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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이해인 수녀의 사모곡
이해인 지음 / 샘터사 / 2008년 8월
평점 :
엄마, 라는 단어에는 하늘이 있고 산이 있고 꽃이 있고 바다가 있고 태양이 있다. 엄마, 하고 부르면 구수한 밥 냄새도 나고 햇볕에 뽀송뽀송 잘 말려 걷어온 옷가지의 느낌도 나고 추운 겨울 따뜻한 담요 뒤집어 쓰고 누운 아랫목의 온기도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마를 부르면/일단 살 것 같다'
단어 하나에 온 우주를 담고 있고, 입 밖으로 내는 것 만으로도 코끝이 찡해지고 마음에 위로가 되는 단어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나는 평소에 엄마를 부를 때 "엄마~"하고 한 번만 부르지 않고 여러번을 반복해 부르곤 한다. "엄마엄마엄마~!" 기쁜 일이 있어 얼른 알려주고 싶을 때도, 속상한 일이 있어 얼른 고자질하고 싶을 때도, 고민되는 일이 있어 조언을 구하고 싶을 때도, 슬픈 일이 있어 위로받고 싶을 때도 나는 "엄마엄마엄마!"를 부른다. 엄마를 부른 순간부터 일단 살 것 같으니까.
얼마 전에 이해인 수녀님이 암투병 중이시라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저렇게 곱디 고우신 분께 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들다니, 하고 참으로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이 병상에서 어머니를 그리며 펴낸 시집을 만났다. <엄마>...제목을 소리내어 불러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울컥하며 코끝이 찡해지는 이해인 수녀의 사모곡. 병상에 누워 어머니를 그리워했을 이해인 수녀님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해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도 집 떠나 타국에서 지내던 시절에, 어쩌다 몸이 아파 밥도 못 챙겨 먹고 혼자 누워 끙끙 앓노라면 엄마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곤 했다. 엄마가 해주는 따뜻하고 맛있는 밥도 먹고 싶고, 이마를 짚어주는 엄마의 손길도 그립고, 유난히 배탈을 많이 앓던 내 배를 살살 어루만져 주시며 '엄마 손은 약 손이다' 하시던 음성도 그립고, 또 그리움에 더 끙끙 앓던 그런 날이 있었다.(몸이 가뿐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집에 안부 전화할 생각도 잊고 룰루랄라 혼자 잘 살았지만...) 그런 생각이 떠올라서인지 이 시집을 대하는 마음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 시집에 실려있는 오래된 편지지 느낌의 편지글이 참 예쁘고 따뜻하다. 이해인 수녀님의 어머님이 직접 말려 편지지에 넣어 보내신 꽃잎들. 책에 살짝 코를 가져다대면 잘 마른 장미꽃잎의 향기가 날 것만 같다. 어머님이 이해인 수녀님께 쓴 편지, 수녀님이 어머님께 쓴 편지를 읽으며 두 모녀 사이의 깊고 깊은 정과 사랑을 나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엄마한테 편지가 쓰고 싶어졌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전화 요금이 비싸 항공 우편으로 편지를 보내던 그 시절이 지난 뒤로, 벌써 수 년 간 '사랑하는 엄마께...'로 시작하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 '엄마'라는 단어를 적을 때의 그 느낌이 손끝에 떠오르는 듯 하다. 오랜만에 엄마한테 편지를 써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뒤이어 실린 80편의 시를 감상하였다.
시 한 편 한 편, 모두 어머니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 느껴져 시를 읽으면서 눈물 방울을 떨구기도 했다. 그리고 옆 방에서 주무시고 계신 엄마가 괜히 보고 싶었다. (잠귀 밝은 엄마가 깨실까봐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엄마가 옆에 있어도 엄마가 그립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이해인 수녀님도 같은 생각을 하셨더랬다. "엄마/난 엄마가/내 앞에 계셔도/엄마가 보고 싶어요" 보고 싶을 때 실컷 볼 수 있고, 어리광 피우고 싶을 때 실컷 피울 수 있고, 안아보고 싶을 때 실컷 껴안을 수 있는 엄마가 내 앞에 계실 때, 엄마께 더 잘해드리고 착한 딸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저에게 기쁜 일이 생기면/세상에는/온통 엄마의 미소로 가득합니다//저에게 슬픈 일이 생기면/세상에는/온통 엄마의 눈물로 가득합니다
이런 존재, 이 세상에 엄마 말고 누가 또 있을까. 사랑하는 엄마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깨달으며, 다시 한 번 효도를 다짐하게 된 시간이었다. 엄마 사랑합니다. 아버지랑 함께 오래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