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46
존 르 카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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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재미있는 책'이 되기도 하고 '재미없는 책'이 되기도 한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재미없는 책'에서 '재미있는 책'으로 전환된 책이다. 아니, 그냥 재미있는 책이 아니라 너무너무 재밌어서 제자리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이렇게 재미있고,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파이 소설을 어쩌다가 '재미없는 책'이라고 생각했었으냐 하면 너무 설렁설렁 읽어서 그랬다...(ㅠㅠ) 몇 년 전이었나, 도서관에 들렀다가 기분전환 겸 가볍게 읽어볼까 하고 이 책을 집어와서 침대에 누워서 설렁설렁 읽었다. 읽어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책을 덮고 반납해버렸다. 그것이 나와 존 르 카레의 첫 만남이었다.


얼마 전,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리틀 드러머 걸> 시리즈를 보고 나서 다시 존 르 카레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알라딘에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전자책을 90일 대여 해준다길래 얼른 결제했다. 그렇게 묵혀두다가 며칠 전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열었다. 몇 년 전, 설렁설렁 읽다가 이해도 하지 못하고 덮어버렸던 그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펜이랑 종이를 준비했다. 등장인물의 이름뿐 아니라 동선, 행동, 수상한 점 등을 모두 적어가면서 읽었다. 다 읽고 나서는 감격했다. 역시 유명한 책은 이유가 있구나. 그리고 이 책은 침대에 누워서 설렁설렁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구나.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심리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독자 역시도 치열하게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몇 년 전의 나처럼 "이게 도대체 무슨 내용이야" 하면서 덮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소설의 시작은 베를린 장벽 검문소. 소설의 정확한 시간적 배경은 아직도 좀 헷갈리는데, 이걸 다 읽고 나서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를 읽었더니 그 소설 마지막 해설에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시간적 배경은 1962년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나 역시도 1962~63년 즈음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영국 정보부 소속 첩보원인 '리머스'. 그는 카를 리메크라는 남성을 기다리고 있다. 카를 리메크는 동독 고위층 인사인데 영국 정보부에 정보를 넘겨주고 있다. 그러다가 스파이 행위가 발각되는 바람에 동독 정보부 요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카를은 베를린 장벽 검문소를 지나 서베를린으로 도망치려고 했으나 결국 리머스가 보는 앞에서 동독 인민 경찰들에게 사살되고 말았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던 영국 측 첩보원들이 하나둘씩 제거되고 나서 카를 리메크라는 거물을 잡아서 겨우 리머스의 커리어가 빛을 보나 싶었는데 결국 카를마저 죽었다. 리머스의 첩보 활동은 완전히 실패했다. 리머스는 베를린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없이 런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리머스는 여전히 자신이 할 일이 남아있다고 믿었다. 이 소설은 그런 리머스의 활동을 다루고 있다. 과연 그는 성공했을까?


모든 스파이 소설은 스포를 보지 않고 즐겨야 제맛인데 이 소설은 특히나 그렇다. 결말을 모른 채 이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느껴지는 전율이 있다. 그렇다고 독자들에게 아무런 떡밥도 주지 않고 '이건 몰랐지? 짜잔~' 하는 식의 황당한 뒤통수는 아니다. 잘 살펴보면 계속해서 어떤 시그널이 있었고, 어떤 조짐이 있었고, 어떤 인물이 근처에 있었다. 결말까지 다 보고 나면 혹시나 또 내가 놓친 건 없었는지 궁금해져서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해서 이 소설을 완독하자마자 바로 재독으로 돌입했다. 어떤 책을 몇 년 텀을 두고 재독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곧바로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끝까지 정독한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두 번째 읽었을 때가 정말 재미있다. 처음 읽을 때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상황을 판단하게 된다. 두 번째 읽을 때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전지적 시점으로 상황을 판단하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리머스, 피들러, 문트, 리즈 등등)이 가지고 있는 정보량이 다 다르다. 모든 것을 알고 나서, 각 인물들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색다른 재미가 느껴진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A라는 인물은 이만큼 알고 이것을 계획했는데, 사실 B는 이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A에게는 이만큼을 숨겼구나, 그리고 A 모르게 C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구나,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정말 재미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사문회 장면이다. 그 부분을 읽으며, '진심'과 '진실'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떤 일을 '진심'으로 행하기 위해서 '진실'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 오히려 '진실'이 '진심'을 방해하기도 한다. 어떤 회사원이 회사를 위해 전심전력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일한다고 할 때 그 회사원이 가진 건 '진심'이다. 하지만 그 회사가 만약 공공연하게 폐수를 방류하는 악덕 기업이었다는 '진실'을 알게 될 때 그의 '진심'은 갈 곳을 잃는다.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했고 진심으로 회사가 잘 되기를 빌었지만, '진실'은 바로 그 '진심'에 싸대기를 때리고 고춧가루를 뿌린다.


