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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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하여 돈 많이 벌어서 평생 잘 먹고 잘 사는 인생. 우리는 그런 인생을 '진짜'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개개인은 다 '진짜'인데 그 개개인이 사는 인생에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다니 이 얼마나 꼬인 생각인지요. 공부 좀 못한다고 해서, 돈을 좀 못 번다고 해서, 사업에 실패했다고 해서, '가짜'로 치부되어야 하다니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요?

 

『 p.122 세상 모든 게 통째로 진짜거나 통째로 가짜였으면 좋겠어. 화투판 뒤집듯이 뒤집으면 한꺼번에 진짜도 됐다, 가짜도 됐다...... 그러면 어떤 게 진짜고 어떤 게 가짠지 헷갈리지 않을 텐데..... 』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가 오리에게 잡아 먹혔다고 주장하는 노인이 있습니다. 문학이라고 쳐 주지도 않는 장르소설을 쓰는 전재산 4264원을 자랑하는 남자도 있습니다. 주식으로 전재산 말아 먹은 여자도 있습니다. 가족 보다는 돈이 최고인 아이도 있습니다. 이 소설은 이런 '가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이 시작하면서 끝나기까지 그들에겐 이름이 없습니다. 그저 남자, 여자, 노인, 아이라고 지칭되지요. 남녀노소. 이야기 진행상 아주 자연스러운 인물설정이면서 상당히 상징적인 인물구도이기도 합니다. 즉,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이겠지요.

 

『 p.121 난 그런 이야기를 읽고 싶어요. 고양이는 있지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있으면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고양이가 있으니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가 읽고 싶어요.

 

이 이야기는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소개하자니 마치 가상의 공간에서 상상의 동물들을 뒤쫓는 판타지 소설이라도 되는 것 같습니만 이 소설의 배경은 '불광천'입니다. 저는 시골 깡촌에서서 태어나서 현재는 경기 촌구석 마을에서 살고 있는지라 '불광천'이란 곳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저희 동네에는 소설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불광천'이란 곳과 매우 흡사한 하천이 흘러가고 있는지라 책 속 여러 묘사를 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동네 하천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불광천'이란 곳에는 오리들이 떼지어 사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 속 주인공인 노인은 그 오리들 중 하나가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 '호순이'(그러고보니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존재네요^^)를 잡아 먹었다고 주장하지요. 그리고 그 망할 오리를 잡기 위해 나(남자)와 여자를 고용하여 일당 오만원을 주고 불광천의 오리들의 사진을 찍게 합니다. 단순히 오리 사진을 찍는 일만으로 일당 오만원이라니, 게다가 고양이를 잡아 먹은 오리따위 진짜로 있을리 없으니 해고의 염려 또한 없으니, 이런 꿀 알바가 따로 없습니만, 남자와 여자는 일이 거듭될수록 자신들 안의 양심의 소리에 괴로워 합니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노인의 손자와 노인의 아들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지요. 그들은 '진짜' '호순이를 잡아 먹은 오리'를 잡을 수 있을까요? '호순이'는 '진짜' 오리에게 잡아먹힌 걸까요?

 

『 p.122 누군가는 써야만 하니까요. 왜냐하면, 누군가는 꼭 그 일을 해야만 하니까요. 고양이는 있지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된다, 세상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누군가는 아니라고 해야 하니까요. 』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때때로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때때로 아파지기도 합니다. 채플린이 했다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을 늘 격하게 공감하며 사는지라 이런 인생의 단상들을 잘 보여주는 소설들을 만나면 그저 기쁘고 즐겁습니다. 때문에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좋지 않았던 장면이 없지만, 제가 특히나 좋았고 감동 받았던 장면은 '남자'가 '노인'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노인'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었습니다. 노인은 언제나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자세로 자신의 아파트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주변에 어떤 오물이 있건, 그 오물이 아무리 썩어나가건 치우지도 않습니다. 노인은 고용주이고, 남자와 여자는 피고용인이니 일당만 챙기면 그뿐 노인이 빨래를 하는지, 청소를 하는지, 끼니를 거르는지 등은 남자와 하등의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노인의 행태에 화가 났다는 것은 남자나 여자가 노인에게 '감정'이란 것을 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리고 '감정'이란 것이 생겼다는 것은 '의미'가 생겼다는 것이고, 그렇게 남자와 여자와 노인은 '우리'가 되었다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서로 정들어가며 같이 밥을 먹는 '식구'가 되어가는 과정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에선 으레 등장하는 식상한 설정이겠지만 전 그 당연함이 언제나 좋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보듬고 다독이며 살아가야한다는 이야기는 식상하고 당연해도 언제나 따뜻한 울림으로 위로가 되어주니까요.

 

『 p.145 그 얼마 후에야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가 우리라는 것을.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쫓는 사람과 그에게 고용된 사람들, 그러니까 너와 나가 결합하여 우리가 되었다는 것을. 누가 먼저 깨달았는지 굳이 따질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눈빛만으로 서로의 깨달음을 깨달았다. 』

 

『 p.160 우리는 이미 우리였다. 우리가 너와 나로 분열하는 것은 쉽고 간단한 일이지만 너와 나가 우리로 결합하는 건 쉽지도 간단하지도 않았다. 쉽지도 간단하지도 않은 일이 이미 이루어졌는데 그걸 원래대로 되돌린다는 것은 설령 그게 쉽고 간단하다 하더라도 실행하기에는 저어되는 일이었다. 』

 

우리는 누구나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지 알지 못한 채 인생을 살아갑니다. 미리 결정된 것도, 예상할 수 있는 것도 전혀 없지만 그 인생들 하나 하나는 모두 '진짜'입니다. 나와 당신과 우리 모두의 '진짜' 인생이여 힘내길!

 

『 p.266 그랬다. 어떻게든. 쓰다 보면 어떻게든 결말이 나겠지. 어떤 결말일지 그걸 꼭 미리 알아야 하나. 모든 걸 예상하고 예정해야 제대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무려나, 여자의 말이 맞았다. 모호한 건 모호한 대로 괜찮은 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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