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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웃긴 꽃 ㅣ 문학동네 시집 90
윤희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6월
평점 :
작년에 온라인에서 알게 된 지인에게 선물 받은 시집이다.
'나를 웃긴 시집입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내 품에 안긴 이 시집을, 작년에 이미 읽었지만,
기축년 소띠의 해를 맞이하여 다시 꺼내 들었다.
소띠의 해에, 이 시집은 꼭 읽어야 한다,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
시를 잘 모르고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나는 보통 시집 한 권을 읽으면,
마음에 쏙 드는 시는 두세 편, 많으면 너댓 편 정도 '건지게' 되는데,
이 시집은 내 마음에 와 닿는 시가 참 많았다.
표제작 '소를 웃긴 꽃'은 물론이거니와,
1번으로 실린 '농담할 수 있는 거리'를 비롯해서 수많은 시들이 내 마음을 차고 넘치게 해주었다.
웃긴 시도 있고, 기발한 시도 있고, 아픈 시도 있고, 슬픈 시도 있고,
우리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많은 감정들이 한데 어우러져있는 시집이다.
그래서 시집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고,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고,
시의 대상을 향해 연민을 느끼기도 했고, 슬퍼지기도 했고, 눈물을 한 방울 떨구기도 했다.
행과 행 사이에서
잠시, 스산한 마음을 놓쳤다
어쩌면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많지 않으리라
지금 읽는 책을
언제 또다시 읽을 수 있을까
이제부터 읽는 책들은 이별이다
- '마흔 살의 독서' 전문
이 시를 보다가 나는 그만 페이지를 넘기려던 손을 멈춰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아픈 이별이야기다. 지금 만나는 나의 책들이 '만나자마자 안녕'이라니...
그러고보니 책들과의 만남은 거의 다 '첫 만남'이 곧 '마지막 만남'이었다.
이별인 걸, 영영 작별인 걸 의식하지도 못하고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었구나,
깨닫는 순간, 그만 그 이별이 너무나도 슬퍼서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책장으로 고개를 돌려 책들을 바라보는데, 모두들 나를 향해 "안녕..."하며 쓸쓸하게 손을 흔들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는 책을 읽을 때마다, 그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마다, 이 시가 떠오를 것 같다.
그리고 우리의 헤어짐을 슬퍼하겠지.
첫 만남 후 곧바로 헤어짐이 아닌, 오래오래 다시 만날 수 있는 책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슬퍼진 마음은, 눈가에 매달린 눈물 방울은,
나주 들판에서 웃는 소가 말끔히 날려주므로, 잠깐 눈물 한 방울 떨궈도 괜찮다.
'영영 슬픔'은 아니니까. '내 친구 9'도, '재래식 화장실'도 나를 웃겨주니까.
꽃이 소를 웃기고, '소를 웃긴 꽃'이 나도 웃기고,
여튼, 울다가 웃어서 어디에 털 날 일만 없다면, 그렇게 웃으며 울며 볼 수 있는,
'완소' 시집이다.
소띠의 해에, 이 시집은 꼭 한 번 읽어보길. 소와 함께 웃으며, 행복한 한 해 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