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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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잡다한 이야기가 다 튀어나오는데 엄청 재밌다. 역시 빌 브라이슨! (전자책이 나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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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가 되기
존 가드너 지음, 임선근 옮김, 레이먼드 카버 서문 / 걷는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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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나는 자주 다퉜다. 우리는 인생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너무나 달랐다. 아빠는 나에게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라고 했다.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가라고 말했다.


나는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추구하지는 않을 거라고 답했다. 그런 인생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아빠는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뭐라고? 성공한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그렇다면 앞으로 성공한 삶에서 행복을 느끼면 되는 거잖아!!!"


나도 그러고 싶었다.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추구하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진심으로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안 되는 걸 어쩌나. 세상의 많은 불행은 자신의 욕망과 주변의 기대 사이의 불일치에서 나온다.


존 가드너의 <장편소설가 되기>는 장편소설가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실용적인 조언을 주기 위해 쓰인 책이다. 나는 장편소설을 쓸 계획이 전혀 없는데도 재미있게 읽었다. 장편소설가를 꿈꾸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말하는 소위 '성공'과는 먼 길을 택한 사람이라면 꽤나 공감하면서 읽을 만한 부분이 많았다.


작가란 끊임없이 쓰고 또 쓰고 그렇게 쓴 걸 수도 없이 고쳐쓰는 사람이다. 소설 쓰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만이 이렇게 힘겹고 지루한 작업을 견딜 수 있다. 장편소설가들의 기쁨과 슬픔이 여기에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기쁨, 그리고 그것 말고는 어떠한 보상도 얻기가 어렵다는 슬픔. 


직업을 택할 때 좋아하는 것 말고 잘 하는 걸 하라는 조언이 있던데, 장편소설가들은 자신들이 이걸 잘 하는지 아닌지 확신을 얻기가 어렵다. 그럴 때 필요한 게 주변의 신뢰와 지지인데 소설가들은 이걸 얻기도 어렵다.


【의학 박사나 전기 공학자나 산림 경비원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청년에게 그 생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허황되고 시간과 지능의 낭비인지를 설명하는 선의의 충고가 곧장 쏟아지지는 않는다. "잘해봐라"라고 말해주고 속으론 의학 박사가 되기에 성적이 모자라면 접골사라도 되겠지, 할 뿐이다. 그런데 작가가 되겠다는 사람에게는 그의 친구, 친척, 직업 작가 들은 말할 것도 없고 창작 교사들이나 창작에 관한 책들까지도 대뜸 성공하려면 각오해야 할 끔찍한 역경에 대해 지적질을 해댄다(그럼으로써 역경을 가중시킨다).】


존 가드너는 장편소설을 쓰려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기 확신이라고 말한다. 


오랜 세월 학생들을 가르쳐온 나는, 분명 재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정도 건사하지 못하고 사회적 의무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나아가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는 생각심지어 여러 편의 소설이 채택됐는데도거의 무기력 상태에 이를 만큼 자학하는 젊은 작가들을 수없이 봐왔다. 거절 편지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고 부모의 부드러운 채근"자식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니?"ㅡ에도 아찔해진다. 오직 강인한 사람만이,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몇몇 사람의 응원에 힘입어 이 시기를 견딘다. 작가는 자신이 사실은 진지한 삶을 살고 있으며, 그 진지함으로 기꺼이 큰 모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자기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악의든 선의든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격을 피할 방법짓궂은 유머든 뭐든을 찾아야만 한다.


또한 막돼먹음의 미덕을 언급한다.


소설 쓰기에 충분한 기량을 갖춘 다음에는 한층 단단히 정신 무장을 해야 한다. 출판을 서두르기보다는 자신만의 문체를 공들여 보완하면서 소설 쓰기 기술을 천천히 신중하게 익히고 있자면 사람들이 그를 비딱하게 보기 시작하고 못 미덥다는 듯이 "대체 뭘 하는데?"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어째서 내내 빈둥거리고만 있는 거야? 네 강아지는 왜 그리 비쩍 말랐는데?"라는 뜻이다. 이럴 때 막돼먹음의 미덕이 요긴하다진지한 생활인의 자세 거부하기, 짓궂게 굴기, 툭하면 울기 같은 행태들. 취해서 울기는 닦달하려 드는 사람 퇴치에 효과 만점이다.


혹시 존 가드너가 나와 아빠의 대화를 엿들은 건 아닐까.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에서 행복을 찾도록 하라는 아빠의 말을 듣고 나는 미친 사람처럼 반항했다. 


하지만 그렇게 막돼먹은 인간이 되었다고 해서 결코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장편소설가들도 역시나 다방면으로 죄책감을 느낀다고 한다.