이 소설은 그런 불편한 진리를 날카롭게 그리고 있다. 윗사람이 필요했던 것은 아랫 사람의 '진심'이었다. 통제된 정보만을 던져주고 그의 진심을 요구한다. 냉혹한 첩보원의 세계에서는 바로 그 '진심'이 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에 그 사람이 몰랐던 '진실'이 드러난다면... 그 사람이 가졌던 '진심'은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을까.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알량한 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거대한 허상일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않은 것 사이에 얼마나 깊은 강이 흐르고 있는지, 이 소설은 말해주고 있다.


이 소설은 냉전 시절의 이념 대립을 그리고 있지만 결국은 인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래서 '냉전'이라는 단어에 먼지가 한참 쌓인 지금 이 시절에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고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은 두 번 읽어야 한다고 제목에 썼는데 나는 아마도 여러 번 더 읽게 될 것 같다. 너무 거대한 이념에 짓눌릴 때, 개인을 보지 않고 전체만을 보게 될 때, 항상 이 책을 펼쳐야만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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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내 손으로, 치앙마이 - 일러스트레이터 이다의 카메라 없는 핸드메이드 여행일기
이다 지음 / 시공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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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사랑스럽고 귀여운 책이다. 발리 편도 좋았는데 치앙마이 편도 좋고, 이 시리즈 다 좋다. 나중에 여행 가서도 또 보려고 전자책으로 구매했다. 다음 시리즈도 계속 전자책이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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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이랬다. 


알라딘에서 서울코믹스 만화책을 재정가 할인한다는 알림이 떴다. 만화책은 어렸을 때 엄청 좋아했는데 커서는 왠지 잘 안 읽게 되어서 이런 알림도 겉에서만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클릭해서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고 갑자기 구매욕구가 샘솟고 말았다. 일반 전자책은 할인폭이 10% 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만화책(이북) 세트 30% 할인 해준다고 하니까 엄청 저렴하게 느껴졌다.


장바구니에 담아서 결제 직전까지 갔던 만화책은, 어렸을 때 엄청나게 좋아했던 추리만화인 <소년탐정 김전일>. 알고 보니까 시즌2도 나왔고, 37세 김전일 시리즈도 나오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새 김전일은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서 또다시 사건사고에 휘말리고 있었던 것이다ㅋㅋㅋㅋ. 갑자기 옛 추억이 떠오르면서 '이건 사야해' 모드가 되었다. 시즌1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오리지널 시리즈와 시즌2, 시즌2 리턴즈, 37세 김전일까지 전부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런데 잠깐, 이거 지금 읽어도 재미있을까? 이걸 본지 거의 이십 몇 년이 지났기 때문에 만화책의 자세한 내용은 다 잊어버렸는데도 주인공 김전일이 너무 변태 같아서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어렸고, 다른 만화책들을 들춰봐도 죄다 변태 같은 주인공들 투성이여서 그러려니 하면서 봤다. 추리하는 내용은 재미있었으니까. 그런데 이걸 2024년의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할인 행사 때 사야해'와 '지금 보면 재미없을 수도 있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일단 대여 먼저 해서 보기로 했다. 초반 몇 권만 보면 대충 마음의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1권은 무료체험판으로 보고 2, 3권은 리디에서 빌려봤다.(리디에서는 전권 대여 500원인데 왜 알라딘에서는 1~3권 대여 가격이 1000원인건지 모르겠다;) 


