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가 스토리콜렉터 40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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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추리, 스릴러, 판타지, 로맨스 등 장르 소설들을 두루두루 즐겨 읽는 편입니다. 다만 한 가지 조금 기피하는 장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호러 소설이었지요. 어렸을 적엔 오밤중에 혼자 푸세식 화장실도(...제 고향은 아주 제대로 시골 깡촌입니다.) 잘도 다니던 저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나이가 드니 겁이 느네요. 때문에 소설이건 책이건 '호러'라는 장르는 그 섬뜩함과 길고 깊은 여운이 싫어 제 관심밖에 두었지요. 그렇기에 정말이지 읽어 보고 싶은데,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는 작가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미쓰다 신조'였습니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그에 대한 찬사를 보노라면 너무도 그의 이야기가 궁금한데, 그 찬사는 바꿔 생각하면 그의 이야기가 '제대로 무서운' 이야기라는 증거로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수 해 전 '제대로 무서운' 호러 영화 한 편을 극장에서 보고 영화 속 장면들이 자꾸만 떠올라 보름 가까이 엄마, 아빠 주무시는 안방 앞에 이부자리 깔고 안방 문 활짝 열어 두고 잤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땐 그래도 엄마 아빠랑 함께 살던 시절이라 보호막이랄지... 안전막이랄지... 그런 게 있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좁디 좁은 집에서 혼자 사는지라  제대로 된 '호러'를 접하는 것에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때문에 그딴 용기따위 내고 싶지도 않았지요. 그러면서도 미쓰다 신조의 소설들을 끊임없이 궁금해 했습니다. 아마 판도라의 심정이 이러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드디어 저는 '흉가'를 통해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쇼타와 그의 가족은 아버지의 전근으로 도쿄에서 나라 지방으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뱀이 똬리를 튼 형태처럼 보이는 산 바로 아래 위치한 단독 주택. 집 주변엔 한창 짓다가 중단된 세 채의 집이 음침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쇼타는 이사를 온 날부터 집 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형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쇼타의 동생 모모미에겐 이사를 온 날 밤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찾아오게 되고요. 이런 경우 아이들은 겁에 질리기도 하지만, 그에 맞먹는 아이다운 호기심 또한 발휘합니다. 때는 마침 여름방학이 막 시작된 참이었으니 쇼타는 탐정의 심정으로, 또한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여러 조사에 착수하지요.

 

  저는 집순이입니다. 이 세상에서 오롯이 몸 편히, 맘 편히 지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집뿐이라고 생각하지요. 휴식이란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뒹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제게 있어 집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집'이란 공간이 공포의 공간이 된다면? 어휴, 정말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완'의 공간을 '긴장'의 공간으로 바꾸어 버릴 때 우리가 맛보게 되는 공포는 극에 달하게 됩니다. 그래선지 동네마다 별별 무서운 사연을 품은 '흉가'나 '폐가' 하나쯤은 다 있기 마련이지요. 때문에 '집'이라는 공간은 호러의 단골 소재로 쓰이는 것일테고요. 거기에 이 작품에선 또 하나의 공포의 대상인 '뱀'이라는 존재까지 등장합니다. 그렇게 이어지는 생생한 묘사, 묘사, 묘사. 그 속에서 '그것'은 쇼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온다, 온다, 온다.

 

