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 - 지구를 사랑한 소설가가 저지른 도보 여행 프로젝트
올리비에 블레이즈 지음, 김혜영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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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마다 계획도 다르고 그 계획의 목적과 실현방법도 다 다르다. 하지만 결국 여행을 감행했다는 사실 하나는 모두 똑같다' 는 책 속 구절은 작가의 생각과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일정 거리를 걷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가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저번 여행이 끝난 곳에 도착해 또 다시 도보 여행을 시작하는 그의 여행패턴을 꽤나 기괴해 보였다. 쉬지 않고 긴 시간을 걸어서 여행한 줄 알고 책을 펼쳤기 때문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이 책의 작가에게도 가족이 있고 또 나름의 사정이 있다. 오히려 그는 더 합리적이고 현실을 잘 타협한 여행을 한 것이다.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건을 가진 그가 모험을 떠날 수 있었던 건 여행을 감행하는 용기 덕분이었던 셈. 

위대한 모험자님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더욱 좋았다.


이제 여행지에 대한 것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정보의 양이 책보다 더 많고 다양하며, 내용도 최근의 것이 많다. 나부터도 책은 거의 찾아 보지 않으니... 앞으로 이런 '여행' 자체에 대한 책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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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정지돈 지음 / 스위밍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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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인과관계를 가지고 총기가 합법화된 미래의 한국. 그리고 그 배경에 속 비교적 안전하다는 서울에서 살고있는 삶이 불안정한 '짐'이라는 이름의 남자. 그가 안드레아의 제안으로 운전수가 되어 위험지역으로 모험을 떠나는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작은 파티를 이루는 이야기.


제목이 미묘한 만큼 내용도 미묘했다. 줄거리가 있기는 한데 어쩐지 메밀국수처럼 뚝뚝 끊어지는 느낌에 정리도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묘하게 시선을 잡아끄는데, 그 이유는 이야기의 배경이 새롭고 등장인물의 개성이 독특해서...라고 생각한다.


총기합법화와 미세먼지의 이중주로 엄청난 디스토피아로 변한 미래의 한국이 배경이라지만, 분위기는 차분하다. 헐리우드 영화같이 총격전이 난무하지 않는다. 마치 류경호텔 하층부의 이민자들처럼 담담하다. 오히려 안전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더 초조하고 힘겨워 보이더라.

총기소지는 세계적인 흐름이었다...출처를 알 수 없는 무기를 든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살아남으려면 스스로를 지켜야 해. 사람들은 총을 들었고 그때 부터 누가 누구를 왜 쏘게 되는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면 죽었다는 사실도 모르겠지. 아픈지도 모르고 슬픈지도 모르고 억울하지도 않을 것이다. 죽음의 유일한 장점은 남들은 알지만 자신은 모른다는 거다. 그것도 영원히.

무하마드는 이미 백삼십에 가까운 노인이엇고 잠시 후면 승천할 것처럼 보였어요...짐은 무하마드와 눈을 마주쳤고 움찔했지만 곧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집이 아니라 짐의 뒤를 보는 것처럼 보였다. 짐은 무하마드의 눈빛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지만 벌판밖에 없었다. 그 뒤가 아니라 다른 뒤야. 이를테면 태양의 어두운 면, 화성의 숨겨진 분화구, 시간의 뒤, 미래, 과거, 고대의 기억, 역사 같은 것들.

우라질 치킨버거. 세르게이가 입에 묻은 마요네즈를 닦으며 말했다.
이주국이 난민들에게 지급하는 음식은 치킨버거와 콜라뿐이었다...당국은 치킨버거면 충분하다고 했다. 치킨버거에는 양상추도 있고 피클도 있고 마요네즈도 있고 토마토도 있으니까.
우라질 닭고기도 있고! 세르게이가 말했다.

