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캔버스
하라다 마하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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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체능적 소질은 눈꼽만치도 갖고 있질 못합니다. 그나마 음악은 감상이라도 할 줄 알지만, 그림에 대해선 상식도 심지어 감상 능력조차도 전무하지요. 때문에 저에게 미술이란 그저 전혀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저랑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었지요. 그런데 처음으로 그림이란 것이 '재밌다.', '흥미롭다.'라고 느끼게 된 계기는 아마 '바람의 화원'이라는 소설을 읽고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같은 소재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렸던 두 천재 화가 김홍도, 신윤복의 이야기에 그리고 그들의 그림에 매료되었었지요. 그리고 후에 화가나 그림에 관련된 소설들을 발견하게 되면 흥미가 동해 무조건 믿고 읽게 되었습니다. 단 하나의 장면, 단 하나의 캔버스로 말을 걸어오기 때문일까요? 그림은 유독 미스터리 소설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모네의 그림을 소재로 한 검은 수련이 그랬고, 고흐의 그림을 소재로 한 대회화전도 그랬고, 루벤스의 그림을 소재로 한 한복 입은 남자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남자의 그림을 소재로 한 소설을 최근에 발견했습니다. 화가 앙리 루소.

 

루소라...하면 솔직히 저는 대학 시절 무던히도 괴롭혔던 계몽사상가이자, 철학자이자, 교육자이자 사회학자였던 장자크 루소를 자연스레 떠올립니다. 때문에 화가 루소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무식하게도 그 루소가 그림도 그렸던 건가 싶었지요. 그런데 아니더라구요. 앙리 루소라는 화가는 원래 세관원 출신으로 40세에서야 비로소 그림을 그리게 된 화가라 합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고 그림을 그려 원근법이니 명암이니따위를 지키지 않아 일요화가라는 별명도 갖고 있는 화가라고도 합니다. 다만, 피카소가 루소의 그림을 높이 평가해 이제서야 조금씩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 소설은 바로 앙리 루소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꿈'이라는 그림을 소재로 하는 작품입니다.

 

때는 1983년 아직 루소가 재평가 받기 전이었습니다. 뉴욕 현대 미술관(MoMA)의 어시스턴트 큐레이트 팀 브라운과 앙리 루소 연구에서는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 하야카와 오리에는 전설적인 미술 컬렉터 바일러로부터 초대장을 받아 바젤에 있는 바일러의 저택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하게 된 앙리 루소의 그림 한 점.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소장중인 '꿈'이라는 작품과 쌍둥이처럼 닮은 또 하나의 작품 '꿈을 꾸었다.' 팀과 오리에는 그 그림이 진작인지 위작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일주일간 바젤에 머물며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일러는 승자에게 문제의 그 그림을 양도하겠다는 약속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림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입니다. 방사선 촬영이나 기법을 분석하거나 하는 것이 아닌 총 7장으로 쓰여진 소설을 매일 90분씩 읽고 마지막날 강평을 하여, 바일러가 마음에 드는 강평을 선택하는 방식이지요. 즉, 팀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소설 속에 또 다른 미지의 누군가가 쓴 앙리 루소에 대한 소설이 등장을 하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독자들이 접하는 미스터리 또한 두배로 증가하게 됩니다. 밖 이야기에서는 팀과 오리에의 관계, 바일러의 정체, '꿈을 꾸었다.'의 진위 여부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또 속 이야기에서는 이야기를 쓴 사람의 정체, 앙리 루소와의 관계, 역시 '꿈을 꾸었다.'와 '꿈'의 관계등에 관해서 끊임없이 궁금증을 자아내게 되구요. 그리고 결국 이 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흥미롭게, 한편으론 충격적으로 합치를 이루게 됩니다. 그 과정이 너무도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기도 해서 책장을 한 번 열면 독서를 멈추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몇 안되기는 하지만 올해 들어 읽었던 소설들 중에서 아마 가장 몰입해서 읽은 것 같습니다.

 

물론, 솔직히 몇몇 미스터리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는 제 나름의 추리가 맞아 떨어지는 부분도 적지 않긴 했습니다. 워낙 추리 소설을 좋아해 많이 읽다 보니 그런 소설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패턴이나 흐름을 캐치할 때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쉽게 추리해낼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추리를 넘어서는 반전 또한 존재하기에 시시하거나 식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앙리 루소의 지독한 팬이 쓴 팬픽(...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요;;;)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앙리 루소라는 화가에 대해 무던히도 찬양적이라서 그 절절한 팬심(...거듭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이 독자인 저에게까지 절절히 전해짐을 느꼈거든요. 작가가 원래 큐레이터 출신이라는데 아마 그녀 자신이 루소의 굉장한 팬이거나 혹은 연구자가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또 그런 것들이 과하게 느껴지거나 거부감이 들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작품 속에서 말하던 루소의 열정, 팀과 오리에의 열정이 작가의 열정과도 일치하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세상은 덕후(...이 표현 또한 써도 될른지;;)들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을 하잖아요. 그리고 결국 그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 또한 결국 열정이나 정렬(Passion)을 의미하는 것일 테니까요.

 

뉴욕 현대 미술관에는 여전히 가로*세로 3m*2m의 대작인 앙리 루소의 '꿈'이라는 작품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한번쯤 직접 눈으로 보고 싶네요. 팀 덕분에, 오리에 덕분에, 그리고 작가 덕분에 왠지 모르게 친근해져버린 야드비가(꿈이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신의 여인)와 그리고 루소와 대화를 나눠 보고싶습니다. 제가 뉴욕에 가긴 힘들지 싶으니...최근에 우리 나라에도 여러 유명 화가의 전시회가 열리곤 하는데 앙리 루소전도 한번쯤...하고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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