초반 몇 권 읽으면서 느꼈다. 이건 빌려보는 게 낫겠다. 2024년의 내가 읽기에는 조금, 사실은 아주 많이 무리가 있다. 김전일은 왜 맨날 여자 치마 속 팬티를 보고 다니는 것인가.(우연히 볼 때도 있지만, 누워있는 김전일 위에 다가가서 일부러 자신의 치마 속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영화 촬영 아르바이트 에피소드에서는 남성 스태프들이 여성 출연진의 목욕탕 몰카를 찍고 다같이 보는 장면도 있다. 짜증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이런 걸 보면서 재미있으니까 장땡이라고 여겼던 그 시절의 나에게 화가 난다. 내가 이런 야만의 시절을 거쳐 왔다는 걸 새삼 느꼈다.


<김전일> 4권부터는 알라딘에서 대여해 보고 있다. 주말 만화책 대여 쿠폰이 있어서 저렴하게 빌렸다.(5000원 대여에 1500원 할인) 그런데 갈수록 가관이다. 사촌오빠라는 인간이 교복 입은 여주인공 엉덩이를 만지는 장면에서 말잇못. 그래도 빌려놓은 게 있어서 계속 읽고 있기는 한데 과연 이 만화를 끝까지 정주행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런 걸 보면서 자란 내 감수성 내 자아 괜찮은 걸까, 갑자기 걱정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얼른 다른 좋은 만화책들로 나의 감수성을 정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천막의 자두가르>를 구매했다. 3권까지 나와있고 아직 미완결이며 재정가 할인 대상이어서 이북으로 구입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파티마(원래 이름은 시타라)다. 이란 동부 지방인 '투스'에서 어느 학자 집안의 노예로 생활하다가 몽골의 침략으로 인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몽골군 포로로 잡혀가게 된 파티마는 그 안에서 어떻게든 복수할 방법을 찾는다. 한낱 외국인 포로에 불과한 파티마가 어떻게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싶은데 만화를 보면 또 수긍하게 된다. 그 당시 몽골 내부에는 문화도 언어도 인종도 다른 사람들이 섞여서 살고 있었고 저마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사실 몽골 제국 관련 이야기라고 하면 칭기즈 칸과 그 후손들이 어떻게 제국을 지배했는지에 대해 주목하기가 쉽다. 그런데 이 만화는 파티마, 그리고 파티마와 얽히는 몽골 제국 황후들이 스토리의 중심이다. 파티마는 몽골군이 페르시아에서 약탈해온 책들을 읽고 해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어떤 황후의 시녀로 가게 되고, 그 이후에 계속해서 권력 있는 여성들의 주위에 머물게 된다. 스토리도 너무 재미있고, 그 당시 몽골 왕과 황후의 복식이나 생활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나저나 궁금증 하나. 칭기즈 칸 아들의 황후 중 한 명이 '나이만 부족' 출신이라고 나오는데 이걸 보자마자 친기즈 아이트마토프의 <백년보다 긴 하루>가 떠올랐다. 여기에도 나이만 부족이 나온다.(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나이만-아나의 전설...ㅠㅠ) 이 소설에 나오는 나이만 족이 <천막의 자두가르>에 나오는 그 나이만 족인지 궁금해졌다.


