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
정명섭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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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팩션을 참 좋아합니다. 거기에 법정 소설 또한 사랑하구요. 이 두가지 소재가 결합된 책이 나왔대서 기대가 컸지요.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저는 역사 저널 그날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겨보는데 이 소설은 마치 그 프로그램을 보는 듯 했습니다. 실재했던 역사적 사실을 모티프로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소송이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홍씨가문(정명공주의 시가)의 수탈에 못견뎌 끝내 소송을 걸게 되는 하의삼도 주민 윤민수. 그는 전설적인 외지부(조선시대에도 지금의 변호사와 비슷한 일을 하던 '외지부'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합니다.) 주찬학을 찾아가 변호를 의뢰합니다. 7년 전 사건으로 외지부 일을 그만두고 주막에서 잡일을 하며 살아가던 주찬학은 그 의뢰를 거절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흔히 그렇듯 결국 수락을 하지요. 그리고 당연히 상대편에서도 만만찮게 똑똑하고 유능한 라이벌이 등장을 합니다. 그런 경쟁 구도를 통한 소송의 과정을 꽤나 세밀하게 그려놓았습니다.

 

조선 시대에도 지금과 비슷한 과정으로 소송이 진행되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작품은 소설인데... 역사 저널 그날 같은 교양 프로그램이 아닌데...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인물들간의 관계라든가 사건 전개의 흐름에 있어서 개연성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게다가 스토리 또한 너무나 뻔해서 신선함이 없었구요. 법정 소설이나 드라마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분명 저처럼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법정 소설이라는 점에 대해 그 기대치가 몹시 클테니 그에 비례하여 실망감도 크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즉, 소재의 참신함이나 흥미로움은 인정하나, 스토리로서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는 것이 제 솔직한 감상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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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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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유없이 무턱대고 강렬하게 끌리는 책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 작품이 저에겐 그랬습니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라는 제목. 당신은 아무렇지 않을 거다...하고 위로를 건네는 것도 같지만, 실상은 산전수전 다 겪어서 이젠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게 되어버렸다는 자조 섞인 푸념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 제목의 중의성이 좋아 끌렸던 것이니 이유없는 끌림은 아닌게 되겠군요.

 

 

 

책 첫 부분에 실린 작가님의 소감을 읽으면서부터 저의 끌림이 옳은 것이었구나...하는 확신이 들기 시작합니다. 소설가가 시조로 쓴 어쩐지 경쾌하고 귀엽기까지 한 소감. 여기 실린 작품들도 다 이런 느낌들이겠구나 싶어 미소가 지어졌지요.

 

그리고 이어진 첫 단편에서 저는 이미 이 책에 완전히 반해버렸습니다. 벚꽃이 난분분 흩날리는 화창한 봄날, 나른한 경찰서에서 형사와 검도사범이 주고 받는 조사. 이건, 추리나 스릴러 소설인가?...하는 찰나 급 찾아와버리는 뜻밖의 결말. 그리고 이에 지을 수밖에 없었던 너털 웃음.

 

p.24 아니죠. 그러면 누굴 사랑하는 게 아니죠. 사랑이 어디 합의할 수 있는 거던가요? 』

p.24 봄이니까. 봄이니까. 최 형사는 혼잣말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진짜 사랑은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창밖에선 또 한 번 난분분,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

 

이 외에도 이 작품 속엔 총 40개의 웃음들이 등장합니다. 이 책은 250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얇은 책입니다. 거기에 이따금씩 삽화까지 등장을 합니다. 그런데 수록된 작품은 무려 40편이지요. 그렇습니다. 한 작품 당 대여섯 페이지가 고작이지요. 단편 소설이라 쳐도 많이 짧은 이야기들입니다. 때문에 너무나 쉽고 빠르게 읽히지만, 그렇다고 가볍고 유쾌하게 읽히진 않습니다.