오후 다섯 시면 일에서 해방되는 친구들과 당연히 처지가 다를 수밖에 없다. 처자식이 있으면 이웃들만큼 가족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는 생각에 막연한 죄책감까지 느낀다. 안 느낀다면 소설가가 아니다.


이쯤되니 이 책은 장편소설 쓰기를 가르치려는 책인지, 세상과 불화하는 인간들에게 공감하고 위로하려는 책인지 헷갈린다. 아마도 둘 다이지 싶다. 


책 뒷부분에서는 출판사 구하기, 에이전트 구하기와 같은 비교적 실용적인 정보들이 있으나 현재의 소설가 지망생들이 참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미국의 정보인데다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초판은 1983년에 출간되었다.


끝으로, 이 책이 좋았던 이유 한 가지 더. 이 책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자신의 작업을 위해서 때로는 수치심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면서, 자신의 작업을 좋아해주는 배우자에게 경제적으로 얹혀사는 것도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순수한 동기에서 자기 작업을 기꺼이 밀어주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작가인 그 또는 그녀는, 관습적인 도덕률을 떨치고 주의 은혜를 받들어 그의 권능 아래 사랑하는 이의 인자함에 값할 수 있도록 분골쇄신할 일이다.


존가드너, 장편소설가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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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였던....) 때 썼던 일기장을 발견했다. 엄마가 베란다 창고에서 커다란 박스 두 개를 꺼내왔는데 그 안에 일기장, 상장, 스케치북 같은 것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이사를 그렇게 많이 다녔는데 그동안 이걸 버리지 않고 이고지고 다녔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인 7살때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쓴 일기장이 모두 남아 있었다.(초등학교 5,6학년 때 일기장이 없는 걸 보면 고학년 때는 일기 쓰기 숙제가 없었나보다.)


일기장을 대충 정리만 하고 집어넣었어야 했는데 나는 일기장을 열어보는 실수를 저질렀다. 집정리 십계명 중 하나가 '추억의 물건은 절대 들춰보지 말 것'인데 나는 그 금기를 어겼다. 그리하며 어제 밤 늦게까지 초등학교 때 쓴 일기를 읽느라 늦게 잤다. 나름 힘들었고 나름 즐거웠던 초등학교 때의 내가 있었다. 나는 언제나 과거와 단절된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일기장을 보니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가 조금이나마 연결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토요 미스테리 극장>의 매니아였다. 이 프로그램의 첫 화가 방영하기 전에 예고편만 보고도 마음을 홀딱 뺏겼었는데 학교 걸스카우트 야영날이랑 딱 겹치는 바람에 첫 화를 본방으로 보지 못 해서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엄마한테 첫 화를 비디오 테이프에 녹화해달라고 부탁했고 야영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1화를 봤다.


나는 혹시나 이 기억이 조작된 건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었다. 왜 그런 이야기 있지 않은가.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 911테러와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벌어졌을 때 당신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느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어디에서 누구와 무얼 하고 있었다'고 대답하지만 사실은 전혀 틀린 기억일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 말이다.


나는 혹시 <토요 미스테리 극장>의 첫 화를 집에서 본 게 아닐까, 걸스카우트 야영 때문에 첫 화를 못 봤다고 나 혼자 착각한 건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일기장 안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았다. 일기에 걸스카우트 야영 이야기가 적혀 있는데 그 날이 바로 <토요 미스테리 극장>의 첫 화가 방영한 날이었다!!! 야영 때문에 토요 미스테리 극장을 챙겨보지 못 한 게 확실했다. 사람의 기억은 불확실하다고 하지만, 어떤 기억은 놀랍도록 정확하다.


언니가 탕수육 먹다가 토한 사건도 내 일기장에 적혀 있었다. 이건 내가 기억하는 사건은 아니고 언니가 기억하고 있는 일인데 내 일기장에 꽤나 자세하게 적혀 있어서 깜놀했다. 이걸 내가 일기장에 적은 것도 기특하고 그 오래된 일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언니도 참 대단했다.


엄마가 창고에서 너덜너덜한 박스를 꺼냈을 때는 어우 저걸 왜 아직도 짊어지고 다니는 거야, 이러면서 살짝 싫어했는데 다 커서 일기장을 보니까 재밌긴 참 재밌다. 이래서 그 당시 선생님들이 일기 쓰라고 닦달을 했나 보다. 그것이 30년 후를 위한 큰 그림이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재밌는 건 둘째 문제고, 손도 대기 싫을 정도로 낡아버린 일기장들을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 했다. 가장 좋은 건 사진 찍고 버리는 건데 수십 권의 일기장들을 반듯하게 펼쳐놓고 정갈하게 사진 찍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눈 딱 감고 버려 버리는 게 제일 좋은데 차마 그럴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쌓아두기에는 나의 미니멀리즘 성향이 견디지 못 한다. 아아아 괴롭다.