 긴장감 넘치는 일종의 모험의 과정에서 쇼타가 느끼는, 그래서 독자에게까지 전해지는 긴장감은 책을 한번 펼치면 도저히 다시 덮기 힘들게 합니다. 그리고 그 모험 끝엔 성장과 이완이 아닌 더 큰 공포가 쇼타를, 그리고 독자인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공포에의 묘사는 전설의 고향을 보며 엄마 품속으로 파고 들던 어린 시절 그때 느꼈던 순수한 공포를 다시 느끼게 합니다. '순수한 공포' 이 소설에서 제가 느낀 것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왜냐고, 어째서냐고 따져 물을 필요 없는 날것 그대로의 공포. 때문에 다른 독자분들은 어린 아이가 서술자여서인지 미쓰다 신조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그 공포감이 훨씬 덜했다고들 하시던데, 이 작품으로 미쓰다 신조에 입문한 저로써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맛깔나게 공포스러웠습니다. '흉가'를 입문작으로 택한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던 게지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자꾸만 집을 둘러보았습니다. 또 벽에, 방바닥에 어른거리는 제 그림자를 보고 흠칫 놀라기도 여러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덮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미쓰다 신조의 또 다른 작품을, 더 무서운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당연한 결과겠지요.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려 버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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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의 탄생 - 2014 제5회 김만중문학상 금상 수상작
조완선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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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고전 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꼭 알아야 할 고전 작품 및 작가가 있으니, 그 쌍벽을 이루는 것이 아마 허균의 홍길동전과 박지원의 허생전을 비롯한 작품들이 아닐까요? 신분제 유교 사회에서 다분히 위험해 보이는 소설들을 썼던 두 사람 허균과 박지원. 어린 시절 동화책으로 먼저 접한 홍길동전과 허생전을 읽으면서 작가니 뭐니 그런 걸 모르던 시절이던지라 어린 마음에 홍길동전에서의 율도국과 허생전에서의 무주공도는 같은 곳인가?...착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만큼 두 작품은 닮은 구석이 많지요.

 

이 소설은 허균과 홍길동과 박지원과 허생의 이야기가 총 망라되어 있습니다. 저는 역사 소설을 몹시 좋아하는데(제가 가장 사랑하는 장르입니다.) 무려 두 사람의 위인이 등장을 하는 이 소설에 손이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소설은 허균이 쓴 교산기행이라는 책을 발견했다는 책쾌가 연암에게 찾아오면서 시작됩니다. 당시 연암은 허생전의 첫머리를 집필중이었고, 과거 개혁가였던 허균의 글이 발견되었다니 그 책을 만날 마음에 설렙니다. 하지만 약속한 날이 되어도 그 책쾌는 찾아오지 않고 되려 그 책쾌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지요. 그렇게 연암은 책쾌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허균의 책의 행방도 찾기 위해 긴 여정에 오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시작도 있습니다. 허균에게 이식이란 자가 찾아와 홍길동이(연산군때 실존했던 인물입니다.) 참수형에 처해졌다는 공문을 들고 찾아옵니다. 그렇게 허균 역시 홍길동의 이런 마지막 행적에 의문을 품고 홍길동의 자취를 찾아 긴 여정에 오릅니다.

 

소설은 이렇듯 연암 박지원의 시점과 교산 허균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진행이 됩니다. 허균은 홍길동을 좇고, 박지원은 허균을 좇게 되지요. 분명 살았던 시대가 전혀 달랐던 세 인물인데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들의 행적이 진행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어디가 허균의 이야기고 어디가 연암의 이야기인지 헛갈리기 시작합니다. 마치 세 사람이 함께 여행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며 심지어 그 여정에 저조차도 동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엔 미스터리가 가득합니다. 또한 허균의 사상이나 홍길동전이 담고 있던 주제의식, 박지원이 갖고 있던 이상 등도 쉽게 이해하며 공감할 수 있도록 이야기에 자연스레 녹아있습니다. 식상한 말로 재미와 메시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달까요? 역사책이나 국어 참고서로 공부하면 지루하기 짝이 없을 내용이 이 작품에선 매우 흥미로운 플롯과 묘사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중고등학생들이 읽어봐도 재밌게 읽을 수 있으며,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품 속에서 특히 인상깊었던 건 자주 등장하던 허균의 글들이었습니다. 적서차별이니, 호부호형이니, 최초의 한글 소설이니, 이런 지식들만 머릿속에 주입되어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홍길동전을 감상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다루져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호민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홍길동의 율도국, 허균의 호민론, 허생전의 무주공도. 그리고 홍길동과 허균과 박지원이 꿈꾸던 세상. 그들이 이상을 꿈꾸며 살았던 시대로부터 수백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오지 않았음을, 심지어 지금 사람들은 호민의 출연 조차도 기대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요? 왠지 그분들께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역사적인 두 인물과 그들의 작품을 아주 자연스럽게 합치하여 매우 흥미롭게 전개시킨 아주 멋지고 재밌는 소설이었습니다.