 

p.132 침낭 속에서 그는 가만히 별을 바라보았다. 별은 좋겠다, 카드 값 걱정 안 해서............. 그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이번엔 달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또 혼잣말을 했다. 달은 좋겠다, 다음 달에도 그냥 달이어서...... 』

 

한 집안의 가장, 청년 실업자들, 독거 노인들, 이혼한 싱글파더, 갱년기의 엄마들, 사업에 실패하고 자살을 결심한 남자, 삶에 찌든 중년들...... 이들은 이 작품속의 주인공들입니다. 헬조선에서 살며 산전수전 다 겪어 이제 정말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게 된' 사람들. 그렇다고 이 작품들이 또 한없이 무겁고, 삭막하고, 처량하고, 암울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짧게 짧게 끊어지는 40편의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앞에서도 언급했듯 끊임없이 웃음이 흘러나옵니다. 그렇다고 또 그 웃음이 박장대소나 파안대소의 느낌은 아닙니다. 이 이야기들 속에 담긴 웃음들은 아줌마들이 동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말며 주고 받는 남편 걱정, 자식 걱정, 집세 걱정으로 늘어놓는 넋두리 속에 담긴 그런 웃음입니다. 그리고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등에 진 채 하루 하루 힘겹게 일하고 퇴근길에 들른 포장마차에서 소줏잔을 기울이다가 옆 테이블에 앉은 비슷한 연배의 아저씨와 술 한 잔 나누며 짓는 그런 웃음입니다. 그리고 그 웃음 끝에서 결국엔 코끝이 찡해지며, 책 속에 자주 등장하던 문장을 빌리자면 '어쩐지 좀 눈물이 날 것 같아'지는 것입니다.

 

p.171 그는 웃으면서 계속 비명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아아아아. 우리는 너나없이 고통 속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란다. 아아아아. 그는 비명을 지르며 아이에게 속엣말을 했다. 고통 다음에야 비로소 가족의 이름을 부여받는 거야. 아아아아. 그래서 가족이란 단어는 들으면 눈물부터 나오는 거란다.

 

희노애락애오욕. 그 복잡한 감정들을 전부 '웃음'으로 승화해 버리는 작품. 그리고 그 '웃음'들 끝엔 카타르시스의 '눈물 한방울'이 존재하는 멋진 작품입니다. 

 

책 속 한 단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생각 기계'인 담배 마냥 40개 이상의 생각들을 하게 했던 작품. 하지만 너무도 방대했던 그 생각을 쉬이 글로 표현하지 못해, 작가님처럼 저도 답가 형식의 시조로 표현해 봅니다.

 

짧은 글 술렁술렁 쉽사리 읽어갔지

웃다가 울었다가 지지리 궁상이었

짧았던 이야길수록 여운은 짙고 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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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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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에서 볼 수 있는 시조로 적은 작가님의 소감과 첫 단편 반해버려 구입했습니다. 완벽하게 제 취향일 것 같아 기대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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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기리 주류점의 부업일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8
도쿠나가 케이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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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6 즐겁던 날들은 흘러가 사라졌다. 그런데도 나는 마주 볼 수 있을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

 

한달 전쯤 종영한 드라마를 보며 자주 울다 웃다 했었습니다. 사람 냄새 폴폴 나던 드라마 속에 시청자들의 공감과 감동을 몇 배로 증폭시키던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것이 바로 배경음악이었죠. 드라마의 인기 덕에 주옥같은 예전 명곡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는데, 그중 단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다독였던 노래는 아마 '걱정말아요, 그대.'라는 노래가 아니었나 합니다.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버렸죠.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하는 가사에서 아마 저를 비롯한 힘겹게 하루 하루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 노래를 마치 소설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작품이 바로 '가타기리 주류점의 부업일지'입니다.

 

'가타기리 주류점'은 이름에서 보듯 술을 파는 '주류점'입니다. 그런데 술을 파는 것만으로 벌이가 신통치 않아 '배달'이라는 '부업'을 하게 되었지요. 우체국도 있고, 택배 서비스도 발달되어 있는 마당에 배달 의뢰가 잘 들어오겠냐구요? 때문에 '가타기리 주류점'에 들어오는 의뢰는 대부분 우체국이나 택배로는 '곤란한' 일들입니다. 그렇다고 '곤란하다.'의 의미를 '구리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곤란한'의 의미는 보통 택배로는 전할 길 없는 '마음'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그렇게 '곤란할 때 믿고 찾는 참마음 배달' 가타기리 주류점의 작은 사장 '가타기리'는 별별 배달 의뢰를 받아 배달을 하고 그러는 과정을 통해 탐정 역할도, 상담사 역할도 해내며, 결국 본인이 또한 치유 받게 됩니다. 그런 과정들이 5개의 단편에 오밀조밀 모여있습니다.