<천만의 자두가르> 다 읽고 나서, <히스토리에> 이북 세트를 사들였다. 역시나 재정가 할인으로 샀다. 이 만화책은 11권까지 나왔고 미완결이다. 작가가 워낙 작업 속도가 느리고 연세도 꽤 있으셔서 미완결로 끝날까봐 걱정하는 독자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도 평이 너무 좋아서 일단 사봤다. 알렉산더 대왕의 궁정 서기관이 주인공인 만화다. 배경만 들어도 재미있다. 


이걸 샀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갑자기 역사 만화책에 꽂혀서 이것저것 찾아서 장바구니에 넣어뒀다. 어렸을 때는 추리 만화를 좋아했는데, 요즘엔 또 역사 만화가 좋다. 역사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데 가끔씩 그 시절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질 않아서 애를 먹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도움이 되는 게 만화책인 것 같다. <천막의 자두가르>처럼 몽골, 중앙아시아 배경인 만화책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서 몇 개 더 찾아봤다.


<신부 이야기>는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배경이라고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하게 환상을 가지고 있는 지역 중 하나가 중앙아시아다. 유튜브에 올라온 실크로드 다큐도 찾아보고 그랬는데, 만화책도 있다니...! 이건 무조건 사야해. 평이 굉장히 좋아서 기대하고 있는 작품이다. <천수의 나라>는 티베트 배경 만화다. 리뷰를 찾아봤더니 생각보다 잔잔한 내용의 만화라고 한다. <신부 이야기>만큼 큰 기대는 걸고 있지는 않지만 티베트 복식을 보는 재미는 있을 것 같아서 <천수의 나라>도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뒀다. 


중앙아시아 배경 말고도 또 재미있는 게 없을까 해서 찾아보다가 발견한 <오르페우스의 창>. 어렸을 때 회색 표지에 <올훼스의 창>이라고 나온 판본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제목이 <오르페우스의 창>으로 바뀌었다. 그 유명한 <베르사유의 장미> 작가인 이케다 리요코 작품인데 이상하게 <올훼스의 창>은 <베르사유...>만큼은 인기가 없었던 것 같다. <베르사유>는 애니메이션도 방영했어서 그 당시에 모르는 어린이가 없었다. 나는 만화영화 주제가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바람 한 점 없어도 향기로운 꽃~~가시 돋혀 피어나도 아름다운 꽃~~~' 그에 비에 <올훼스의 창>은 한참 후에야 '이런 만화도 있었어?'라면서 알게되었다. 


<오르페우스의 창>은 러시아 혁명을 다룬 만화책이다. 이 만화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러시아'라는 지명을 죄다 '핀란드'로 바꿔버렸다고 한다. '러시아=공산당=빨갱이' 연상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럴 거면 아예 출판을 하지를 말든가, 러시아를 핀란드로 다 바꾸는 그 정성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베르사유의 장미> 만화책은 너무너무 좋아했어서 어렸을 때 두툼한 만화책으로 샀었고 지금은 전자책으로 전권 보유 중이다. <오르페우스의 창>도 전자책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조만간 구입해서 읽어볼 예정이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책은 이거다. 나만의 올타임 베스트 <마스터 키튼>. 