 

p.21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것인 백성이다. 백성은 호랑이나 표범, 물난리나 큰 화재보다 더 무섭다. 그런데 권력을 가진 자들은 백성들을 모질게 부리기만 할 뿐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말 백성이 무서운 존재가 되는 때는 호민이 나타날 때이다. 호민은 호걸의 탄생을 의미한다. 영웅이 탄생하면 백성들을 괴롭힌 권력자는 내쫓김을 당한다.(허균의 호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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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캔버스
하라다 마하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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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체능적 소질은 눈꼽만치도 갖고 있질 못합니다. 그나마 음악은 감상이라도 할 줄 알지만, 그림에 대해선 상식도 심지어 감상 능력조차도 전무하지요. 때문에 저에게 미술이란 그저 전혀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저랑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었지요. 그런데 처음으로 그림이란 것이 '재밌다.', '흥미롭다.'라고 느끼게 된 계기는 아마 '바람의 화원'이라는 소설을 읽고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같은 소재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렸던 두 천재 화가 김홍도, 신윤복의 이야기에 그리고 그들의 그림에 매료되었었지요. 그리고 후에 화가나 그림에 관련된 소설들을 발견하게 되면 흥미가 동해 무조건 믿고 읽게 되었습니다. 단 하나의 장면, 단 하나의 캔버스로 말을 걸어오기 때문일까요? 그림은 유독 미스터리 소설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모네의 그림을 소재로 한 검은 수련이 그랬고, 고흐의 그림을 소재로 한 대회화전도 그랬고, 루벤스의 그림을 소재로 한 한복 입은 남자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남자의 그림을 소재로 한 소설을 최근에 발견했습니다. 화가 앙리 루소.

 

루소라...하면 솔직히 저는 대학 시절 무던히도 괴롭혔던 계몽사상가이자, 철학자이자, 교육자이자 사회학자였던 장자크 루소를 자연스레 떠올립니다. 때문에 화가 루소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무식하게도 그 루소가 그림도 그렸던 건가 싶었지요. 그런데 아니더라구요. 앙리 루소라는 화가는 원래 세관원 출신으로 40세에서야 비로소 그림을 그리게 된 화가라 합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고 그림을 그려 원근법이니 명암이니따위를 지키지 않아 일요화가라는 별명도 갖고 있는 화가라고도 합니다. 다만, 피카소가 루소의 그림을 높이 평가해 이제서야 조금씩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 소설은 바로 앙리 루소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꿈'이라는 그림을 소재로 하는 작품입니다.

 

때는 1983년 아직 루소가 재평가 받기 전이었습니다. 뉴욕 현대 미술관(MoMA)의 어시스턴트 큐레이트 팀 브라운과 앙리 루소 연구에서는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 하야카와 오리에는 전설적인 미술 컬렉터 바일러로부터 초대장을 받아 바젤에 있는 바일러의 저택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하게 된 앙리 루소의 그림 한 점.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소장중인 '꿈'이라는 작품과 쌍둥이처럼 닮은 또 하나의 작품 '꿈을 꾸었다.' 팀과 오리에는 그 그림이 진작인지 위작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일주일간 바젤에 머물며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일러는 승자에게 문제의 그 그림을 양도하겠다는 약속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림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입니다. 방사선 촬영이나 기법을 분석하거나 하는 것이 아닌 총 7장으로 쓰여진 소설을 매일 90분씩 읽고 마지막날 강평을 하여, 바일러가 마음에 드는 강평을 선택하는 방식이지요. 즉, 팀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소설 속에 또 다른 미지의 누군가가 쓴 앙리 루소에 대한 소설이 등장을 하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독자들이 접하는 미스터리 또한 두배로 증가하게 됩니다. 밖 이야기에서는 팀과 오리에의 관계, 바일러의 정체, '꿈을 꾸었다.'의 진위 여부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또 속 이야기에서는 이야기를 쓴 사람의 정체, 앙리 루소와의 관계, 역시 '꿈을 꾸었다.'와 '꿈'의 관계등에 관해서 끊임없이 궁금증을 자아내게 되구요. 그리고 결국 이 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흥미롭게, 한편으론 충격적으로 합치를 이루게 됩니다. 그 과정이 너무도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기도 해서 책장을 한 번 열면 독서를 멈추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몇 안되기는 하지만 올해 들어 읽었던 소설들 중에서 아마 가장 몰입해서 읽은 것 같습니다.

