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야, NewYork 가자!
오하영 지음 / 위캔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참 어정쩡하게 스무 살을 맞이했다.


내가 열아홉 되던 해, 친구들은 스무 살이 되었고, '그들의 잔치'에서 나는 뒷켠으로 물러나 있었다. 난 '진짜' 스무 살이 아니니까.


("언니라고 불러!"라는 '협박'도 이 즈음해서 조금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일 년 뒤,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친구들은 이미 '스물'이라는 숫자가 가져다주는 어떤 흥분감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나 혼자 스물을 자축하기에도 좀 어정쩡하고, 친구들보다 일 년 늦었다는 생각에 괜히 김빠지고 시시하게 생각되고 만,


나의 스무 살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나이가 가져다주는 어떤 '신비감' 같은 것을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다.


항상 내 나이보다 한 살 앞서갔고, 정작 내 나이가 '그 나이'가 되어서는 별 감흥 없이 이내 시들해지고마는.


정체성 없는 '빠른 연도'의 비애라며 나름 크게 실망했고,


나중에 결혼해 아이를 낳게 되면 절대 1, 2월에는 낳지 않으리라는 다짐까지 하고 말았다.




 

그러다 올해, 친구들이 하나둘 서른을 맞이하게 되었다. 30! 우리 나이의 앞자리가 '3'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뿔싸, 나는 이제서야 친구들의 나이로부터 떨어져나와 '독자적인 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밝힐 일이 있으면 늘 내 나이보다 한 살 많게 말하곤 했는데, 나는 서른이 되어서야,


아니, 친구들이 서른이 되어서야 이제서 내 나이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올해 몇이세요?"라는 질문에 "서른이요."라고 대답하기 왠지 억울하게 느껴졌다. (난 아직 '진짜' 서른 살이 아니니까.)

스무 살을 어정쩡하게 맞이한 경험이 있는 나는, 왠지 서른 살 만큼은 조금 더 근사하게 맞이해주고 싶었다.


 

오하영, 그녀에게도 '서른'은 단지 그녀가 30년 간 이 땅에 숨 쉬고 살았음을 증거하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서른과 그 이후의 나를 당당하게 두 팔로 안을 수 있도록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어쩐지 조금 낭만적으로 보일지 모르는 미국행이었지만, 뉴욕에서의 그녀의 삶은 30대를 맞이하기 위한 치열한 생활 현장이었다.

정말 부끄럽지 않은 30대 맞이를 제대로 준비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20대도 결코 나처럼 어정쩡하게 보내버린 시간들이 아니었다.

쇼핑 칼럼니스트를 해봤고, 창작 뮤지컬을 기획했으며, 외국계 기업의 임원비서를 지내면서 해외출장을 지원한 경험도 있다.

이런 경험들이 그녀의 미국 생활에 탄탄한 밑거름이 되어주었고,

미국에서 써내려간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서른 살의 선물로 두 팔 가득 감싸 안'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뉴욕 알짜배기 쇼핑&여행' 가이드이다.

학교 다닐 때 매일 다른 옷을 입고 등교했다는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패션과 쇼핑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녀가 알뜰히 정리해놓은 쇼핑 정보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유명 브랜드부터 빈티지까지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뮤지컬을 기획했던 경험을 되살려 공연과 미술에 관련된 정보도 빼놓지 않는다. 오페라, 발레, 클래식 등 원하는 대로 즐기는 ‘공연 뷔페’라는 링컨센터는 언젠가 뉴욕에 가게 되면 꼭 들러보리라 별표를 해 본다.

꼼꼼하게 알려주는 뉴욕 투어 정보도 알차다. 그녀가 친절하게 짜준 6일짜리 코스만 제대로 따라 다녀도 '후회 없는' 관광을 즐기고 올 수 있을 것 같다. 어딜 가든 화장실 정보부터 파악하는 나에게는 무엇보다 꼭 필요한 여행 팁이 담겨있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녀가 일러주는 화장실에 관한 정보는 다들 한번 쯤 확인을 해봐야 뉴욕 한복판에서 화장실을 찾다 얼굴이 노랗게 질리는 일이 없을 것 같다.

 


보통 여행 가이드 서적은 실용서적으로 덤덤하게 읽고 필요한 정보를 찾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책은 왠지 그렇지 않았다.

책 전체를 흐르는 그녀의 삶에 대한 열정을 느꼈기 때문일까.

그녀가 그 열정을 가득 담은 여행 에세이라도 한 권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여기 당신의 에세이를 기다리는 '예비 열혈 독자'가 있어요, 하고 외쳐보면 언젠간 만나게 될 수 있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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