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가 스토리콜렉터 40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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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추리, 스릴러, 판타지, 로맨스 등 장르 소설들을 두루두루 즐겨 읽는 편입니다. 다만 한 가지 조금 기피하는 장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호러 소설이었지요. 어렸을 적엔 오밤중에 혼자 푸세식 화장실도(...제 고향은 아주 제대로 시골 깡촌입니다.) 잘도 다니던 저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나이가 드니 겁이 느네요. 때문에 소설이건 책이건 '호러'라는 장르는 그 섬뜩함과 길고 깊은 여운이 싫어 제 관심밖에 두었지요. 그렇기에 정말이지 읽어 보고 싶은데,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는 작가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미쓰다 신조'였습니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그에 대한 찬사를 보노라면 너무도 그의 이야기가 궁금한데, 그 찬사는 바꿔 생각하면 그의 이야기가 '제대로 무서운' 이야기라는 증거로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수 해 전 '제대로 무서운' 호러 영화 한 편을 극장에서 보고 영화 속 장면들이 자꾸만 떠올라 보름 가까이 엄마, 아빠 주무시는 안방 앞에 이부자리 깔고 안방 문 활짝 열어 두고 잤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땐 그래도 엄마 아빠랑 함께 살던 시절이라 보호막이랄지... 안전막이랄지... 그런 게 있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좁디 좁은 집에서 혼자 사는지라  제대로 된 '호러'를 접하는 것에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때문에 그딴 용기따위 내고 싶지도 않았지요. 그러면서도 미쓰다 신조의 소설들을 끊임없이 궁금해 했습니다. 아마 판도라의 심정이 이러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드디어 저는 '흉가'를 통해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쇼타와 그의 가족은 아버지의 전근으로 도쿄에서 나라 지방으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뱀이 똬리를 튼 형태처럼 보이는 산 바로 아래 위치한 단독 주택. 집 주변엔 한창 짓다가 중단된 세 채의 집이 음침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쇼타는 이사를 온 날부터 집 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형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쇼타의 동생 모모미에겐 이사를 온 날 밤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찾아오게 되고요. 이런 경우 아이들은 겁에 질리기도 하지만, 그에 맞먹는 아이다운 호기심 또한 발휘합니다. 때는 마침 여름방학이 막 시작된 참이었으니 쇼타는 탐정의 심정으로, 또한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여러 조사에 착수하지요.

 

  저는 집순이입니다. 이 세상에서 오롯이 몸 편히, 맘 편히 지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집뿐이라고 생각하지요. 휴식이란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뒹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제게 있어 집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집'이란 공간이 공포의 공간이 된다면? 어휴, 정말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완'의 공간을 '긴장'의 공간으로 바꾸어 버릴 때 우리가 맛보게 되는 공포는 극에 달하게 됩니다. 그래선지 동네마다 별별 무서운 사연을 품은 '흉가'나 '폐가' 하나쯤은 다 있기 마련이지요. 때문에 '집'이라는 공간은 호러의 단골 소재로 쓰이는 것일테고요. 거기에 이 작품에선 또 하나의 공포의 대상인 '뱀'이라는 존재까지 등장합니다. 그렇게 이어지는 생생한 묘사, 묘사, 묘사. 그 속에서 '그것'은 쇼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온다, 온다, 온다.

 

 긴장감 넘치는 일종의 모험의 과정에서 쇼타가 느끼는, 그래서 독자에게까지 전해지는 긴장감은 책을 한번 펼치면 도저히 다시 덮기 힘들게 합니다. 그리고 그 모험 끝엔 성장과 이완이 아닌 더 큰 공포가 쇼타를, 그리고 독자인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공포에의 묘사는 전설의 고향을 보며 엄마 품속으로 파고 들던 어린 시절 그때 느꼈던 순수한 공포를 다시 느끼게 합니다. '순수한 공포' 이 소설에서 제가 느낀 것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왜냐고, 어째서냐고 따져 물을 필요 없는 날것 그대로의 공포. 때문에 다른 독자분들은 어린 아이가 서술자여서인지 미쓰다 신조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그 공포감이 훨씬 덜했다고들 하시던데, 이 작품으로 미쓰다 신조에 입문한 저로써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맛깔나게 공포스러웠습니다. '흉가'를 입문작으로 택한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던 게지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자꾸만 집을 둘러보았습니다. 또 벽에, 방바닥에 어른거리는 제 그림자를 보고 흠칫 놀라기도 여러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덮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미쓰다 신조의 또 다른 작품을, 더 무서운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당연한 결과겠지요.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려 버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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