 

물론, 솔직히 몇몇 미스터리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는 제 나름의 추리가 맞아 떨어지는 부분도 적지 않긴 했습니다. 워낙 추리 소설을 좋아해 많이 읽다 보니 그런 소설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패턴이나 흐름을 캐치할 때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쉽게 추리해낼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추리를 넘어서는 반전 또한 존재하기에 시시하거나 식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앙리 루소의 지독한 팬이 쓴 팬픽(...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요;;;)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앙리 루소라는 화가에 대해 무던히도 찬양적이라서 그 절절한 팬심(...거듭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이 독자인 저에게까지 절절히 전해짐을 느꼈거든요. 작가가 원래 큐레이터 출신이라는데 아마 그녀 자신이 루소의 굉장한 팬이거나 혹은 연구자가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또 그런 것들이 과하게 느껴지거나 거부감이 들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작품 속에서 말하던 루소의 열정, 팀과 오리에의 열정이 작가의 열정과도 일치하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세상은 덕후(...이 표현 또한 써도 될른지;;)들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을 하잖아요. 그리고 결국 그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 또한 결국 열정이나 정렬(Passion)을 의미하는 것일 테니까요.

 

뉴욕 현대 미술관에는 여전히 가로*세로 3m*2m의 대작인 앙리 루소의 '꿈'이라는 작품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한번쯤 직접 눈으로 보고 싶네요. 팀 덕분에, 오리에 덕분에, 그리고 작가 덕분에 왠지 모르게 친근해져버린 야드비가(꿈이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신의 여인)와 그리고 루소와 대화를 나눠 보고싶습니다. 제가 뉴욕에 가긴 힘들지 싶으니...최근에 우리 나라에도 여러 유명 화가의 전시회가 열리곤 하는데 앙리 루소전도 한번쯤...하고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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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
정명섭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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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팩션을 참 좋아합니다. 거기에 법정 소설 또한 사랑하구요. 이 두가지 소재가 결합된 책이 나왔대서 기대가 컸지요.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저는 역사 저널 그날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겨보는데 이 소설은 마치 그 프로그램을 보는 듯 했습니다. 실재했던 역사적 사실을 모티프로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소송이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홍씨가문(정명공주의 시가)의 수탈에 못견뎌 끝내 소송을 걸게 되는 하의삼도 주민 윤민수. 그는 전설적인 외지부(조선시대에도 지금의 변호사와 비슷한 일을 하던 '외지부'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합니다.) 주찬학을 찾아가 변호를 의뢰합니다. 7년 전 사건으로 외지부 일을 그만두고 주막에서 잡일을 하며 살아가던 주찬학은 그 의뢰를 거절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흔히 그렇듯 결국 수락을 하지요. 그리고 당연히 상대편에서도 만만찮게 똑똑하고 유능한 라이벌이 등장을 합니다. 그런 경쟁 구도를 통한 소송의 과정을 꽤나 세밀하게 그려놓았습니다.

 

조선 시대에도 지금과 비슷한 과정으로 소송이 진행되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작품은 소설인데... 역사 저널 그날 같은 교양 프로그램이 아닌데...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인물들간의 관계라든가 사건 전개의 흐름에 있어서 개연성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게다가 스토리 또한 너무나 뻔해서 신선함이 없었구요. 법정 소설이나 드라마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분명 저처럼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법정 소설이라는 점에 대해 그 기대치가 몹시 클테니 그에 비례하여 실망감도 크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즉, 소재의 참신함이나 흥미로움은 인정하나, 스토리로서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는 것이 제 솔직한 감상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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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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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유없이 무턱대고 강렬하게 끌리는 책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 작품이 저에겐 그랬습니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라는 제목. 당신은 아무렇지 않을 거다...하고 위로를 건네는 것도 같지만, 실상은 산전수전 다 겪어서 이젠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게 되어버렸다는 자조 섞인 푸념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 제목의 중의성이 좋아 끌렸던 것이니 이유없는 끌림은 아닌게 되겠군요.

 

 

 

책 첫 부분에 실린 작가님의 소감을 읽으면서부터 저의 끌림이 옳은 것이었구나...하는 확신이 들기 시작합니다. 소설가가 시조로 쓴 어쩐지 경쾌하고 귀엽기까지 한 소감. 여기 실린 작품들도 다 이런 느낌들이겠구나 싶어 미소가 지어졌지요.

