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프랑스 소설!이라는 문구에 끌려 읽기 시작했고프랑스판 '브리짓 존스의 일기'다.라는 리뷰를 보고 깨달았다.이런 책은 정말 나랑 안 맞는구나...😟
자기 직업에 대해 험담만 늘어놓는 이보다 짜증 나는 사람은 없다. 이들은 언젠가 모든 걸 때려치우는 꿈을 꾼다고 하는데 결코 그 일을 그만둘 인간들이 아니다. 어떻게 장담하냐고?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정말로 자기 인생을 바꾼 사람들은 확실히 바꾸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즉 꿈을 이루고 나서야 말을 하지 그 전에는 절대 관련된 말을 안 꺼낸다.
보통의 표현이 부엌칼이라면 혐오 표현은 흉기로 잘못 휘둘러진 칼.그래서 '말이 칼이 될 때'흉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칼의 사용을 막을 수 없듯이 표현의 자유도 막을 수는 없다.때문에 혐오 표현에 대한 문제는 복잡미묘해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해답을 딱 찝어주는 책은 아니다.그러나 많은 사람이 읽을 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할 책.최대한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혐오표현이란 그런 것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담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 그건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과연 실체가 없는 고통일까? 개인의 특수한 고통일 뿐일까? 그런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과연 존엄하고 평등한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
에레혼의 뒤집어진 가치관은 물론 주인공의 가치관도 새롭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고생이 두 배ㅋㅋㅋ
에레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1872년 영국(책이 쓰여진 시기)도 이렇게나 별세계 같은 가치관일 줄이야....
고생한 만큼 머리는 상쾌해진다. 마치 땀흘려 운동한 후에 몸이 가뿐해지는 것처럼.
줄곧 읽고 싶었는데 갈 때마다 대출중이어서 꽤 오래 기다렸다.쇠라의 점묘법 그림을 떠오르게 하는 일러스트가 적당히 독특해서 좋았다. 점점 분해돼서 흩날려지는 할아버지의 기억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이 작가는 유독 나이 든 인물을 주제로 글을 쓰는 것 같다. 오베라는 남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브릿마리 여기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