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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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발표 기사를 접하고 내내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라는 제목에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 후 문학동네 계간지에 실린 작가의 수상 소감과 수상 인터뷰를 읽으며,

나는 한번도 본 적 없는 장은진 작가에게 그만 마음을 빼앗겼고, 그녀와 '녀석'이 함께 썼다는 이 책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책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의 수상 소감과 인터뷰를 반복해서 읽었다. 괜히 뭉클했다.

 

그리고 가을이 깊어가는 길목에서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녀의 편지를 만날 수 있었다.

편지와 가을. 아,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게다가, 편지 여행!

 

'나'는 든든한 동반자 와조와 함께 3년 간 '편지 여행' 중이다.

여행지에서 사진은 한 장도 찍지 않지만, 그 대신 매일매일 편지를 쓴다.

그의 편지는, 배우를 꿈꾸는 여고생 239도에게도 가고, 자신 때문에 식물인간이 된 친구에게 매일매일 시를 읽어주는 750에게도 가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그에게 짐을 봐달라고 한 뒤 버스로 돌아오지 않은 421과, 길에 들러붙은 껌딱지로 예술을 하는 99에게도 간다.

숫자는, 여행을 다니며 '나'가 만난 사람들, 그 중에서도 '나'에게 주소를 알려준 사람들에게 붙여준 것이다.

'나'의 여행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집에 있으면 꿈결처럼 찾아오는 발작 때문에,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시작한 여행이었다.

집만 아니라면 어디에서라도 숨 쉴 수 있을 것 같아, 전국 각지의 모텔을 전전한다.

매일 밤, 편지를 쓰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매일 아침,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편지 온 것이 없는지 묻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여행은, 편지가 오면 끝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편지하지 않았다.

 

누구에게서도 답장을 받지 못하였으므로, '나'의 여행은 3년이나 이어지고, 그러다 751을 만나게 된다.

지하철에서 책을 파는 여자.

여자가 파는 『치약과 비누』는 '오늘 나는 치약을 먹었다. 내일은 비누를 먹을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책이다.

여자 자신이 쓴 책이다. 자기 자신이 쓴 책을 직접 가지고 나와 파는 소설가라니!

'나'와 와조와 여자. 셋의 어딘가 어색하면서도 환상적인 궁합을 보여주는 여행이 이어진다.

 

이 책이, '슬픈 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슬프다,는 건 개인의 감정이니까, '슬픈 책'이라는 말로 타인의 감정을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냥,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

나를 울게 한 건, 대부분 와조였다. 와조, 와조, 내게로 와조...

시력을 잃은 할아버지의 여생을 곁에서 지켜줬던 안내견 와조.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시력을 잃고 '나'의 곁을 지켜주고 있는 와조.

작가의 수상 소감이 자꾸 떠올랐고, 와조의 모습을 그리며 '녀석'을 떠올렸을 작가가 생각나, 나는 와조가 나올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작은 생명체들의 이야기는, 늘 나를 울리고 만다.

나의 작고 여린 친구 '몽'이 한번씩 앓거나, 수술을 받거나 하면 그런 증상은 더 심해진다.

올해, 몽은 큰 수술을 또 한 차례 받았고(제발, 이제 더 이상 수술 받는 일 없길! 건강하게 지낼 수 있길!)

그 이후 내 마음은 더 약해져버렸다.

그래서 와조의 이야기에 더욱 오래 눈길이 머물렀고, 더 많이 애틋했으며, 주체하지 못할 눈물을 흘렸다.

 

와조의 이야기는 나를 울렸고, '나'의 편지 쓰기는 내 마음을 한없이 설레게,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견딜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나'는 1번부터 750번까지, 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편지를 쓴다.

비록 아무도 '나'에게 편지하지 않지만.

왜 아무도 답장을 쓰지 않는 걸까, 왜 '나'의 여행이 3년이나 이어지도록 만드는 걸까, 몹시 궁금하기도 했다.

그럼, 나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또 답장을 받을 수 있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단 한 명도.

'편지를 받을 사람이 있고 또 답장을 보내줄 사람이 있다면, 생은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단 한 사람뿐이라 하더라도.'(277)

가슴이 무겁게 내려 앉으며, 이 생이 견디기 힘겨운 것이라는 생각에 우울해지다가, 나는, 나의 생을 견딜 만 한 것으로 만들어 줄 것 같은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 사람이라면, 내 편지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답장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지금 내 편지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졌다.

그리고, 그에게 긴긴 편지를 썼다. 이 가을에 내가 읽은 이 책에 대하여, 아주 긴 편지를.

 

내일 우체통에 편지를 넣을 것이다.

우체통은 비어 있을테고, 나의 편지는 무거우므로 '텅!'하고 빈 우체통을 울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릴지도.

하지만, 그 소리를 듣는 것도 아주 오랜만이므로, 나는 쓸쓸함보다는 반갑다는 마음이 먼저 들지도 모르겠다.

 

'나'의 편지 여행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쓰길. 이 가을, 다섯 줄 문자 메시지보다 더 많은 우표들이 팔려나가길.

그리고 나의 편지가 누군가의 우편함을, 누군가의 편지가 나의 우편함을 똑똑, 두들겨주길.

그러면, 우리 모두 생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더 강해지지 않을까? 깊어 가는 가을이, 더욱 행복해지지 않을까?

아, 나는 정말이지 이 책이 무지무지 좋다!!! 꼬옥 껴안아 주고 싶은 책이다!

 

 

정말, '나'에게는 아무도 편지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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