 

그리고 이어진 첫 단편에서 저는 이미 이 책에 완전히 반해버렸습니다. 벚꽃이 난분분 흩날리는 화창한 봄날, 나른한 경찰서에서 형사와 검도사범이 주고 받는 조사. 이건, 추리나 스릴러 소설인가?...하는 찰나 급 찾아와버리는 뜻밖의 결말. 그리고 이에 지을 수밖에 없었던 너털 웃음.

 

p.24 아니죠. 그러면 누굴 사랑하는 게 아니죠. 사랑이 어디 합의할 수 있는 거던가요? 』

p.24 봄이니까. 봄이니까. 최 형사는 혼잣말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진짜 사랑은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창밖에선 또 한 번 난분분,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

 

이 외에도 이 작품 속엔 총 40개의 웃음들이 등장합니다. 이 책은 250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얇은 책입니다. 거기에 이따금씩 삽화까지 등장을 합니다. 그런데 수록된 작품은 무려 40편이지요. 그렇습니다. 한 작품 당 대여섯 페이지가 고작이지요. 단편 소설이라 쳐도 많이 짧은 이야기들입니다. 때문에 너무나 쉽고 빠르게 읽히지만, 그렇다고 가볍고 유쾌하게 읽히진 않습니다.

 

p.132 침낭 속에서 그는 가만히 별을 바라보았다. 별은 좋겠다, 카드 값 걱정 안 해서............. 그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이번엔 달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또 혼잣말을 했다. 달은 좋겠다, 다음 달에도 그냥 달이어서...... 』

 

한 집안의 가장, 청년 실업자들, 독거 노인들, 이혼한 싱글파더, 갱년기의 엄마들, 사업에 실패하고 자살을 결심한 남자, 삶에 찌든 중년들...... 이들은 이 작품속의 주인공들입니다. 헬조선에서 살며 산전수전 다 겪어 이제 정말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게 된' 사람들. 그렇다고 이 작품들이 또 한없이 무겁고, 삭막하고, 처량하고, 암울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짧게 짧게 끊어지는 40편의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앞에서도 언급했듯 끊임없이 웃음이 흘러나옵니다. 그렇다고 또 그 웃음이 박장대소나 파안대소의 느낌은 아닙니다. 이 이야기들 속에 담긴 웃음들은 아줌마들이 동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말며 주고 받는 남편 걱정, 자식 걱정, 집세 걱정으로 늘어놓는 넋두리 속에 담긴 그런 웃음입니다. 그리고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등에 진 채 하루 하루 힘겹게 일하고 퇴근길에 들른 포장마차에서 소줏잔을 기울이다가 옆 테이블에 앉은 비슷한 연배의 아저씨와 술 한 잔 나누며 짓는 그런 웃음입니다. 그리고 그 웃음 끝에서 결국엔 코끝이 찡해지며, 책 속에 자주 등장하던 문장을 빌리자면 '어쩐지 좀 눈물이 날 것 같아'지는 것입니다.

 

p.171 그는 웃으면서 계속 비명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아아아아. 우리는 너나없이 고통 속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란다. 아아아아. 그는 비명을 지르며 아이에게 속엣말을 했다. 고통 다음에야 비로소 가족의 이름을 부여받는 거야. 아아아아. 그래서 가족이란 단어는 들으면 눈물부터 나오는 거란다.

 

희노애락애오욕. 그 복잡한 감정들을 전부 '웃음'으로 승화해 버리는 작품. 그리고 그 '웃음'들 끝엔 카타르시스의 '눈물 한방울'이 존재하는 멋진 작품입니다. 

 

책 속 한 단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생각 기계'인 담배 마냥 40개 이상의 생각들을 하게 했던 작품. 하지만 너무도 방대했던 그 생각을 쉬이 글로 표현하지 못해, 작가님처럼 저도 답가 형식의 시조로 표현해 봅니다.

 

짧은 글 술렁술렁 쉽사리 읽어갔지

웃다가 울었다가 지지리 궁상이었

짧았던 이야길수록 여운은 짙고 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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