영국 특수부대 SAS 출신의 고고학자인 '키튼'은 고고학 강의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가 어려워 영국 보험사의 조사원으로도 일하고 있다. 이 사람의 특기는 극한환경에서 생존하기! 워낙 실력이 좋아서 어려운 조사 임무에 주로 투입되는데, 거기서 사건의 진범을 밝히면서도(그래야 보험금을 줄지 말지 결정할 수 있으니까) 알아서 재주껏 살아남아야 한다. 역사 이야기도 조금 나오고, 고고학+추리+생존+잡지식이 짬뽕된 완벽한 내 취향 만화다. 타클라마칸 사막 에피소드는 정말 여러 번 읽었다.(언젠가는 사막에 떨어져서 살아나와야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는 전자책이 있던데 제발 <마스터 키튼>도 전자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요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완독 프로젝트를 나 혼자 진행 중인데, 정신 안 차리면 자꾸만 만화책을 보게 된다(ㅠㅠ) 만화책 세트 할인이 뜨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본격적으로 샛길로 빠지진 않았을텐데. 이게 전부 할인 때문이다. 최근에 구매한 <히스토리에>만 다 보고 나면 진짜로 만화책 안 보고 <잃.시.찾> 읽어야지. 잃어버린 나의 시간을 정말로 찾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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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화질세트] 천막의 자두가르 (총3권/미완결)
토마토수프 / 서울미디어코믹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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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잘 몰랐던 몽골제국의 이야기를 페르시아인 파티마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저마다의 야망과 욕망을 품고 있는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 세 권을 순식간에 읽고 다음 권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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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느낌과 알아차림 - 나의 프루스트 읽기 연습
이수은 지음 / 민음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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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은 작가의 신작 에세이가 나왔다고 해서 바로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이수은 작가의 독서 에세이라면 무조건 환영이다. <이 책이 시급합니다>와 <평균의 마음>을 재미있게 읽었다. <평균의 마음>은 틈날때마다 다시 펼쳐볼 정도로 좋아하는 책이다. 그런 책들을 쓴 작가니까 신작도 무조건 좋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이번 에세이는 무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나서 쓴 에세이다. (이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도 이 책을 앞으로 <시간>이라고 줄여서 표기하겠다.) 나는 어떤 책 한 권을 읽고 리뷰 한 편 쓰는데도 어떻게 써야할까 생각하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데 이수은 작가는 <시간>을 읽고 책 한 권을 써냈다. 물론 <시간>이 보통 책이 아니긴 하다. 한국어 번역본 기준 열세 권 짜리 책이니까.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독후감으로 책 한 권쯤 써내는 일이 가능한 걸까, 생각해보지만 읽는 것도 쉽지 않고 읽고 나서의 감상을 정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나는 <시간>을 읽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이수은 작가의 글을 워낙 좋아했기에 이 책을 구매했는데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완전히 빨려들어가서 읽었다. 심지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시간>을 다 읽은 것마냥 은은한 감동마저 일었다. 내가 읽어본 많은 책들 중에는 앞부분만 재미있다가 뒷부분에 가서 힘이 빠지는 책들이 꽤 있었다.(그래서 이동진 평론가는 책을 고를 때 책의 4분의3 지점을 확인한다고 했다. 그 부분이 작가가 가장 힘이 빠지는 부분이니까.)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게 좋았고, 심지어 뒤로 갈수록 더 에너지가 붙는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읽고 나서 이렇게 가슴 충만한 에세이는 참 오랜만이었다. 

이 책을 다 끝내자마자 나도 <시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알라딘을 검색했고 민음사판이 가장 위에 떴다. 한 달에 한 권씩 읽어도 1년이 넘게 걸리는 프로젝트다. 내가 과연 읽을 수 있을까? 이수은 작가는 3년4개월에 걸쳐 <시간>을 읽었다고 했다. 한 번 읽고 또 읽고 여러 번 읽었다고 했다. 게다가 그 시간 동안 <시간>만 읽은 게 아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와 관련된 여러 책들, 또 이 책을 쓰기 위해 인용한 여러 철학자들의 책까지,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은 게 티가 났다. 그리고 이렇게 분량이 적지 않은 책 한 권이 탄생했다.

이 작가는 심지어 <시간>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우울증 혹은 불안장애로 보이는 심리장애까지 겪었다고 고백했다. 병원에 가서『시간』을 읽다가 우울 증상이 생겼다고 말하는데 갱년기장애는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의사가 답하는 장면은 완전히 블랙코미디다. 하지만 이 책 전체로 보면 이수은 작가 본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정말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것이 책 전체에서 느껴진다. 


