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타기리 주류점의 부업일지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8
도쿠나가 케이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 p.296
즐겁던 날들은 흘러가 사라졌다. 그런데도 나는 마주 볼 수 있을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
한달 전쯤 종영한 드라마를 보며 자주 울다 웃다 했었습니다. 사람 냄새 폴폴 나던 드라마 속에 시청자들의 공감과 감동을 몇 배로
증폭시키던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것이 바로 배경음악이었죠. 드라마의 인기 덕에 주옥같은 예전 명곡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는데, 그중 단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다독였던 노래는 아마 '걱정말아요, 그대.'라는 노래가 아니었나 합니다.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버렸죠.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하는 가사에서 아마 저를 비롯한 힘겹게 하루 하루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 노래를 마치 소설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작품이 바로 '가타기리 주류점의 부업일지'입니다.
'가타기리 주류점'은 이름에서 보듯 술을 파는 '주류점'입니다. 그런데 술을 파는 것만으로 벌이가 신통치 않아 '배달'이라는 '부업'을
하게 되었지요. 우체국도 있고, 택배 서비스도 발달되어 있는 마당에 배달 의뢰가 잘 들어오겠냐구요? 때문에 '가타기리 주류점'에 들어오는 의뢰는
대부분 우체국이나 택배로는 '곤란한' 일들입니다. 그렇다고 '곤란하다.'의 의미를 '구리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곤란한'의 의미는 보통 택배로는 전할 길 없는 '마음'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그렇게 '곤란할 때 믿고 찾는 참마음 배달' 가타기리 주류점의
작은 사장 '가타기리'는 별별 배달 의뢰를 받아 배달을 하고 그러는 과정을 통해 탐정 역할도, 상담사 역할도 해내며, 결국 본인이 또한 치유
받게 됩니다. 그런 과정들이 5개의 단편에 오밀조밀 모여있습니다.
<단기 알바생의 우울>에서는 '마루카와'라는 대학생이 마작에서 돈을 잃고 가타기리
주류점에서 단기 알바를 하게 되는데, 마루카와와 가타기리가 함께 배달 업무로 가게된 곳은 다름아닌 아이돌의 콘서트장이었습니다. 인기 절정의
아이돌의 콘서트날 무사히 아이돌을 만나 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온갖 전략을 짜며 좌충우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매우 코믹하게 그려집니다.
어리버리한 마루카와와 항상 저혈압에 까칠한 가타기리의 전혀 어울리지 않은 듯 케미 돋는 콤비플레이가 미소를 짓게 하지요. 그리고 여기서
가타기리는 의도치 않게 상담사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겪게 되는 '선택'의 문제에 대해. 그리고 전 그녀의 용기 있는
선택과 결단에 응원과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 p.65
'이런 거 저런 거 안 따지고'라는 건, 이를테면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거잖아요? 』
<전철 혹은 우주선>는 어떤 이름도 모를 맹랑한 꼬마의 150엔짜리 의뢰
이야기입니다. 아빠의 강한 만류로 '명원'에 있는 엄마를 만나지 못하는 소년. 그 소년에게서 전철인지 우주선인지 모를 모형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역시 의도치 않게, 상당히 강제적으로 떠맡아 소년의 '엄마'에게 전달해야 하는 의뢰.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가타기리는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인지라 이런 의뢰쯤 깨끗이 무시할 수도 있었습니만, 주류점에서 일을 도와주는 '후사에'의 협박 아닌 협박에 넘어가 소년의 엄마의 소재를
조사하게 되지요. 여기서 가타기리의 역할은 탐정입니다. 그렇게 마주하게 되는 의외의 반전. 그리고 안타깝지만 어쩐지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결말이
인상적인 단편이었습니다.
『 p.120
자신의 세계는 자신만의 것이다. 그리하여 고독은 어디까지나 계속된다. 제각기 얇은 막에 싸인 세포들이 그러하듯이, 나란히 붙을 수는 있어도
녹아서 하나가 되는 일은 결코 없다. 살과 피를 나눠 받은 엄마의 세계조차도. 』
<악의>는 사람이 사람에게 품는 '악의'라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요코는
직장내 왕따를 당하는 인물입니다. 특히 얼마전에 새로 부임한 과장은 요코를 면전에 대고 구박하지요. 요코는 동료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도 결국
과장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연히 알게 된 '가타기리 주류점'에 과장에게 '악의'를 배달해 달라는 의뢰를 하게 되고, 가타기리는 이를
수락합니다. 그렇게 과장에게 정말 '악의'가 전달됩니다. 요코가 원하던 대로 동료들의 악의어린 시선들은 이제 전부 과장을 향하게
됩니다. 이로써 요코는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사람은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살아가면서 때때로 특정 대상에게 '악의'를 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악의'를 행위로 옮기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겠지요. 어쩌면 그 '악의'란 것이 돌고 돌아 결국 자신을 향하게 될른지도 모를 일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기 전에 자신부터
살피는 것이 옳은 일이겠지요.
