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진에 힘을 주는 101가지 101가지 시리즈
곽윤섭 지음, 김경신 그림 / 동녘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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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은 지금까지의 내 생애에서 가장 활동적인(!) 한 해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해 4월에 내게 처음으로 디지털 카메라라는 게 생겼고, 나는 경치 좋은 기숙사에 머물고 있었으며,

학교에는 지천으로 꽃이 피어있었다.

졸업 시험과 논문 등으로 밤잠도 모자라게 공부를 하던 대학원 시절이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숨구멍이 필요했다.

그때 사진기가 없었다면, 학교에 그렇게 많은 꽃들이 피어있지 않았다면, 내가 그 힘든 시절을 어떻게 이겨냈을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아무튼, 모두들 통역실에, 스터디룸에, 도서관에 자리 잡고 앉아 피 터지게 공부하고 있을 때,

나는 틈틈이 카메라를 들고 교정으로 나갔다. "나도 숨 좀 쉬자!"를 외치며.

내성적이고 남들 눈에 띄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남들이 보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잔디밭이고 풀밭이고 언덕이고

아무데나 멈춰서서, 혹은 쪼그리고 앉아 (주위에 아무도 없으면 바닥에 좀 더 밀착하기도 하며) 꽃들을 카메라에 담고 또 담았다.

(그렇게 찍은 꽃 사진은 포털 사이트 야생화 카페에 올려 이름을 물어보는 용도로 많이 쓰였다.)

 

처음으로 나만의 카메라가 생기고 사진을 찍다보니, 당연히 잘 찍고 싶어졌고,

그래서 도서관에서 몇 권의 사진책을 빌려다 봤었다.

도서관에는 마음을 끌어당기는 제목의 책들이 참 많았다. 그 중에 어떤 책을 봐야 할까 고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책들을 넘겨보며, 예시로 실려 있는 사진이 마음에 드는 책, 설명이 조금 더 쉬워보이는 책 들을 골라다 보곤 했다.

하지만 사진에 있어서는 그렇게 착실한 학생이 아니었기에, 그저 책을 보는 것으로만 그쳐 나의 사진 실력은 예나 지금이나 형편없다.

뭐든지 중요한 것은 실천, 반복 연습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한 셈이다.

 

학교를 떠난 후 나는 다시 상당히 정적인 모습으로 되돌아 왔고, 카메라는 곰팡이가 피지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그나마 요즘에는 책 정리를 하느라 일주일에 몇 번씩 책 사진을 찍어 올리지만.)

얼마 전에 카메라가 고장나서 상당한 돈을 주고 수리를 했는데, 비싸게 고친 게 아까워서라도 다시 카메라를 활발하게 움직이게 해주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사진 찍는 법도 찾아보고, 사진 카페에도 가입하고,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이제 본론이다. 사설이 참 길었다.)

 

이 책은 참 독특하다. 지금까지 본 중에 이런 책은 없었다.

그림 없는 그림책은 본 적 있다만, 사진 없는 사진책이라니!

이 책에는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책의 구성도 간단하다. 왼쪽에는 (사진 대신) 그림을, 오른쪽에는 그 그림에 관한 글을 실어 놓고 있다.(글은 간단명료.)

내용도 이렇게 찍어라 저렇게 찍어라, 이 기능은 뭐고 저 기능은 뭐다, 이 사진기는 어떻고 저 사진기는 어떻다, 등등

흔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사진의 역사에 관한 글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사진 찍는 마음가짐은 이러함이 마땅하다고 가르침을 주기도 하고, 사진 찍을 때 주의할 점을 지나가는 말처럼 쓰윽 일러주기도 한다.

책을 뚫어져라 보며 아하 이건 이렇군, 저건 저렇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의 모습으로 읽기보다는,

사진 선배 혹은 스승과 나들이 나가 그들이 한두 마디 툭툭 흘려주는 조언들을 주워듣는다 생각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다.

(물론 그런 조언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게 아니라, 까먹을 새라 마음속으로 되뇌거나 잽싸게 메모 해야 한다.)

 

나 같은 초보자가 이 책 한 권을 읽고 사진에 힘이 생겼다,라고 하기에는 무리겠지만,

앞으로 사진 찍을 때 잊지 말아야 할 조언들은 가슴 깊이 새겨 두었다.

(특히, 목표물에 가까이 가기보다 줌 당기기를 좋아하던 나는, 이 책을 읽은 뒤 줌보다 내 몸을 움직이게 되었다.)

식상하고 진부한 사진책에 질렸다면, 이렇게 독특한 책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초보자는 초보니까 당연히 봐야하고, 사진 고수라도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혹은 이미 잃어버린 초심을 되찾기 위해.

아, 까먹기 전에 당장 UV필터 하나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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