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1반 34번 - 종잡을 수 없는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잡아주는 이야기
언줘 지음, 김하나 옮김 / 명진출판사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언줘의 책을 처음 만난 건 내가 자주 들르던 헌책방에서였다.

저자 이름이 중국인이길래 빼내들어 넘겨봤는데 지미(幾米)의 책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과 글들이 금세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지미와 같은 대만 작가이고, 역시 글과 그림 모두 직접 쓰고 그렸다.

 

그 책의 제목은 <불면증>이었는데, 그 여름에 바닷가에 다녀오는 길에 막힌 도로위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원래는 바닷가에서 분위기 잡고 읽으려고 가져갔는데, 바닷가에서는 뛰노느라 바빠서 까암빡하고 돌아오는 길의 꽉꽉 막힌 도로 위에서 서서히 스러지는 햇빛에 의지해 읽었다.)

 

그 책 한 권으로 내 마음에 담았던 작가 언줘를 <1학년 1반 34번>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작가는 아침식사를 하며 읽고 있던 신문에서 연이은 무단결석을 하고 있는 아이에 관한 글을 보게 된다.(대만의 신문에는 무단결석 하는 아이까지도 기사로 실리는구나,하고 잠깐 놀람) 그리고 기사에 실린 그 아이의 글 중 이런 대목을 보고 그 아이에게 그림으로 말을 걸어보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고 한다. "떠돌이 개가 되고 싶다. 떠돌이 개는 자유로우니까……."

 

'자유'……. 떠돌이 개가 부러울 정도로 그 아이가 바라던 그 '자유'라는 놈은 어디에 꽁꽁 숨어 그 여린 가슴에 깊디깊은 생채기를 냈을까? 부모의 손에 숨었을까? 선생님들의 회초리에 숨었을까? 아이들에게서 숨쉴 자유마저 빼앗아버린 교육제도의 뒤에 숨었을까? '자유'라는 낱말의 뜻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그리고 그 낱말을 너무 일찍 빼앗겨버린 이 땅의 아이들이 가여워 답답하고 한숨이 났다.

 

이 책의 주인공 '34번'도 그토록 사랑하는 늦잠을 '34번'이라는 '이름'과 맞바꾸고 자유를 박탈당했다. 이제는 늦잠을 잘 수도 없고 마음대로 산으로 들로 뛰어다닐 수도 없다. 하고 싶지 않지만 상을 받기 위해 어른들이 강요하는 그림 그리기를 거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34번'에게 이 세상은 자유를 빼앗긴 감옥처럼 변해버렸다. 친구도, 올챙이도, 늦잠도, 모두 다 빼앗아 가버린 '34번'이란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다.

 

"네가 잘 몰라서 그래. 난 원래 자유로웠어.

새벽의 이슬, 오후의 태양 모두 내 것이었지.

그런데 이제 그런 것들은 모두 내 것이 아니야.

이제 내 것은 네모난 시간표와 교과서, 참고서뿐이야.

또 있구나. 어른들의 잔소리."

 

하지만 이렇게 투덜거리고 세상을 원망하는 동안에도 '34번'은 매일매일 자라고 성장한다. 올챙이 샤오헤이가 뒷다리가 나오고 앞다리가 나오고 어느날 훌쩍 그의 곁을 떠나버린 것처럼.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런 변명대신에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34번'이 자신의 몸을 감싸주던 따뜻한 저녁노을 아래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고, 이제 더 이상 무단결석하는 일이 없기를. 아, 정말이지, 아이들이 그놈의 '자유' 때문에 떠돌이 개를 부러워하는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자유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