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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ㅣ Nobless Club 10
김이환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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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 시의 외계인 / 김이환 / 2008 / 로크미디어
아래 분실물을 찾아주세요!
함부로 앉으면 위험한 의자, 그대로 비춰 주지 않는 거울, 땅 위에서 달리기 아까운 자전거, 바닥을 보면 깨닫게 되는 컵, 맑은 날에 더 재밌는 우산, 건망증에 좋은 펜, 불면증에 잘 듣는 스탠드…….
책의 뒷표지에 실린 분실물 목록에 귀가 솔깃해졌다. 오호, 저런 신기한 물건들이 나오는 책이라니 흥미롭구나! 나에게 오후 다섯 시에 얽힌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오후 다섯 시의 외계인'이라는 제목도 어딘가 감성을 자극하고 말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는 외계인(지구 이름 '전용관')이 나온다. 영화를 보다가 그만 외계로 돌아가는 시간을 놓쳐버리고, 홀로 지구에 남겨져 엉엉 울던 외계인은 우리의 주인공(이름 '임성우', 하지만 곧 '직원'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리게 됨)을 만나게 된다.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고, 미국의 엄청난 기관에 취직을 한 주인공과 깜짝 놀라게 잘 생긴 이 외계인과의 만남이 어찌나 즐겁던지, 3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숨에 읽었다.
위에서 말한 분실물은 바로 이 외계인 용관이가 잃어버린 생일 선물들이다. 열일곱째라서 해마다 열일곱 개의 생일 선물을 받는 용관이가 어쩌다 스위치를 잘못 눌러 그만 선물을 다 잃어버렸다. 고향별로 돌아가기 전에 잃어버린 선물들을 다 찾아야 하는데…….
하나하나 찾을 때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 선물들의 목록이 꽤나 재미있었다. 개중에는 나도 무척 탐나는 물건들이 꽤 있었다. 위에 앉으면(혹은 올려 놓으면) 속마음을 말해 주는 의자, 착한 사람은 초록색, 나쁜 사람은 까만색으로 보여주는 뿔테 안경, 내뱉은 말을 주워담아 주는 피리, 원하는 꿈을 꾸게 해주는 스탠드, 날씨를 말해 주는 곰인형(믿을 수 없는 기상청 일기예보보다 나을 듯!), 깜빡 하고 있는 일들을 기억나게 해주는 볼펜, 가지고 다니는 별장인 스노 글로브……. 아아, 정말 탐나는 물건 많다!
속마음을 말해 주는 의자가 있으면, 우리 강아지하고 의사소통도 하고 얼마나 좋을까. 밤마다 내가 꾸고 싶은 꿈을 꿀 수 있는 스탠드를 켜 놓고 자면 그건 또 얼마나 좋을까. 잠자는 시간만이라도 내가 바라는 삶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행복해진다. 늘 무언가 말해 놓고 후회하는 나에게는 내뱉은 말을 주워담아 주는 피리도 아주 유용한 물건이 될 터!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는 용관이가 부럽다!
우리의 주인공과 '완소 외계인' 용관이가 이 선물들을 찾는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심심하고 따분한 밤에 한번 만나보는 것도 좋겠다고, 추천해주고 싶다. 외계인을 찾아 없애기 위해 이 동네로 스며들어온 FBI를 용관이는 잘 피할 수 있을까?(난 처음에 이 설정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결국 외계인을 잡아 죽이겠다는 거면,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ㅡ 난 주인공이 죽는 이야기를 무척 싫어한다. 오죽하면 <삼국지>도 8권까지 읽다가 장비가 죽을 것 같길래 덮어버렸을까! 하지만, 이 책은 어쩐지 해피엔딩일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걱정을 누르고 끝까지 읽었다.)
모처럼 참 발랄하고 깜찍하고 가벼운 소설을 읽었다. 나의 오후 다섯 시에는 이런 외계인이 나타나주지 않으려나? 나도 가만히 오후 하늘을 올려다보며 용관이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