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웃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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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의 작가 정한아의 첫 소설집이다.

한 작가의 첫 작품을 출간과 거의 동시에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상큼하고 설레는 일임을 예전에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었다.

불현듯 아프리카의 한 부족 이야기가 떠올랐다. 새 생명이 탄생할 때가 되면 부족 사람들이 모두 모여 산모를 둘러싸고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축복의 말을 외쳐준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 모두는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환영해." "우리는 너를 무척 기다리고 있었단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된 것을 축하한다, 아가야."

정한아 작가의 첫 소설집을 품에 안고 나는 마치 저 탄생 축하 인파에 섞여서 '축 탄생' 인사를 할 수 있는 영광을 안은 기분이었다. "첫 소설집의 탄생을 축하해요. 우리 모두 무척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렇게 설렘과 떨림으로 만나게 된 이 책은 제목도 참 예쁘다. '나를 위해 웃다'

웃는다는 것도 좋고, 남이 아닌 나를 위해 웃는다는 건 왠지 멋쩍고 어색하긴 하지만 행복하다.

띠지의 환하게 웃고 있는 작가의 미소에 감염되어, 나도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책을 펼쳐 들었다.

 

이 책에는 표제작 '나를 위해 웃다'를 포함해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여덟 편 모두 예상 외로 조금쯤은 우울하고 묵직하며, 어떤 묘한 상실감을 담고 있었다.

배 속에서부터 무서운 속도로 자라더니 세상에 태어나서도 끊임없이 자라는, 쑥쑥 크는 키 말고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엄마가 있고('나를 위해 웃다'), 아버지의 등에 유리조각을 찔러 넣고 집을 나와 사창가에 몸을 담은 '나'가 있으며('아프리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지독한 상실감에 방황하다 이스라엘에서 노동 봉사를 하는 '나'도 있다('첼로 농장'). 나에게 관심 있는 줄 알았던 시간강사는 사실 내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구분을 못했으며('마테의 맛'), 결혼을 앞둔 여인이 오래 전에 처분해 버린 할머니의 의자를 찾아 헤매기도 하고('의자'), 평온한 듯 하면서도 위태롭고, 다시 평온을 되찾는 듯 하는 가정의 모습도 보인다('댄스댄스'). 중국의 직장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결국 귀국길에 오르는 남자 이야기와('천막에서'), 뇌에 이상이 생겨 어느 순간 과거로 돌아가버리는, 그 순간엔 현실의 모든 걸 잊고 그저 허밍만 하고 있는 할머니 이야기('휴일의 음악')까지, 모두 인생의 한켠에서 맛 볼 수 있을 듯한 절망과 상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괜찮다. 끝없는 좌절과 나락이 아니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을 그 뒤에 드리워주고 있으니까. 결국은 다시 웃을 수 있으니까, 나를 위해.

 

이 책의 이야기 속에는 외국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눈에 띄었다. '아프리카'에는 제목처럼 '아프리카'가, '첼로 농장'에는 이스라엘이, '마테의 맛'에는 아르헨티나가, '댄스댄스'에는 스위스가, '천막에서'에는 중국이 등장한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중심 무대인 경우도 있고, 주 무대는 아니지만 이야기의 중요한 줄기를 이루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잠깐잠깐 외국 풍경을 그려보며, 혹은 내가 갔던 곳을 그리워하며 슬며시 '세계 여행'을 하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특히 '첼로 농장'을 읽을 때는 정말 그런 봉사 프로그램이 있는지, 있다면 나도 가고 싶은데 내가 간다면 한국 생활은 어떻게 정리하고 갈지(-_-;) 꽤나 구체적으로 그 생각에 골몰하기도.(아직 진행중이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정한아 작가가 그 아름다운 미소로 슬며시 일러주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을 덮으며, 나를 위해, 정한아 작가를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환하게 웃고 싶어졌다.(하지만, 한 시간 넘게 쓴 서평이, '피슝~'하고 꺼져버린 컴퓨터와 함께 날아갔을 땐, 울고 싶었다...) '첼로 농장'에서 만난 귀가 들리지 않는 할머니처럼, 온 몸으로 리듬과 진동을 느끼며 음악을 느껴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렇게 아름다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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