 

<단기 알바생의 우울>에서는 '마루카와'라는 대학생이 마작에서 돈을 잃고 가타기리 주류점에서 단기 알바를 하게 되는데, 마루카와와 가타기리가 함께 배달 업무로 가게된 곳은 다름아닌 아이돌의 콘서트장이었습니다. 인기 절정의 아이돌의 콘서트날 무사히 아이돌을 만나 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온갖 전략을 짜며 좌충우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매우 코믹하게 그려집니다. 어리버리한 마루카와와 항상 저혈압에 까칠한 가타기리의 전혀 어울리지 않은 듯 케미 돋는 콤비플레이가 미소를 짓게 하지요. 그리고 여기서 가타기리는 의도치 않게 상담사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겪게 되는 '선택'의 문제에 대해. 그리고 전 그녀의 용기 있는 선택과 결단에 응원과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p.65 '이런 거 저런 거 안 따지고'라는 건, 이를테면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거잖아요? 』

 

<전철 혹은 우주선>는 어떤 이름도 모를 맹랑한 꼬마의 150엔짜리 의뢰 이야기입니다. 아빠의 강한 만류로 '명원'에 있는 엄마를 만나지 못하는 소년. 그 소년에게서 전철인지 우주선인지 모를 모형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역시 의도치 않게, 상당히 강제적으로 떠맡아 소년의 '엄마'에게 전달해야 하는 의뢰.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가타기리는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인지라 이런 의뢰쯤 깨끗이 무시할 수도 있었습니만, 주류점에서 일을 도와주는 '후사에'의 협박 아닌 협박에 넘어가 소년의 엄마의 소재를 조사하게 되지요. 여기서 가타기리의 역할은 탐정입니다. 그렇게 마주하게 되는 의외의 반전. 그리고 안타깝지만 어쩐지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결말이 인상적인 단편이었습니다.

 

p.120 자신의 세계는 자신만의 것이다. 그리하여 고독은 어디까지나 계속된다. 제각기 얇은 막에 싸인 세포들이 그러하듯이, 나란히 붙을 수는 있어도 녹아서 하나가 되는 일은 결코 없다. 살과 피를 나눠 받은 엄마의 세계조차도. 』

 

<악의>는 사람이 사람에게 품는 '악의'라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요코는 직장내 왕따를 당하는 인물입니다. 특히 얼마전에 새로 부임한 과장은 요코를 면전에 대고 구박하지요. 요코는 동료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도 결국 과장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연히 알게 된 '가타기리 주류점'에 과장에게 '악의'를 배달해 달라는 의뢰를 하게 되고, 가타기리는 이를 수락합니다. 그렇게 과장에게 정말 '악의'가 전달됩니다. 요코가 원하던 대로 동료들의 악의어린 시선들은 이제 전부 과장을 향하게 됩니다. 이로써 요코는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사람은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살아가면서 때때로 특정 대상에게 '악의'를 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악의'를 행위로 옮기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겠지요. 어쩌면 그 '악의'란 것이 돌고 돌아 결국 자신을 향하게 될른지도 모를 일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기 전에 자신부터 살피는 것이 옳은 일이겠지요.

 

p.197 사람마다 제각기 일을 맺는 방식이 있는 거겠지. 』

 

<바다와 상흔>은 이혼을 앞둔 남자가 신혼여행 때 신혼여행지에서 산 도자기를 신혼여행지인 오키나와의 바다에 버려달라는 의뢰입니다. 급삭스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돌아와 아버지로부터 가게를 물려 받은지 8년 동안 휴가 한번 제대로 떠나지 않았던 가타기리는 일도 하고 휴식도 취할 겸 오키나와로 떠납니다. 절벽에 이르러 바다를 바라보던 가타기리는 어느새 바다에 매료되어 그곳에 빠질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알고 보면 과거에 상처가 많은 가타기리입니다. 가타기리의 과거가, 그리고 그의 아픔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가타기리 등을 토닥이며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러주고 싶어지는 단편이었습니다.

 

p.208 내가 이렇게 술잔을 비우는 사이에도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는 절벽에서 몸을 던지겠지. 저마다의 무거운 이유를 등에 지고 절벽 끝에서 바다를 내려다볼 남자들과 여자들. 거기까지 와야 했을 그네들의 심정은 알길이 없지만, 어쩌면 눈 밑에서 일렁거리는 아름다운 빛깔에 홀려 몸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알랴.