재앙은 지진이나 홍수처럼 갑자기 도래하는 게 아니오. 무하마드가 말했다. 우리가 눈을 감았기 때문이오. 뭐가 재앙이란 말인가요. 간수가 물었다. 그의 중학생 아들은 래퍼가 꿈이고 아버지의 직업을 배경으로 곡을 썼다. 랩 속에서 아버지는 감옥이고 아들은 탈옥수였다. 이런 게 재앙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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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아동 화담
이시이 겐도 지음, 김광식 옮김 / 민속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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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눈으로 본 조선의 모습. 그리고 같은 일본인에게 조선의 지리나 문화 등에 대해 개관해 주는 책...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부정적인 시각이 다분하다.
그래도
그 당시 조선의 풍경, 그것도 아이들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선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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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경기문학 3
배수아 지음 / 테오리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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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과 "영국식뒷마당" 이 담긴 얇고 가벼운 책. 산책에 들고 나갔다가 다 읽고 돌아왔다. 예전엔 그저 두툼해서 이야기가 길게 진행되는 책만 좋았는데, 요즘은 오히려 얇고 가벼운 책에 손이 더 간다. 친구나 버스를 기다리는 살짝 뜨는 시간에 읽기도 좋고, 어깨에도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 일회용 밴드 한두 개 챙기듯이 항상 가방에 넣어 다니기 딱 좋다.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아니, 정말 그 장면이 펼쳐지고 그 인물이 헛것처럼 보일 정도의 묘사에 반했다.

게다가 나와 닮은 부분이 보이는 이야기의 등장인물과는, 마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맞아, 나도 그랬어'라고 동감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공감대가 만들어져서 더더욱 이야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길가 카페에 앉아 있을 때는 주로 희곡들을 읽는다...그때 그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깨닫지 못하는 시이 그가 읽는 희곡을 즉흥적으로 공연하는 배우들이 된다.

이미 다 읽은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몇 페이지만 읽은 후 책장에 꽂아 두고 잊어버린 책도 있고 절반쯤 읽다가 만 책,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다시 읽으면 거의 새로운 독서라는 기분이 들게 하는 책, 그리고 아예 첫 페이지도 펼쳐 보지 않았으므로 정말로 새로운 독서가 되는 책도 있다.

게다가 더욱 결정적인 것은, 난 아무것도 아닌걸요. 영화감독이 아니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 어떤 측면에서 보아도, 난 철저하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재단의 임시직 비서였기 때문에 하는 말만은 아니에요. 어차피 6개월 계약이었던 그 일도 오늘로 끝났답니다.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었단 말이죠. 그러니 이제 난 더더욱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시간 낭비라니,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요? 그런 말은 나에게 해당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는 어차피 시간이 없으니까요. 원래 의미의 시간은 나에게 처음부터 부여되지 않았어요. 내 시간은 그냥 밤뿐이니까요. 바로 지금처럼요. 오래오래 계속되는 밤. 영원히 끝나지 않는 밤. 내 시간은 보이지 않고, 불분명하고, 흐릿할 뿐. 가만히 있으면 나는 밤 속에서 연기처럼 흩어지고 점점 엷어지다가, 아무도 모르게 완전히 사라질 거예요.

사내아이처럼 마르고 길쭉한 몸매는 비현실의 종이처럼 엷고 부피감이 없었다. 너무 작고 말라서 종이로 만든 인형처럼 보였다...수십 수백 개의 작고 가벼운 종들이 아주 미세한 시차를 가지며 한꺼번에 울리는 듯했던 경희의 목소리...

믿을 수 없게도 담장 너머로는 초록이 눈부신 들판이 가득 펼쳐져 있었지. 나지막한 구릉들이 고요한 파도처럼 겹겹이 넘실대는 전원 풍경이었어... 숲 가장자리 텅 빈 오솔길 양 옆으로는 높이 솟은 사이프러스나무들이 움직이지 않는 불꽃처럼 짙은 초록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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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책, 모비 딕
너새니얼 필브릭 지음, 홍한별 옮김 / 저녁의책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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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처럼 모비딕은 정말 벽돌같은 책이다. 그래서 여지껏 읽을 용기를 내지 못했는데, 드디어 그 용기가 생겼다. 아니, 거의 강박적으로 읽고 싶어졌다. 역시 애정만큼 훌륭한 홍보는 없나보다.


