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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ㅣ 창비시선 191
정호승 지음 / 창비 / 1999년 10월
평점 :
강물을 따라가며 울다
내 몸 속에 석가탑 하나 세워놓고
내 꿈 속에 다보탑 하나 세워놓고
어느 눈 내리는 날 그 석가탑 쓰러져
어느 노을 지는 날 그 다보탑 와르르 무너져내려
눈 녹은 물에 내 간을 꺼내 씻다가
눈 녹은 물에 내 심장을 꺼내 씻다가
그만 강물에 흘려보내고 울다
몇날 며칠 강물을 따라가며 울다
작년에 어딘가에서 만난 시다. 이 시를 보다가 그만 심장이 철렁, 했었다.
눈 녹은 물에 꺼내 씻던 내 간과 심장을, 그만 강물에 흘려보내고 울다니...
강물에 쓸려 내려가는 간과 심장 생각에, 나는 정말 놀란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 시를 어디서 보았던 건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시집은 아니었나 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는 제목이 눈에 익지 않은 걸로 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그러고보니 오늘 저녁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하던 그 시간에, 기차를 탔어야 하나보다.
시인이 알려준대로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서, 선암사 해우소에서 실컷 울었어야 하나보다.
자꾸자꾸 마음에 맺혀서 남아있지 않게,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다 풀어버렸어야 하나보다.
뭐 오늘 저녁의 사정이야 이 시집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서평을 쓰려고 앉아서는 계속 제목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잔잔한 시집이다. 표지 그림처럼.
표지 그림에는 동자승으로 보이는 소년이 파란 달빛을 받은 강물 위에 배를 띄워놓고,
고요히 앉아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배에는 하얀 강아지 한 마리 앉아있고,
그 위에는 하얀 새가 한 마리 날고 있고. 참 고요하고 잔잔한 그림이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는.
(눈물이 날 때, 기차를 탈 여건이 안 되면 이 사진이라도 보면 좋겠구나,는 생각을 잠깐.)
세상의 작고 약한 것들도 다 보듬고,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여주고, 소중한 것들에 고마워하고,
그런 마음들을 느끼며, 잔잔하게, 차분하게, 고요하게 읽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마음을 가라앉혀줄 이런 시집 한 권...
'눈물이 나면 이 시집을 읽어라'...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 '선암사'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