 

<아침의 방문자>는 오키나와에서 무라카와(가타기리는 오키나와에 가기 위해 무라카와에게 다시 알바를 부탁합니다.)의 급한 연락을 받고 돌아온 가타기리가 7년전 받아 놓은 의뢰를 처리하기 위해 의뢰인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7년 전에 의뢰를 했던 의뢰인은 13세의 소녀. 현재는 20세. 그녀는 가타기리가 오키나와에 머물었던 아침 아주 위태한 모습으로 주류점에 방문했다 돌아가고, 어떤 위험을 감지한 가타기리는 작은 단서들을 모아 그녀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알게되는 그녀의 과거, 그녀의 아픔이 가타기리 자신의 과거와 아픔과 오버랩되고, 그 과정이 아프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펼쳐집니다. 저혈압 때문인지 늘상 까칠하기 짝이 없던 가타기리가 '참마음'을 배달하다 보니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해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러줄 수 있게 된 거지요.

 

p.279 무리하지 마. 자신을 소중히 해!

 

기쁠 때, 슬플 때, 괴로울 때, 축하할 때, 위로할 때. 그때마다 우리와 함께하는 것은 바로 '술'일 겁니다. 인생의 중요한 매순간들을 함께하는 '술'. 이는 어쩌면 달고 쓰고 뜨거운 '술'처럼 우리 인생도 달고 쓰고 뜨거워서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달고 쓰고 뜨겁긴 하지만 또한 각각의 종류에 따라 그맛이 참 다양한 술은 어쩜 제각각 개성 강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과 비슷한지도 모르겠구요. 다양한 우리 인생과 닮은 다양한 술들을 파는 '가타기리 주류점'. 그리고 가타기리가 하는 부업 '참마음 배달'. 실제로 존재한다면 꼭 단골이 되고 싶네요. 술도 사고, 참마음 배달도 의뢰하며 후사에씨가 만든 장아찌도 얻어 먹고, 마루카와에게 면박도 좀 주고, 까칠한듯 다정한 가타기리에게 '걱정말아요, 그대'라는 노래를 들려 주고 싶습니다.

 

p.281 과거 청산, 이란 말이 있지? 그게 지난 일을 깨끗이 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과거를 안은 채 계속 살아간다는 뜻 아닌가..... 요즘 그런 생각이 드네.................. 만일 지금 현실에서 도치해버리면 고통을 견뎠던 그 시절의 나, 살고자 했던 과거의 나마저도 부정해버리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

 

표지를 보자 마자 그 색감과 일러스트에 반해서 이 책이 너무나도 읽고 싶어졌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러스트는 다름아닌 작가인 도쿠나가 케이가 직접 그린 거라고 하네요. 만화가를 꿈꿨다는 그녀. 때문에 만화적 상상력이 가득하여 시종일관 유쾌하다는 그녀의 작품. 그녀의 처녀작인 '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업무일지'가 궁금해집니다. 곧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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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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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하여 돈 많이 벌어서 평생 잘 먹고 잘 사는 인생. 우리는 그런 인생을 '진짜'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개개인은 다 '진짜'인데 그 개개인이 사는 인생에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다니 이 얼마나 꼬인 생각인지요. 공부 좀 못한다고 해서, 돈을 좀 못 번다고 해서, 사업에 실패했다고 해서, '가짜'로 치부되어야 하다니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요?

 

『 p.122 세상 모든 게 통째로 진짜거나 통째로 가짜였으면 좋겠어. 화투판 뒤집듯이 뒤집으면 한꺼번에 진짜도 됐다, 가짜도 됐다...... 그러면 어떤 게 진짜고 어떤 게 가짠지 헷갈리지 않을 텐데..... 』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가 오리에게 잡아 먹혔다고 주장하는 노인이 있습니다. 문학이라고 쳐 주지도 않는 장르소설을 쓰는 전재산 4264원을 자랑하는 남자도 있습니다. 주식으로 전재산 말아 먹은 여자도 있습니다. 가족 보다는 돈이 최고인 아이도 있습니다. 이 소설은 이런 '가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이 시작하면서 끝나기까지 그들에겐 이름이 없습니다. 그저 남자, 여자, 노인, 아이라고 지칭되지요. 남녀노소. 이야기 진행상 아주 자연스러운 인물설정이면서 상당히 상징적인 인물구도이기도 합니다. 즉,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이겠지요.

 

『 p.121 난 그런 이야기를 읽고 싶어요. 고양이는 있지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있으면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고양이가 있으니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가 읽고 싶어요.

