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스무 살 / 김연수 / 2000 / 문학동네

 

처음 읽은 날 : 2007년 12월 31일

다시 읽은 날 : 2009년 03월 29일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 살의 바람과 스무 살의 눈빛은

우리를 세월 속으로 밀어넣고 저희들끼리만

저만치 등뒤에 남게 되는 것이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보다도 더 빨리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나를 세월 속으로 밀어넣은 스무 살과 작별한 지 올해로 꼭 십년 째이다.

나는 여기 있는데, 나의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 살의 바람과 스무 살의 눈빛은' 저만치 등뒤에 남아 내 기억 속에서 아스라하다.

 

스무 살.

다른 어떤 나이보다 사람을 들뜨게 하는, 설레게 하는, 행복하게 하는 그런 나이가 아닐까.

누구나의 기억 속에서든 풋풋함으로 간직되어 있을 스무 살,을 나도 떠올려 보았다. 아니, 떠올리려 애써 보았다.

 

1989년에 스무 살이 된 그는 장정일의 시에서 '내 이름은 스물 두 살 / 한 이십 년쯤 부질 없이 보냈네'라는 구절을 보았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영문과에 등록을 했고, 도서관에 처박혀 문학 평론책을 읽었고, 과외라기에는 뭔가 이상한 첫 번째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온갖 잡다한 아르바이트를 거쳐, 홀트 아동복지회에서 바자회를 도와주는 일로 스무 살의 아르바이트를 마무리 했다.

'그런 1989년을 이제 돌이켜 보자니 지금부터 육 년 전이라는 생각만 날 뿐, 별다른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한 것치고는 꽤 많은 기억들이 기록되어 있어 부러웠다.

나야 말로, 1999년을 돌이켜 보면서 지금부터 십 년 전이라는 생각만 날 뿐, 별다른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솔직하게는, '내가 언제 스무 살이었더라?' 언뜻 떠오르지 않아 잠시 생각해봐야 했다.

 

언젠가 다른 책의 리뷰에서도 나의 '스무 살'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그러니까 나는, 참 어정쩡하게 스무 살을 맞이했더랬다.


친구들은 다 스무 살이 되어 어느 나이도 흉내낼 수 없는 스무 살 특유의 빛을 발하는데, 나는 함께 빛을 내는 대신 "이제 언니라고 불러!"라는 협박(?)에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있어야 했다. 다음 해에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친구들은 이미 스무 살이 가져다주는 신비로움 따위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나를 동갑내기 취급해주었다(이렇게 고마울 데가!). 이봐, 친구들! 나는 이제 스무 살을 맞이했다고!라고 외쳐봤자, "그럼 언니라고 불러."라고 할테니까, 나는 그냥 열아홉에서 스물 하나로 훌쩍 건너뛰어버렸다. 

이보다 더 어설플 순 없다!라는 말로도 뭔가 부족할, 내 기억 속에 아예 남아있지도 않은 내 '스무 살'이 억울해 나는 이 책에 더 깊이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스무 살을 통해 내 스무 살을 보상 받으려고.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 유독 '스무 살'만을 붙잡는 내게는 그런 슬픈 스무 살의 기억이 숨어 있었다.

내 생애 가장 어두웠던 때로 기억되는 그 즈음의 어딘가에서(그 때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학교 생활에 적응도 못 해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스리슬쩍 흘려버린 스무 살을 주워올 순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잃어버렸던 스무 살을 떠올릴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나는 '스무 살 이후'를 살고 있는 지금이 더 좋다. 훨씬 더 좋다는 삼십 대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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