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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46
존 르 카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2월
평점 :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재미있는 책'이 되기도 하고 '재미없는 책'이 되기도 한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재미없는 책'에서 '재미있는 책'으로 전환된 책이다. 아니, 그냥 재미있는 책이 아니라 너무너무 재밌어서 제자리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이렇게 재미있고,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파이 소설을 어쩌다가 '재미없는 책'이라고 생각했었으냐 하면 너무 설렁설렁 읽어서 그랬다...(ㅠㅠ) 몇 년 전이었나, 도서관에 들렀다가 기분전환 겸 가볍게 읽어볼까 하고 이 책을 집어와서 침대에 누워서 설렁설렁 읽었다. 읽어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책을 덮고 반납해버렸다. 그것이 나와 존 르 카레의 첫 만남이었다.
얼마 전,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리틀 드러머 걸> 시리즈를 보고 나서 다시 존 르 카레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알라딘에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전자책을 90일 대여 해준다길래 얼른 결제했다. 그렇게 묵혀두다가 며칠 전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열었다. 몇 년 전, 설렁설렁 읽다가 이해도 하지 못하고 덮어버렸던 그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펜이랑 종이를 준비했다. 등장인물의 이름뿐 아니라 동선, 행동, 수상한 점 등을 모두 적어가면서 읽었다. 다 읽고 나서는 감격했다. 역시 유명한 책은 이유가 있구나. 그리고 이 책은 침대에 누워서 설렁설렁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구나.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심리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독자 역시도 치열하게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몇 년 전의 나처럼 "이게 도대체 무슨 내용이야" 하면서 덮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소설의 시작은 베를린 장벽 검문소. 소설의 정확한 시간적 배경은 아직도 좀 헷갈리는데, 이걸 다 읽고 나서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를 읽었더니 그 소설 마지막 해설에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시간적 배경은 1962년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나 역시도 1962~63년 즈음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영국 정보부 소속 첩보원인 '리머스'. 그는 카를 리메크라는 남성을 기다리고 있다. 카를 리메크는 동독 고위층 인사인데 영국 정보부에 정보를 넘겨주고 있다. 그러다가 스파이 행위가 발각되는 바람에 동독 정보부 요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카를은 베를린 장벽 검문소를 지나 서베를린으로 도망치려고 했으나 결국 리머스가 보는 앞에서 동독 인민 경찰들에게 사살되고 말았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던 영국 측 첩보원들이 하나둘씩 제거되고 나서 카를 리메크라는 거물을 잡아서 겨우 리머스의 커리어가 빛을 보나 싶었는데 결국 카를마저 죽었다. 리머스의 첩보 활동은 완전히 실패했다. 리머스는 베를린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없이 런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리머스는 여전히 자신이 할 일이 남아있다고 믿었다. 이 소설은 그런 리머스의 활동을 다루고 있다. 과연 그는 성공했을까?
모든 스파이 소설은 스포를 보지 않고 즐겨야 제맛인데 이 소설은 특히나 그렇다. 결말을 모른 채 이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느껴지는 전율이 있다. 그렇다고 독자들에게 아무런 떡밥도 주지 않고 '이건 몰랐지? 짜잔~' 하는 식의 황당한 뒤통수는 아니다. 잘 살펴보면 계속해서 어떤 시그널이 있었고, 어떤 조짐이 있었고, 어떤 인물이 근처에 있었다. 결말까지 다 보고 나면 혹시나 또 내가 놓친 건 없었는지 궁금해져서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해서 이 소설을 완독하자마자 바로 재독으로 돌입했다. 어떤 책을 몇 년 텀을 두고 재독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곧바로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끝까지 정독한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두 번째 읽었을 때가 정말 재미있다. 처음 읽을 때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상황을 판단하게 된다. 두 번째 읽을 때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전지적 시점으로 상황을 판단하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리머스, 피들러, 문트, 리즈 등등)이 가지고 있는 정보량이 다 다르다. 모든 것을 알고 나서, 각 인물들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색다른 재미가 느껴진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A라는 인물은 이만큼 알고 이것을 계획했는데, 사실 B는 이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A에게는 이만큼을 숨겼구나, 그리고 A 모르게 C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구나,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정말 재미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사문회 장면이다. 그 부분을 읽으며, '진심'과 '진실'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떤 일을 '진심'으로 행하기 위해서 '진실'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 오히려 '진실'이 '진심'을 방해하기도 한다. 어떤 회사원이 회사를 위해 전심전력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일한다고 할 때 그 회사원이 가진 건 '진심'이다. 하지만 그 회사가 만약 공공연하게 폐수를 방류하는 악덕 기업이었다는 '진실'을 알게 될 때 그의 '진심'은 갈 곳을 잃는다.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했고 진심으로 회사가 잘 되기를 빌었지만, '진실'은 바로 그 '진심'에 싸대기를 때리고 고춧가루를 뿌린다.
이 소설은 그런 불편한 진리를 날카롭게 그리고 있다. 윗사람이 필요했던 것은 아랫 사람의 '진심'이었다. 통제된 정보만을 던져주고 그의 진심을 요구한다. 냉혹한 첩보원의 세계에서는 바로 그 '진심'이 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에 그 사람이 몰랐던 '진실'이 드러난다면... 그 사람이 가졌던 '진심'은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을까.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알량한 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거대한 허상일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않은 것 사이에 얼마나 깊은 강이 흐르고 있는지, 이 소설은 말해주고 있다.
이 소설은 냉전 시절의 이념 대립을 그리고 있지만 결국은 인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래서 '냉전'이라는 단어에 먼지가 한참 쌓인 지금 이 시절에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고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은 두 번 읽어야 한다고 제목에 썼는데 나는 아마도 여러 번 더 읽게 될 것 같다. 너무 거대한 이념에 짓눌릴 때, 개인을 보지 않고 전체만을 보게 될 때, 항상 이 책을 펼쳐야만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