【나는 치유로서의 자서전을 쓰려는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시간』에 관한 것이다. 할 말이 아주아주아주 많아서 명치나 목구멍 어디쯤에서 정체가 일어났다. 너무 많은 말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하나씩 순서대로 끄집어낼 수가 없다.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 나도 이 책에 대해서 말하려니까 말문이 막힌다. 요약하기도 어렵고 어느 한 부분만 콕 집어서 너무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나는 이 책의 총체에 관해 말하고 싶은데 그럴 때 내가 갖고 있는 언어라는 도구가 얼마나 빈약한지 새삼 깨닫는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책은 <시간>을 읽지 않은 사람이 읽어도 재미있고, 만약 <시간>을 읽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밖에는 없다.


이 책을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밑줄을 백만 개쯤 그은 것 같다. 외우고 다니다가 어디선가 써먹고 싶은 문장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내가 밑줄 친 부분 여러 개 인용하려다가 다 지우고 그 중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만 인용하려고 한다. 이 책의 제목과도 연관된 부분이다.

【감수성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들에 체계를 부여하는 것은 인식이다. 독서는 느낌에서 알아차림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그것은 중력을 떨치고 날아오르는 높이뛰기처럼 연습을 필요로 한다.】

오호, 독서는 느낌에서 알아차림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 <느낌과 알아차림>을 읽고 느낌에서 알아차림으로 전환했는가? 솔직히 말하면 절반만 YES다. 이 책에서 인용된 여러 학자들의 견해, 그리고 이수은 작가가 펼치는 글의 향연을 반만 따라잡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게 너무너무 좋다. 나의 독서 취향과도 연관이 있는데,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너무 개인적인, 예를 들면 '힐링'이나 '위로' 같은 단어가 붙은 에세이나 소설을 잘 못 읽는다. 그런 것보다는, 뭔가 이렇게 지적임이 철철 넘쳐 흐르는 책을 읽으면서 무슨 말인지 절반은 이해하겠는데 절반은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경외하거나 감탄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이 책이 그런 책이었다.

이제 5월이다. 새로운 달이 시작된다고 해서 딱히 하는 일은 없지만 이번 달에는 뭘 읽어야 할까 그런 생각들을 한다. 그동안 알라딘 보관함에 담아두었던, 밀리나 크레마클럽에 담아두었던 책들은 한 번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온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확실하게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 어떤 책들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지 약간의 힌트를 얻었다. 인생은 짧고 2024년도 네 달이나 지나갔고 시간은 앞으로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갈텐데 내 취향이 아닌데도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책들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음미하면서 감탄하면서 읽을 수 있는 그런 책들을 진득하게 붙잡고 싶다. 이수은 작가가 <시간>에 온 마음을 들인 것처럼 나도 내가 좋아하는 책에 온통 마음을 쏟고 싶다는 그런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작가는 왜 이렇게 은밀하고 복잡한 서사전략을 채택한 걸까. 이 소설이 무엇을 고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켜지기 위해 쓰였기 때문이다. 아무런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으나 모든 것이 진술되어 있는 소설을 쓰고자 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알아차리는 역할을 온전히 독자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지독하게 열렬히, 꼭 붙잡고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책이다. 이것은 총력을 기울여 사랑해 주기를 요청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이 고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켜지기 위해 쓰였다는 문장이 너무 좋다. <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책도 마찬가지일 터. <느낌과 알아차림>을 읽고 나니 진지한 사유, 진지한 독서가 너무 좋아졌다. 나도 이런 깊은 독서를 하고 싶어져서 갑자기 철학 책 쓸어담고...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아무튼 이 책 <느낌과 알아차림>은 너무 좋았다. 어떤 작가가 이렇게 많은 책을 읽고 이렇게 멋진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느낀 그런 아름다움을 나도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데 도저히 표현할 말이 없다. 아, 그래서 프루스트도 그렇게 긴 소설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이수은 작가도 독후감으로 책 한 권을 쓸 수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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