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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타샤
조지수 지음 / 베아르피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나는 뜬금없게도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떠올렸다.
'가난한 내가' 사랑한 '아름다운 나타샤'의 이름과 이 책 제목이 비슷한 탓일 것이다. 나타샤, 나스타샤. 나스타샤, 나타샤. 제목만 보고는 그냥 그 탓이려니 했는데, 이 책을 덮으면서도 나는 또 나타샤를 생각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왠지 같은 마음을 시로 쓰면 '나타샤'가 되고, 소설로 쓰면 '나스타샤'가 될 듯한 그런 부분을 만난 탓일까. 나만의 다소 엉뚱한 느낌이겠지만, 여튼, 나는 이 소설을 다 읽고나서 다시 백석 시집을 뒤적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어보았다. 이번에는 '나와 나스타샤와 흰 당나귀'라고 생각하며...
그러면 이런 시가 된다.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스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나스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스타샤와 나는/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스타샤를 생각하고/나스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스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문 응용)
이 소설에는 바로 '아름다운 나스타샤'가 나오고, 나스타샤를 사랑하는 (가난하지는 않은) 내가 있다.(소주 대신 위스키가 나오고.)
'나'는 미국에서 수학하고 캐나다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그 외 집필과 박물관 동양관 고문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이고, 나스타샤는 반체제 운동을 하다 남편과 아이와 헤어지고 캐나다로 망명한 우크라이나 여인이다. 반체제 운동 중에 심한 고문을 당해 몸도 마음도 다 망가지고 겨우 목숨을 건져 캐나다로 건너온 이 가여운 우크라이나 여인과, 지역사회에서 나름 존경받는 교수인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결코 인연이 아닌 듯 싶지만, 운명은 그들을 만나게 하고 기어코 사랑에 빠뜨린다. 나스타샤는 그녀의 본명이 아니다.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나'가 붙여준 이름이다.(우크라이나에서 대학까지 나왔는데, 이름을 묻는 기초 회화마저도 되지 않는 건, 조금 받아들이기 힘든 설정이었다.) 그렇게 '나'가 붙여준 이름을 가지고 나스타샤는 '나'의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드는 건, 바로 나스타샤가 우크라이나에 두고 온 가족이 있다는 것. 그것도 생살을 찢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아이와의 이별이었다는 것. 반체제 운동 중 사라진 나스타샤의 남편과 아이의 존재가 유령처럼 나스타샤를 따라다니는 한, 이 둘의 사랑은 매 순간 순간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마음은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읽는 나는 내내 '나스타샤는 가족을 찾으면 떠날 거잖아!'라는 생각에 불편할 수밖에. 이런 느낌은, 책 표지의 회색빛이 강렬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기도 전부터 내 마음은 회색빛에 젖어, 슬픈 눈으로 호수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봐야 했으니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이 잿빛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한 책을 읽고 나면, 보통 이런 느낌들이 나온다. 와, 정말 멋진 책이다. 뭐, 그냥 그렇네. 아니, 뭐 이런 책이!
그런데 이 책은 책을 읽으면서도,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느낌이 참 묘하다. 이 책에 대한 호불호를 나조차도 뚜렷이 모르겠다는 거다. 책을 읽고 나면 대개 '이 책은 별 몇 개짜리 책'이란 느낌이 있는데, 이 책은 별을 몇 개를 줘야할지 조차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여기에서 세 개 반을 준 것도 내 진심은 아니다.) 별을 다섯 개 이상도 주고 싶고, 세 개 이하를 주고 싶기도 하고, 책 한 권이 이런 다중적인 이미지로 다가온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나도 잘 모르겠다. 결코 쉽지 않게 읽은 책인 건 확실하다. 스토리 중간 중간에 나오는 여러 사상과 이론 등은 어떻게 보면 이 책을 더 흥미롭게 해주는 요소이기도 하고, 달리 생각하면 이야기 흐름을 끊는 방해 요소이기도 했다.(내가 이해하기엔 꽤나 어려운 내용이 많아서 내 마음이 책을 읽다가 딴 곳으로 도망치기도 여러번이었다. 거기다 분량을 따지면 스토리와 반반쯤 될 듯.) 회색은, 검은색보다는 밝고, 흰색보다는 어둡다. 검은색보다는 희망적이고, 흰색보다는 절망적이다. 이 책이 내게 준 느낌은, 책 표지처럼 딱 그런 회색이다. 더 표현하기가 힘든 참 오묘한 느낌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난 언젠가는 이 책을 다시 읽어보게 될 거라는 점이다.(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때되면, 검은색이든 흰색이든, 좀 더 확실한 느낌이 나올까?
*. 한 가지 덧붙이자면, '조지수'라는 필명은 나와 소설과의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감을 만들어 주었다. 평소에 작가 이름으로 소설을 보곤 하는 내게, '누가 쓴 책'인지 모르는 이 책은, 뭔지 모를 일말의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을 쓴 이는 누구일까,라는 마음에 얽매이는 나 자신을 꾸짖어 봐도 소용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이 책은 점점 짙은 회색빛을 띄며,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을 내게 남겼다.
*.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낚시 좋아하는 이들이 보면 아주 좋아할, 낚시를 묘사한 부분이 참 많고,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