수백 편의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했다던가, 두보는 고사성어나 어려운 한자를 많이 쓰지만 이백의 시는 각주 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다던가,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사실은 존 던의 시 제목이라는 등의 이야기들은, 시에 문외한인 내게는 "전혀 몰랐군!"하는 감탄과 함께 시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그리고 최영미 시인의 이런 이야기는 정말이지 두팔 벌려 환영.

"나룻배는 누구이고 행인은 누구일까. 교과서에서 배운 「님의 침묵」처럼 혹시 어떤 심오한 상징이 숨어 있지 않나? 묻지 말고 그냥 지극한 짝사랑의 토로로 봐도 무방하다. 민족이니 불교사상이니 하는 관념을 갖다대어 분석하려 들지 말고, 만해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버리고 상식의 차원에서 음미해야 시의 참맛이 우러난다고 나는 믿는다."

시인이 이런 말을 해주니, 앞으로 시 읽기가 더 편하고 즐거워질 것 같다. 적어도 최영미 시인의 시집만이라도.

그래서 앞서 나와 별로 교감을 나누지 못했다고 말했던 그녀의 시집들을 다시 펼쳐보고 싶어졌다.

검은 교복을 입고 글자들을 먹어치우던 그 시절의 그녀처럼 내가 시에 빠져드는 날은 없을지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 한두 편이라도 늘 마음에 담고 소리내어 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시집을 통해 시가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는 언제나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