 

이 이야기는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소개하자니 마치 가상의 공간에서 상상의 동물들을 뒤쫓는 판타지 소설이라도 되는 것 같습니만 이 소설의 배경은 '불광천'입니다. 저는 시골 깡촌에서서 태어나서 현재는 경기 촌구석 마을에서 살고 있는지라 '불광천'이란 곳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저희 동네에는 소설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불광천'이란 곳과 매우 흡사한 하천이 흘러가고 있는지라 책 속 여러 묘사를 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동네 하천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불광천'이란 곳에는 오리들이 떼지어 사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 속 주인공인 노인은 그 오리들 중 하나가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 '호순이'(그러고보니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존재네요^^)를 잡아 먹었다고 주장하지요. 그리고 그 망할 오리를 잡기 위해 나(남자)와 여자를 고용하여 일당 오만원을 주고 불광천의 오리들의 사진을 찍게 합니다. 단순히 오리 사진을 찍는 일만으로 일당 오만원이라니, 게다가 고양이를 잡아 먹은 오리따위 진짜로 있을리 없으니 해고의 염려 또한 없으니, 이런 꿀 알바가 따로 없습니만, 남자와 여자는 일이 거듭될수록 자신들 안의 양심의 소리에 괴로워 합니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노인의 손자와 노인의 아들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지요. 그들은 '진짜' '호순이를 잡아 먹은 오리'를 잡을 수 있을까요? '호순이'는 '진짜' 오리에게 잡아먹힌 걸까요?

 

『 p.122 누군가는 써야만 하니까요. 왜냐하면, 누군가는 꼭 그 일을 해야만 하니까요. 고양이는 있지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된다, 세상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누군가는 아니라고 해야 하니까요. 』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때때로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때때로 아파지기도 합니다. 채플린이 했다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을 늘 격하게 공감하며 사는지라 이런 인생의 단상들을 잘 보여주는 소설들을 만나면 그저 기쁘고 즐겁습니다. 때문에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좋지 않았던 장면이 없지만, 제가 특히나 좋았고 감동 받았던 장면은 '남자'가 '노인'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노인'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었습니다. 노인은 언제나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자세로 자신의 아파트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주변에 어떤 오물이 있건, 그 오물이 아무리 썩어나가건 치우지도 않습니다. 노인은 고용주이고, 남자와 여자는 피고용인이니 일당만 챙기면 그뿐 노인이 빨래를 하는지, 청소를 하는지, 끼니를 거르는지 등은 남자와 하등의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노인의 행태에 화가 났다는 것은 남자나 여자가 노인에게 '감정'이란 것을 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리고 '감정'이란 것이 생겼다는 것은 '의미'가 생겼다는 것이고, 그렇게 남자와 여자와 노인은 '우리'가 되었다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서로 정들어가며 같이 밥을 먹는 '식구'가 되어가는 과정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에선 으레 등장하는 식상한 설정이겠지만 전 그 당연함이 언제나 좋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보듬고 다독이며 살아가야한다는 이야기는 식상하고 당연해도 언제나 따뜻한 울림으로 위로가 되어주니까요.

 

『 p.145 그 얼마 후에야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가 우리라는 것을.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쫓는 사람과 그에게 고용된 사람들, 그러니까 너와 나가 결합하여 우리가 되었다는 것을. 누가 먼저 깨달았는지 굳이 따질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눈빛만으로 서로의 깨달음을 깨달았다. 』

 

『 p.160 우리는 이미 우리였다. 우리가 너와 나로 분열하는 것은 쉽고 간단한 일이지만 너와 나가 우리로 결합하는 건 쉽지도 간단하지도 않았다. 쉽지도 간단하지도 않은 일이 이미 이루어졌는데 그걸 원래대로 되돌린다는 것은 설령 그게 쉽고 간단하다 하더라도 실행하기에는 저어되는 일이었다. 』

 

우리는 누구나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지 알지 못한 채 인생을 살아갑니다. 미리 결정된 것도, 예상할 수 있는 것도 전혀 없지만 그 인생들 하나 하나는 모두 '진짜'입니다. 나와 당신과 우리 모두의 '진짜' 인생이여 힘내길!

 

『 p.266 그랬다. 어떻게든. 쓰다 보면 어떻게든 결말이 나겠지. 어떤 결말일지 그걸 꼭 미리 알아야 하나. 모든 걸 예상하고 예정해야 제대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무려나, 여자의 말이 맞았다. 모호한 건 모호한 대로 괜찮은 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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