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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자란다 - 아라이 연작 소설
아라이 지음, 양춘희 외 옮김 / 아우라 / 2009년 9월
평점 :
이 책의 작가 아라이는 티베트 자치구 마얼캉현에서 태어났다.
티베트 출신 작가의 책은 처음 만나보았다.
뿐만 아니라, 티베트는 여행서적으로만 만나보았지, 소설을 통해서 만나본 기억도 거의 없다.
아라이는 나에게는 낯선 작가이지만, 중국에서는 2007년에 중국평론가들이 뽑은 '실력파 중국 작가 순위'에서 모옌에 이어 두 번째로 선정될 정도로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작가라고 한다. 그의 또다른 작품 『색에 물들다』는 1999년에 중국에서 선정한 '100년간 100권의 우수 중국문학도서'에서 1998년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런 중국 작가를 모르고 있었다는 게 살짝 부끄러워지며,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될 티베트의 생생한 모습이 무척 기대되었다.
여행서가 아닌 소설을 통해 만나게 될, 그것도 티베트 출신 작가의 글을 통해 만나게 될 티베트는 어떤 모습일지...
새로운 글을 만나게되겠구나는 설렘에 앞서 작가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글을 읽으며,
이 소설을 읽는 '마음가짐'을 다시 해야 했다.
"문화가 발전되어 있고, 세계를 잘 아는 사람들은 티베트의 자연이 너무나도 척박하여 사람들이 아주 힘들게 살아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잖은 사람들은 그런 척박한 땅에 무릉도원을 세우고자 했고 거기에 '샹그릴라'라는 이름을 붙였지요. 전 세계가 발전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이러한 유토피아적 상상을 이용해 티베트의 발전을 바라지 않거나, 티베트의 미개발 및 몽매함을 보존하기 위해 동정을 구하고 그 합법성을 모색하기도 했습니다."('한국의 독자들에게' 중에서)
내가 바로, 유토피아적 상상으로 티베트 등 국가의 발전을 바라지 않는, '누군가'였기 때문이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만났던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나라들을 보면서, 그 나라들이 조금이라도 더 개발되기 전에 방문해야겠다는 조급함, 그 나라들만이라도 개발되지 않고, 영원히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샹그릴라'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 그게 얼마나 엉뚱한 나의 욕심이고 지나친 이기심이었나, 하는 생각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작가의 바람대로, 티베트를 내 상상속의 티베트와 비교할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리하여 티베트와 소통하고, 티베트를 이해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과연 작가가 들려주는, 자신에게 익숙한 티베트 사람의 이야기는 무엇일지.
이 책에는 모두 열세 편의 짧은 소설이 실려 있다.
티베트의 발전 과정과 티베트 백성들의 생할, 중국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이, 조금은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낯섦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 읽어왔던 중국 소설들과 확실히 다르게 느껴지는 점이라면, 어딘가 신화 또는 전래동화처럼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티베트라는 나라가 내 마음속에 워낙 신비한 분위기로 그려져 있다는 점도 한몫 했겠지만, 이 책에 실린 글들, 특히 결말 부분이 어렸을 때 많이 읽었던 외국 전래동화나 신화를 떠올리게 했다.
티베트의 진실을 봐 달라고 한 작가의 말을 가슴에 새겼음에도, 이 책을 덮으며 티베트를 더 신화적인 이미지로 간직하게 된 부분이 없잖아 있다.
'스스로 팔려간 소녀'에 그려진, 읍내를 '세상의 끝'이라고 여기고 사는 지촌 여인들의 모습이 특히 마음에 오래오래 남는다. 그래서 지촌의 그 소녀는 , 더 넓은 곳, 더 멀리에 있는 세상의 끝을 찾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팔아버린 거겠지. 그녀가 본 세상의 끝은 어디였을까? 현 소재지를 넘어, 성 소재지를 넘어, 주 소재지를 넘어, 더 큰 도시를 넘어, 베이징까지, 그리고 외국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던 소녀의 생각을 따라, 나도 그녀가 찾아갔을 세상의 끝을 그려본다.
아라이라는 작가를 통해 만나게 된 티베트의 이야기, 무척 신선하고 좋았다. 그의 또다른 책 『색에 물들다』도 만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