얼마 전 친구에게 한 웹툰을 추천하다 느낀 건데, 훌륭한 작품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어떤 내용인지, 감상 포인트는 어디인지 알려주기란 정말 어렵다. 정말 모든 좋은 점을 다 알려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사흘 밤을 새워도 시간이 모자르다(덴마가 얼마나 명작이냐하면....주절주절주절). 정말 중요한 것만 말하면 선별하는 것 부터가 고생이고, 재미 없어지기 쉽고, 말하는 나도 아쉽다. 그런 점에서 그 두꺼운 책을 어마어마한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렇게나 얇은 책으로 압축한 지은이가 존경스럽다.


이 책은 마치 pre-모비 딕 같다. 그만큼 훌륭한 입문서이다. 자칫 흐름을 놓치기 쉬운 모비 딕 줄거리의 약도를 제시해주고, 고전의 소고기 다시다라 할 수 있는 배경지식도 잘 곁들어져 있다. 특히 멜빌과 호손은 이웃집 아저씨들처럼 느껴질 정도니까 말 다 했다.


깜빡하고 수집하지 못한 문장 중에 고전을 단순히 읽으라고해서 읽는 건 좋지 않다는 뉘앙스를 가진 것이 있었다. 인생 경험 같은 것이 없는 상태에서 읽는 고전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었나? 여하튼 정말 실감했다. 요즘 들어 더더욱 고전에 끌리고 있는 건 이 때문일까.

이 책이 출간된 지 150년이 넘어 이제 우리가 외계인이나 다름없어졌다. 우리가 지구를 하도 탕진하다보니 지구의 생물상이 완전히 달라졌고 우리는 멜빈이 알던 지구와 전혀 다른 별에 살게 되었다.

"내가 웬 호들갑을 떤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나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다. 내가 이 사람을 겁내는 만큼 이 사람도 내가 겁나지 않겠나. 술 취한 기독교도보다는 정신 멀쩡한 식인종과 같이 자는 편이 낫지." 이 충격적인 식견은 1851년에는 혁명적이었고 150년도 더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도 경이로울 정도로 신선하게 들린다.

포경업의 위험한 노동 환경에서는 인종이 뭐건 배경이 뭐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기 일을 할 수 있느냐다...멜빌은 다른데에서 언급한 인류의 "신성한 평등"을 실제로 보여주며 노예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글은 강력한 소설이 장엄하고 느리게 진행되도록 일부러 속도를 늦추려고 과속방지턱 삼아 여기저기에 끼워놓은 짧은 곁가지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멜빌은 "영원한 미개척지"인 바다가 원조 황무지임을 알았다...1850년대에 멜빌은 "콜럼버스는 서쪽 표면에 있는 땅 하나를 찾자고 무수한 미지의 세계를 지나쳐 갔다."고 했다.

"나를 좀 보게. 그리스신처럼 자부심 높지만 뼈다귀를 디디고 서려고 이 돌대가리한테 계속 기대고 살아야 하다니!"...멜빌도 그랬다. 충족되지 않는 야망을 가진 작가지만, 자기 책을 출간하고 읽어줄 평범한 사람들에게 의존알 수밖에 없멌다. "내가 가장 쓰고 싶은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돈이 안 된다고요."

"몸의 온기를 즐기려면 몸의 일부분은 추워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특성은 오로지 대립에 의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온몸이 편안하고 오래전부터 늘 그래왔다 자신아는 사람이라면 더이상 편안하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코끝이나 정수리가 살짝 춥다면, 전체적인 의식 속에서 아주 기분 좋게 확실히 따뜻하다고 느낄 것이다."

불쌍한 너새니얼 호손. 1850년 여름, 호손은 멜빌을 소개받는 일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고 한 해 남짓이 지나 멜빌은 호손에게 책을 헌정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호손은 어떻게 했을까? 그 동네를 떴다...호손이 머뭇거리자 멜빌은 그것을 호손과 가족들이 정착한 메사추세즈 콩코드로 찾아갈 좋은 핑곗거리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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