이래서 미니멀리즘 전문가들이 추억의 물건은 제일 마지막에 정리하라고 하는 거다. 추억의 물건을 마주하는 순간 모든 정리 작업은 올 스톱이다. 지금 다른 것도 정리할 게 많은데 일기장 때문에 다른 것에 손도 못 대고 있다. 거실에 널어놓은 너덜너덜한 공책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져서 유튜브 쇼츠만 보고 있는 거 실화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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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2024-11-19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옛 추억을 되살려주는 일기장에 관한 너무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Laika 님의 글 「어떤 기억은 놀랍도록 정확하다」를 읽고 많은 분이 공감하고 추억 속에 잠길 것 같네요. 이런 좋은 글이 나오게 된 건 Laika 님의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이 남아 있었기 때문인 것 같네요. Laika 님의 어린 시절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옛 일기장,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중에 또 들춰 보면 어떤 추억과 영감을 불러일으키겠죠. 저 같으면 못 버리겠어요. 종이로 된 기록이 디지털로 된 전자 문서 기록보다 훨씬 오래간다고 하죠. 감사합니다. 건필하시고요. ^^

2024-11-21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원래 종이책을 사지 않는 강경 전자책파인데 전자책이 나오지 않은, 앞으로도 나올 것 같지 않은 책들은 어쩔 수 없이 종이책을 구매한다. 그리고 북스캔 업체에 들고가 PDF로 바꿔버린다.

올 한해 사부작 사부작 사들인 종이책이 상당히 쌓였길래 최근에 북스캔 하러 다녀왔다. 내가 모르는 사이 북스캔 업체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예전에는 사당 쪽에나 조금 있고 다른 곳에는 많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서울 곳곳에 있다.

나는 총 24권을 가져갔다. 너무 무거워서 캐리어를 끌고 갔다. 가면 우선 책등을 잘라야 한다. 일반 책은 재단비가 1,000원인데 하드커버는 재단비 1,500원을 받는다. 하드커버 책은 무겁기도 무거운데 책등 자를 때도 비싸다.

깔끔하게 잘라진 책들을 가져다주시면 본격적으로 스캔 시작. 내가 갔던 곳은 기본 30분(6,000원)에 추가시간 10분당 2,000원이다. 시간이 곧 돈이다. 초집중해서, 어떠한 오류나 딜레이도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스캔해야 한다.

스캔 속도가 정말 빨라서 정신없이 작업했다. 24권을 다 스캔하고 나니까 약 4n분 소요. 총 50분으로 계산했다. 문자인식(OCR)이나 선명도 높이는 작업을 추가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그런 거 다 뺐다. 재단비랑 스캔 비용은 총 36,500원이 나왔다. 24권인데 나름 선방한 것 같다.

예전에는 스캔 끝난 책들을 가게에 버리고 왔는데 이번에는 다시 싸들고 왔다. 어차피 버릴 책이니까 밑줄 팍팍 그으면서 읽고 싶어서다. 스테이플러로 대충 찍어서 휙휙 넘겨가면서 보고 있다. 형광펜으로 밑줄도 마구마구 친다. 어차피 PDF로 바꿔놨으니 험하게 다뤄도 상관없다. 마음이 너무 편하다.


북스캔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실 제일 좋은 건 출판사에서 정식 전자책을 내주는 거다. 그건 폰트와 글자 크기를 바꿀 수 있으니 정말 짱이다. epub파일이 최고다.

이미 PDF로 스캔해놓은 파일이 있더라도 정식 전자책이 나오면 또 산다. 그것이 바로 조지수의 <나스타샤>. 전자책으로 안 나올 것 같아서 북스캔 했는데(나중에 캐나다 여행 갈 때 들고가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전자책이 나와서 바로 구매했다. 이런 데는 돈 써도 아깝지 않다. 전자책이 나오기만 한다면 중복 소비 쯤이야.

두껍고 무거운 책들은 한번쯤 전자책 발간을 고려해주시길. 692쪽에 969g인 <그레이트 게임>이나 704쪽에 1075g인 <내 심장을 향해 쏴라> 같은 책들이 전자책이 있었다면 굳이 책등 쪼개고 스캔하는 생고생은 하지 않았을텐데.

이로써 내가 갖고 있는 종이책은 또다시 제로에 수렴하게 되었다. 제로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딱 두 권을 종이책 상태로 보관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 그것은 바로 <탐험가의 스케치북>과 <아틀라스 중앙 유라시아사>. 마지막까지 고민했지만 이건 쪼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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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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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 불 때 읽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에세이를 그다지 즐겨 읽지 않는데도 이 책은 너무 좋았고, 비비언 고닉의 다른 책도 읽어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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