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읽은 날 : 2008년 11월 2일
                                                   다시 읽은 날 : 2009년 4월 30일

 

 

사실 이 책을 처음 잡았던 건 2006년이었다. 『청춘의 문장들』로 김연수 작가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그의 책들을 탐독할 때였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여섯째로 만난 책이었을 것이다. '첫번째 이야기'를 다 읽었던가, 그마저도 다 읽지 못했던가, 아무튼 "아, 너무 어려워!"라고 좌절하며 그만 포기하고 도서관에 반납했던 기억이 난다.(『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도 완독했는데!) 그 후, 김연수 작가의 다른 책들은 모두 읽었지만 이 책만은 선뜻 손을 대지 못하고 그저 책꽂이에 고이고이 모셔두기만 했다.

 

다시 이 책을 읽을 용기를 냈던 건, 한 책카페의 독서토론 도서로 이 책이 선정되면서였다. 다른 사람들은 『꾿빠이, 이상』에 대해, 그리고 김연수 작가에 대해 어떤 감상을 들려줄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에, 독서토론에 참석하기 위해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다시 만난 『꾿빠이, 이상』은 첫 만남 때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고, 나는 밤을 꼬박 지새며 책 속에 빠져들었다.

 

내가 감히 그의 대표작을 운운할 수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나는 이 책을 그의 대표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에는 소설가로서 그가 불사를수 있는 모든 열정이 들어있다는 느낌이 그 이유 중 하나다. 물론, 다른 책들은 그럼 열정이 부족하다는 거냐,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김연수 작가의 입장이 어떤지야 내가 속속들이 알 수 없지만) 유난히 이 책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열정'이 곳곳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2009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린 문학적 자서전 「이 세상 그 누구도 대신 써주지 않는 15매」에도 이 소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어쩌면 이건 내가 쓰는 마지막 소설이 될지도 모른다.' 2010년쯤에나, 나이가 들고 연륜이 생기면 그때쯤에나 써보겠다고 생각한 소설을 일찌감치(그것도 '마지막 소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쓰게 된 것은, 2010년에도 자신이 소설가일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마지막'으로 그에게 준 소설 쓸 기회(물론 그건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지만) 앞에서 그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떠올렸다. 그에게 문학을 가르쳐 준, 그의 최초의 문학 행위에 소재를 제공했던 '얼굴이 하얀 이상 김해경'에 관한 책은 그런 계기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문학적 자서전'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소설이 세상 빛을 보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자신의 한계를 경험한다는 건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를 실감한다는 뜻과 마찬가지였다.'라고까지 말하고 있으니. 하지만 그런 한계를 뛰어넘고, 하루에 15매를 쓰는 대단한 일을 해낸 끝에 『꾿빠이, 이상』이 탄생했다. 김연수 작가는 이 소설을 쓰고 나서 자신이 소설가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니 그때 그 '마지막 기회'는 사실상 그가 진정한 소설가로 태어나게 되는, 그의 '두 번째 생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김영수'가 아닌 '김연수'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해준 작가 이상에 관한 책, 진정한 '소설가 김연수'로 거듭나게 해준 책, 그런 의미에서 『꾿빠이, 이상』을 그의 대표작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작년에 한 북콘서트에서 김연수 작가가 이상에 관해 한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는 한국 문학에서 굉장히 높은 위치에 있는 이상이라는 사람을 끌어내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를 끌어내리고 자신이 올라서겠다는 게 아니라, 몇 십 년 동안 너무 높은 자리에만 있어서, 이 사람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도쿄에서 맞이한 이상의 죽음은 그 죽음 자체가 환상적으로 전설에 가깝게 남아 있는데, 그 죽음이 천재의 죽음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살고자 하는 한 남자의 죽음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직접 도쿄로 찾아갔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여행할 권리』의 마지막 챕터 「당신들은 천당과 지옥의 접경으로 여행을 하고」는 그가 이상이 머물렀던 도쿄를 답사했던 이야기다.) 그런데 『꾿빠이, 이상』을 읽고 나면, 작가 이상에 관한 환상이 깨지는 게 아니라, 더 전설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가 강해진다. 어느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앞으로도 알 수 없을 이야기들. 그 앞에서 진실 혹은 거짓, 진짜 혹은 가짜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배운 건, "중요한 것은 가짜냐 진짜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말입니다. 진위와는 무관하게 모든 정황이 진짜라면 진짜인 것이고 모든 정황이 가짜라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입니다." 나는 그저 이런 소설을 써 낸 김연수 작가에게 탄복하고, 이런 소설을 만날 수 있었던 내 삶에 행복을 느낄 뿐.

 

 

- 주석으로 이상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 하지만 양파를 까듯이 아무리 파헤쳐봐도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 적빈한 가정의 얼굴 하얀 아이 김해경이 마지막으로 남긴 이상이란 데드마스크는 도대체 무엇이던가?(40)

 

- 운명의 글월은 물에 쓰는 것이 아니라 대리석에 새겨지는 것이다. 유예될 수는 있으나 결코 지워지지는 않는다.(70)

 

- 한 작가는 문학을 위해, 독자를 위해 삶의 다양한 광경을 재구성한다. 천재로 태어나는 주인공을 탄생시켜 그 주인공으로 하여금 열정에 사로잡혀 쏟아지는 빗속을 뛰어다니게 만들고 사랑에 빠지게 한다. 적당한 쓴맛과 단맛을 동시에 내기 위해 막 딴 치커리와 꽃상치를 잘 포개 만든, 여름 점심의 쌈밥을 만들기도 하고 연인 앞에서 처음으로 벗은 몸처럼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이 교차하는 하얀 살을 그리기도 하는 것. 그게 바로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일이 괴로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던져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78)

 

- 그러나 과연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맞선다고 할 때, 맞서는 그 대상을 일러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번이라도 전기를 써본 사람이라면 우리의 의지가 맞서는 그 대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의지 자체가 운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끊임없이 남빛의 바다를 하얀 물보라로 바꾸는 뱃길 주변에서는 아무리 해도 당장 대양의 권태로운 푸른빛이 보이지 않듯이 인간의 의지 역시 삶의 여러 굴곡 중 하나일지 모른다. 때로 파도가 치고 남빛 대양의 한켠이 하얀 물보라로 부서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사소한 부분일 뿐이다. 운명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줄 뿐이다. 운명은 논리적으로 인간의 의지에 맞서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한순간에 모든 것을 보여준다. 씨앗이며 고목을, 꽃이며 과일을, 새순이며 낙엽을, 탄생이며 죽음을. 그 속에 인간의 보잘것없는 의지까지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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