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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책, 모비 딕
너새니얼 필브릭 지음, 홍한별 옮김 / 저녁의책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옮긴이의 말처럼 모비딕은 정말 벽돌같은 책이다. 그래서 여지껏 읽을 용기를 내지 못했는데, 드디어 그 용기가 생겼다. 아니, 거의 강박적으로 읽고 싶어졌다. 역시 애정만큼 훌륭한 홍보는 없나보다.
얼마 전 친구에게 한 웹툰을 추천하다 느낀 건데, 훌륭한 작품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어떤 내용인지, 감상 포인트는 어디인지 알려주기란 정말 어렵다. 정말 모든 좋은 점을 다 알려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사흘 밤을 새워도 시간이 모자르다(덴마가 얼마나 명작이냐하면....주절주절주절). 정말 중요한 것만 말하면 선별하는 것 부터가 고생이고, 재미 없어지기 쉽고, 말하는 나도 아쉽다. 그런 점에서 그 두꺼운 책을 어마어마한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렇게나 얇은 책으로 압축한 지은이가 존경스럽다.
이 책은 마치 pre-모비 딕 같다. 그만큼 훌륭한 입문서이다. 자칫 흐름을 놓치기 쉬운 모비 딕 줄거리의 약도를 제시해주고, 고전의 소고기 다시다라 할 수 있는 배경지식도 잘 곁들어져 있다. 특히 멜빌과 호손은 이웃집 아저씨들처럼 느껴질 정도니까 말 다 했다.
깜빡하고 수집하지 못한 문장 중에 고전을 단순히 읽으라고해서 읽는 건 좋지 않다는 뉘앙스를 가진 것이 있었다. 인생 경험 같은 것이 없는 상태에서 읽는 고전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었나? 여하튼 정말 실감했다. 요즘 들어 더더욱 고전에 끌리고 있는 건 이 때문일까.
이 책이 출간된 지 150년이 넘어 이제 우리가 외계인이나 다름없어졌다. 우리가 지구를 하도 탕진하다보니 지구의 생물상이 완전히 달라졌고 우리는 멜빈이 알던 지구와 전혀 다른 별에 살게 되었다.
"내가 웬 호들갑을 떤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나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다. 내가 이 사람을 겁내는 만큼 이 사람도 내가 겁나지 않겠나. 술 취한 기독교도보다는 정신 멀쩡한 식인종과 같이 자는 편이 낫지." 이 충격적인 식견은 1851년에는 혁명적이었고 150년도 더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도 경이로울 정도로 신선하게 들린다.
포경업의 위험한 노동 환경에서는 인종이 뭐건 배경이 뭐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기 일을 할 수 있느냐다...멜빌은 다른데에서 언급한 인류의 "신성한 평등"을 실제로 보여주며 노예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글은 강력한 소설이 장엄하고 느리게 진행되도록 일부러 속도를 늦추려고 과속방지턱 삼아 여기저기에 끼워놓은 짧은 곁가지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멜빌은 "영원한 미개척지"인 바다가 원조 황무지임을 알았다...1850년대에 멜빌은 "콜럼버스는 서쪽 표면에 있는 땅 하나를 찾자고 무수한 미지의 세계를 지나쳐 갔다."고 했다.
"나를 좀 보게. 그리스신처럼 자부심 높지만 뼈다귀를 디디고 서려고 이 돌대가리한테 계속 기대고 살아야 하다니!"...멜빌도 그랬다. 충족되지 않는 야망을 가진 작가지만, 자기 책을 출간하고 읽어줄 평범한 사람들에게 의존알 수밖에 없멌다. "내가 가장 쓰고 싶은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돈이 안 된다고요."
"몸의 온기를 즐기려면 몸의 일부분은 추워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특성은 오로지 대립에 의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온몸이 편안하고 오래전부터 늘 그래왔다 자신아는 사람이라면 더이상 편안하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코끝이나 정수리가 살짝 춥다면, 전체적인 의식 속에서 아주 기분 좋게 확실히 따뜻하다고 느낄 것이다."
불쌍한 너새니얼 호손. 1850년 여름, 호손은 멜빌을 소개받는 일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고 한 해 남짓이 지나 멜빌은 호손에게 책을 헌정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호손은 어떻게 했을까? 그 동네를 떴다...호손이 머뭇거리자 멜빌은 그것을 호손과 가족들이 정착한 메사추세즈 콩코드로 찾아갈 좋은 핑곗거리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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