『 p.197
사람마다 제각기 일을 맺는 방식이 있는 거겠지. 』
<바다와 상흔>은 이혼을 앞둔 남자가 신혼여행 때 신혼여행지에서 산 도자기를
신혼여행지인 오키나와의 바다에 버려달라는 의뢰입니다. 급삭스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돌아와 아버지로부터 가게를 물려 받은지 8년 동안 휴가
한번 제대로 떠나지 않았던 가타기리는 일도 하고 휴식도 취할 겸 오키나와로 떠납니다. 절벽에 이르러 바다를 바라보던 가타기리는 어느새 바다에
매료되어 그곳에 빠질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알고 보면 과거에 상처가 많은 가타기리입니다. 가타기리의 과거가, 그리고 그의
아픔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가타기리 등을 토닥이며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러주고 싶어지는 단편이었습니다.
『 p.208
내가 이렇게 술잔을 비우는 사이에도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는 절벽에서 몸을 던지겠지. 저마다의 무거운 이유를 등에 지고 절벽 끝에서 바다를
내려다볼 남자들과 여자들. 거기까지 와야 했을 그네들의 심정은 알길이 없지만, 어쩌면 눈 밑에서 일렁거리는 아름다운 빛깔에 홀려 몸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알랴. 』
<아침의 방문자>는 오키나와에서 무라카와(가타기리는 오키나와에 가기 위해 무라카와에게
다시 알바를 부탁합니다.)의 급한 연락을 받고 돌아온 가타기리가 7년전 받아 놓은 의뢰를 처리하기 위해 의뢰인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7년 전에
의뢰를 했던 의뢰인은 13세의 소녀. 현재는 20세. 그녀는 가타기리가 오키나와에 머물었던 아침 아주 위태한 모습으로 주류점에 방문했다
돌아가고, 어떤 위험을 감지한 가타기리는 작은 단서들을 모아 그녀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알게되는 그녀의 과거,
그녀의 아픔이 가타기리 자신의 과거와 아픔과 오버랩되고, 그 과정이 아프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펼쳐집니다. 저혈압 때문인지 늘상 까칠하기 짝이
없던 가타기리가 '참마음'을 배달하다 보니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해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러줄 수 있게 된 거지요.
『 p.279
무리하지 마. 자신을 소중히 해! 』
기쁠 때, 슬플 때, 괴로울 때, 축하할 때, 위로할 때. 그때마다 우리와 함께하는 것은 바로 '술'일 겁니다. 인생의 중요한
매순간들을 함께하는 '술'. 이는 어쩌면 달고 쓰고 뜨거운 '술'처럼 우리 인생도 달고 쓰고 뜨거워서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달고 쓰고
뜨겁긴 하지만 또한 각각의 종류에 따라 그맛이 참 다양한 술은 어쩜 제각각 개성 강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과 비슷한지도 모르겠구요. 다양한
우리 인생과 닮은 다양한 술들을 파는 '가타기리 주류점'. 그리고 가타기리가 하는 부업 '참마음 배달'. 실제로 존재한다면 꼭 단골이 되고
싶네요. 술도 사고, 참마음 배달도 의뢰하며 후사에씨가 만든 장아찌도 얻어 먹고, 마루카와에게 면박도 좀 주고, 까칠한듯 다정한 가타기리에게
'걱정말아요, 그대'라는 노래를 들려 주고 싶습니다.
『 p.281
과거 청산, 이란 말이 있지? 그게 지난 일을 깨끗이 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과거를 안은 채 계속 살아간다는 뜻 아닌가..... 요즘
그런 생각이 드네.................. 만일 지금 현실에서 도치해버리면 고통을 견뎠던 그 시절의 나, 살고자 했던 과거의 나마저도
부정해버리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 』
표지를 보자 마자 그 색감과 일러스트에 반해서 이 책이 너무나도 읽고 싶어졌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러스트는 다름아닌 작가인 도쿠나가 케이가
직접 그린 거라고 하네요. 만화가를 꿈꿨다는 그녀. 때문에 만화적 상상력이 가득하여 시종일관 유쾌하다는 그녀의 작품. 그녀의 처녀작인 '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업무일지'가 궁금해집니다. 곧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